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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소박한 불행을 넘기며

Writer: 하박국
룸306, 술과 꽃, 소박한 불행

음반 발매를 준비하고 있다. 당신에게 이 글이 도착했을 때 우리의 음반도 도착해 있을 것이다. 바로 룸306(Room306)이라는 일렉트로 팝 팀의 세 번째 음반이다. 인디 음악 씬에서 세 번째 정규 음반을 발표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상하게 꼭 세 번째 음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 어떻게 어떻게 두 번째 음반까지는 내더라도 꼭 세 번째 음반을 내기 전에 ‘음반을 낼 수 없는 온갖 이유’가 인디 밴드에게 닥친다. 이제는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 할 것 같다거나, 두 번째 음반까지 한국대중음악상을 못 탔는데 세 번째 음반도 못 탈 것 같다거나, 인디 음악 씬의 영원한 비밀소수를 제외하고는 돈을 버는 이가 아무도 없다을 알아버렸다는 이유로 세 번째 음반 발매 이전에 팀이 해체되거나 더는 활동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최근에는 혼자 모든 작업을 발표하며 싱글과 미니 앨범이라 부르는 EP 단위의 음반만 발매하다 정규 음반 한 번 내지 못하고 음악 활동을 접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3이니 분명 한국 대부분의 밴드들도 3을 좋아할 텐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룸306은 2019년 초에 두 번째 정규 음반 ‹겹›을 발매하고 3월에 쇼케이스를 열었다. 그리고 2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거의 활동을 하지 못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코로나 때문이었다. 표면 아래 있는 이유는 첫 정규 음반 ‹At Doors›만큼의 반응이 두 번째 정규 음반에는 따르지 않아서였다. 쇼케이스는 적자를 봤고 소량 제작한 시디는 아직도 재고가 남아 있다. 더 근저에 자리한 이유는 곡을 만드는 퍼스트 에이드(FIRST AID)의 번아웃과 우울증 때문이었다. 룸306 이전부터 10년 넘게 음악을 만들어온 퍼스트 에이드는 쉴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2020년 딱 12시간 음악 작업을 한 이후로 안식년을 선포했다. 다행인 건 멤버들이 이를 이해하고 기다려줬다는 거다. 룸306은 전업 밴드가 아니다. 퍼스트 에이드는 초등학교 선생님이고, 키보디스트 채지수는 세션과 레슨을 병행하며, 보컬 홍효진과 드럼 유덕연은 레슨을 하고 있다. 팽팽한 것보다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노끈을 끊기가 더 어려운 것처럼 다들 한 발을 다른 곳에 걸치고 있는 게 도움이 됐다. 물론 각자의 일이 있다지만 불안함을 손에서 놓기는 쉽지 않다. 이러다 완전히 본업에 침식당해 더이상 밴드를 하고 싶지 않아진다면? 쉬다가 밴드를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본업이 크게 입을 벌리고 놓아주지 않는다면?

Room306 – “at Doors” CD1 Preview [Official Audio]

룸306은 영기획에서 음반을 발매한 팀들 중에는 그래도 성공한 축에 속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르며 한참 낮은 기준일 것이다. 아이유가 좋아하는 곡으로 꼽는다거나 멜론 차트 100위 안에 들지는 못했지만, 2015년 영기획 3주년 컴필레이션에 수록되자마자 ‘Enlighten Me’가 적지 않은 반응을 가져왔고 그 후 2016년에 발매한 정규 음반 ‹At Doors›는 2CD로 발매되어 공연장에서 꾸준히 판매한 덕분에 현재는 [절판] 딱지가 붙었다. 그렇다고 룸306과 함께한 일이 늘 탄탄대로였던 건 아니다.

룸306 단체사진

Room306 단체 사진

초기에는 보컬 홍효진의 캐릭터와 음악이 맞지 않아 걱정이었다. 룸306의 음악은 대부분 차분하고 서정적인데 홍효진은 ‘깨발랄’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성격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첫 쇼케이스가 끝나고 이러한 괴리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평소라면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이번에는 절충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이 어디 가겠는가. 보기 좋게 실패. 무엇보다 자신을 숨겨야 하는 홍효진이 이를 힘들어 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자 룸306 팬들도 이해하고는 이에 대해 따로 문제를 삼지는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이건 밴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극히 사소한 문제 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룸306이 음반을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태 해온 중 가장 큰 규모의 공연을 한 날 문제가 벌어졌다. 당연히 설레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지만 아무래도 큰 무대에 콘셉트가 있는 공연이다보니 멤버의 실수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그 전에 누적된 불만들이 터져 2명을 남기고 3명의 멤버가 모두 팀을 나가는 일이 생겼다. 음반 커버에 5명의 모습이 그러져 있는데 1년도 지나지 않아 그중 3명을 볼 수 없게 됐다. 다행히 금세 새 멤버를 구했지만 덕분에 룸306의 라이브에서 들려주는 음악색은 전과는 다른 형태를 띄게 됐다. 라이브의 음악색이 달라지며 나도 룸306의 프로모션을 다르게 해야 했다.

