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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내가 디스코 편집물을 사랑하는 이유

Writer: 한스 니스반트Hans Nieswandt
vinyl, lp, djing, copycat, edits, disco, music

당연하게도 편집물 제작은 돈을 벌 수 있는 진지한 사업이 될 수 없다.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디스코 편집의 세계는 철저히 너드nerd들의 영역이다. 경제적으로 사업 모델을 만드는 게 애시당초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아티스트의음악을 가져다가 무허가 편집물을 발매하는 것으로는 음반 레이블을 경영할 수 없는 법이다. 애써 저작권자를 찾아 계약을 하고 하나의 주제로 정성스레 꾸린 아름다운 패키지의 앨범을 내놓으며, 재킷 안쪽에는 그와 관련 없는 1979년도 나이지리아 라고스를 배경 사진으로 풍성한 설명을 싣는 앨범 제작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편집물 음반 레이블의 면면을 살펴보면, 오히려 그보다는 그저 상상 속의 레이블인 경우가 많다. 레이블인 척하는 것이다. 편집물 문화의 큰 부분이 바이닐 음반에 대한 애정과 그것을 수집하는 행위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음반 중앙에 붙은 동그란 모양의 종이에는 제품의 인상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디테일이 적혀 있곤 하다. 그러나 거기에 인쇄된 정보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많은 경우, 법적인 문제를 피하려는 그럴듯한 거짓말과 위장용 가짜 정보만이 쓰여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흔히 그용도로 “캐나다 믹스Canadian Mix”라는 표현을 썼다).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절충적인 미적인 표현을 위한 또 하나의 시각적 플랫폼에 가깝다. 대다수가 가짜 빈티지처럼 꾸며져 있고 심지어는 가짜 얼룩을 디자인해 두는 경우도 있다. 바이닐이라는 전통을 지키고 싶어하거나 계속해서 파고들 수 있는 페티시의 대상을 존속시키려는 낭만적인 사람들이 만든 음반인 것이 한눈에 드러난다. 그들에게 있어서 바이닐이라는 고귀한 문화는 MP3 파일 같은 것으로는 대체하기 어려운 셈이다. 매우 소규모의 판타지 속 레이블에서 나온 이런 편집물 음반들은 «Star Time», «Disco Deviance», «Super Value», «Discolexic», «Bearded Science», «Hidden History», «Titanic Ballroom», «Mindless Boogie», «Editainment», «Copycat», «Razor’n’Tape», «Tuff Cut», «Flashback» 같은 제목을 달고(목록은 끝이 없다) 전문적인 바이닐 음반 매장에서매우 적은 수량으로 소리 소문 없이 갑자기 출시된다. 마치 바이닐 음반의 전성기 시절에 발매되던 출처가 모호한 수입음반처럼. 이러한 판타지 속 레이블 외에도 손글씨로 앨범 정보를 적거나 (동일하게 모호한 성격의) 스탬프로 찍은 정보를 담은 화이트 레이블도 많다.

vinyl, lp, djing, copycat, edits, disco, music

이러한레이블의 정체를 파헤쳐 보면 대다수는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이는 영국 팝 문화에서 오랫동안 곳곳에서 발견되었던 열정적이고 해적 같은 낭만주의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부유해지려고 훔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명분을 위해, (특정한 음악에 접근할 수 없지만 필요로 하는) 소외계층의 이익을 위해 도둑질을 하는 명예로운 해적 로빈 후드와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믿음을 지킨다는 북부 사람들이 지닌 전통적인 신념, 즉 소위하드코어 연속체”, 해적 기지 이야기, 여행자들과 영국의 반항적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온갖 다른 부류의 징후에서 비롯한 통념들이 편집물 제작에 반영된 것이리라. 필자는 특히 사람들의 접근이 제한되었던 음악을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고자 편집물 제작자들이 풀어놓은 경우가 주된 사례라고 본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할 정신적인 측면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사이먼 레이놀즈와 마크 피셔 같은 영국작가들이 “유령론hauntology”이라는 개념을 정의하며 길고 상세하게 서술한 바 있다. 유령이 들린다는 것haunted은 과거의 유령과 교감한다는 의미이다. 당신은 유령을 만질 수 없고, 물리적으로 그들에게 손가락을 댈 수 없다. 그러나 유령은과거의 대리인으로, 우리의 깊은 문화적 기억으로부터 현재로 온 메신저로서 여기에 존재한다. “유령론”은 이러한 유령과 함께 작업하는 예술이자 과학이라고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은 향수nostalgia라는 감정의 생산적인 형태이다. 개인적으로 편집물 작업을 통해 나의 어린시절인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좋아했던 유령 뮤지션들과 진득하고사랑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유령의 영역에서 이 유령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존재를 음반이라는 매체를 통해 전달하고, 환상의 세계에서 그들과 함께 노니는 것을 좋아한다. 이 환상의 세계에서는 디스코 문화나 히피 레코드와같은 과거의 유토피아적인 개념과 인공의 물질인 음반이 하나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내 상상 속의 더 풍요로웠고, 더욱 진보적이었으며, 더 사교적이던 시대의 상실을 애석하게 여기지만, 여전히 그 시대의 유령과 음악은