룸306 표지 앨범

룸306 ‹겹› 앨범커버 

두 번째 음반은 첫 음반에서 생긴 작은 수익을 보태 제작했다. 0에서 시작한 첫 음반보다는 좋은 출발점이었다. 그 대신에 제작비를 직전보다 배 이상으로 늘렸다. 첫 음반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만큼 밴드의 네임밸류를 키우려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뮤직 비디오를 찍고 큰 곳에서 쇼케이스를 여는 것이다. 제대로 된 순서는 잘 된 이후에 좋은 공연장에서 공연하고 좋은 뮤직비디오를 찍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좋은 공연장에서 공연하고 좋은 뮤직비디오를 찍으면 잘 된 팀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해서 잘 된 팀이 되면 다시 좋은 공연장에 섭외가 되고 좋은 공연비를 받을 수 있다. 이 판단이 발목을 잡았다.

한번 쓴 뮤직비디오 예산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음반과 음원은 판매할 수 있지만 뮤직비디오는 홍보와 아티스트의 음악적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다. 애초에 우리 같은 작은 레이블에서는 아무리 몸짓을 부풀리고 싶어도 크게는 쓸 수 없는 비용이다. 그렇기에 뮤직비디오 감독과 일정 부분 협상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 간섭을 안 하기로 하고, 그는 자유롭게 자신이 평소 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던 걸 시도하고. 잘만 하면 서로에게 윈윈이 될 수 있는 합의다. 문제는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을 경우다. 뮤직비디오 감독이 하고 싶었던 것과 아티스트의 음악적 방향이 다르거나. 적은 예산 안에서 최대한 요령을 부려 제작을 해야 하는데, 감독이 자신의 욕심 때문에 요령을 부리지 않고 제작비를 초과하거나. 혹은 감독의 욕심이 지나쳐 음반 발매일까지 결과물이 나오지 않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두 번째 음반의 발매일은 계속 미뤄지기만 했다. 결국 미루고 미루다 아무도 택하지 않는 연말에 잡힌 발매일이 다가왔다. 이후에 일어난 일은 모두 내 역량 부족으로 돌리고 싶다. 음반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고,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와 아티스트의 번아웃으로 제대로 된 활동도 하지 못했다.

Room306 – 밤이 Night Comes 

잠시 내 얘기를 해보자. 전업이 아닌 건 나도 마찬가지다. 레이블의 경영자가 하는 일 중 가장 큰 일은 음반을 제작하는 돈을 대는 것이다. 전업이 아니라는 건 이 돈을 대기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디 음반 제작은 투자 대비 효율이 좋지 않은 사업 중 하나다. 리스크가 적지만, 적은 대가가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낮은 확률로 적은 리스크로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 낮은 경우의 수를 노리고 카카오M, YG와 같은 곳이 메이저 인디 레이블이라는 이상한 개념의 제작사를 몇 개 만들었으나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실상을 깨닫고 손을 뗐다. 하물며 적은 리스크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그 성공이 지속되는 건 아니다. 지속을 위해서는 큰 규모의 인디 레이블이라는 역시 이상한 개념의 무언가가 되어야 하고 유통, 페스티벌 개최 등 음악 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레이블이 하지 않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 그러고보니 큰 레이블이 되어도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건 똑같잖아?

지금 나 자신도 경영 못하겠는데 여러 밴드의 음반을 제작해야 하는 레이블을 같이 경영해야 한다는 건 이런 일이다. 음반 프로모션과 미팅을 하는 와중에도 지금 여러분이 보는 것과 같은 글을 써야 하고, 케이팝 다큐멘터리 작가, 라디오 방송 출연, 영상 콘텐츠 제작 등 들어오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해야 하며, 게다가 스스로 일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조금은 뻔뻔해져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지금처럼 글이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어떻게든 완성하고 돈을 내놓으라 요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작고 불안한 일 수십 가지를 해내 커다란 불안 하나를 완성시키는 일이라고 말하곤 한다. 불안함으로 불안함을 메우는 삶.

그리고 2020년. 우리의 불안으로 점철된 삶에 코로나라는 전 지구적 불안이 닥쳤다. 불안 곱하기 불안 곱하기 불안. 불안의 쓰나미다. 불안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고 전 지구적 불안은 모두의 것이기에 우리만 힘들다고 말하는 건 염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해야겠다. 코로나는 음악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 대부분을 힘들게 했다. 음악 산업에서 공연이 중심이 된 지는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런데 코로나는 우리에게 중심이 되는 무대를 빼앗아갔다. 수입만의 문제는 아니다(물론 큰 문제이긴 하다). 음악가와 관객, 그리고 음악 관계자가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사라졌다. 더이상 음악은 청각 수단을 통해 듣는 미디어가 아니다. 음반에서 공연으로 헤게모니가 옮겨가며 음악은 공연장에서 음악가와 관객이 함께하는 경험으로 변화했다. 실제로 큰 공연이나 페스티벌이 끝나고나면 해당 음악가의 음원 수입은 크게 늘어난다. 사람들이 공연에서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듣고 싶어 해서라고 건조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는, 공연장에서 느낀 경험을 다시 재현하고 싶어서라고 설명하는 게 옳다. 이미 지금의 음악 산업은 이렇게 재편됐다. 그런데 현재는 아티스트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러한 경험을 줄 수가 없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코로나가 끝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까? 코로나가 끝나면 폭발적으로 소비가 늘거라는 얘기가 있다. 그 소비에 인디음악도 해당될지는 모르겠다. 아무리 음악을 많이 들어도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는 정액제고 사람이 물리적으로 일주일에 갈 수 있는 공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굿즈를 만들라는 잔소리를 할 생각은 접어두시라.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하면 대부분의 굿즈는 마이너스니까. 요즘은 시디가 굿즈로 소비되곤 한다. 룸306의 세 번째 음반은 시디로는 제작하지 않기로 했다. 두 번째 음반에서 시디 판매 부문이 적자를 봤기 때문이다. 손에 쥘 수 있는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정작 그걸 제작할 수 없게 되다니. 마음이 쓰리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처음부터 끝까지 ‘징징’대는 내용으로만 가득찬 이 글을 대체 누가 읽을지 궁금해진다. 조금이나마 밝은 이야기를 해볼까. 그나마 우리는 형편이 나은 편일지 모른다. 나도 밴드도 다른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매달 수입이 없어도 건물주의 수입은 보장해야 하는 클럽 같은 곳은 이미 폐업의 길로 접어들었다. 휴, 그래도 우리는 안 망했으니 다행인 걸까. 근데 나중에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어도 클럽이 없으면 어디서 공연을 할까? 망하는 건 단지 음악가뿐일까? 2021년 한국의 소규모 자영업자는 700만여 명이다. 내가 지금까지 적은 이야기는 언제라도 당신 또는 가족, 친구의 일이 될 수 있는 이야기다.

룸306의 세 번째 음반 ‹술과 꽃›은 소박한 불행을 주제로 한 음반이다. 다가올 위험을 감수하면서 진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는 것이 공동체의 차원에서 얼마나 필요한지 역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디 레이블을 운영한다는 건, 그리고 인디 음악을 한다는 건 장애물 달리기처럼 소박한 불행을 하나씩 하나씩 뛰어넘는 것과 같다. 앞에 굳이 ‘인디 어쩌구’를 붙이지 않아도 대부분의 삶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비록 눈앞에는 계속해서 소박한 불행이, 나중엔 커다란 불행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불행을 뛰어 넘은 직후의 쾌감을 기억한다. 공연장에서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정말로 행복한 표정을 짓는 관객. 이 음악을 듣고 힘든 순간을 이겨냈다고 적은 유튜브의 댓글. 아티스트와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 하루종일 씨름하다 비로소 마음에 드는 사운드가 나왔을 때의 희열 같은 것들. 그 기억을 덮는 더 큰 불행이 닥치더라도 나는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 다만 너무 큰 불행이 닥치지 않길 바랄 뿐.

Room306 – 보존 Preserve 

룸306, 앨범, 뮤직비디오, 꽃과 술

Writer

하박국은 :로봇_얼굴:기술인간  :큰_소리:음악사람 :토하는_얼굴:영기획 YOUNG,GIFTED&WACK Records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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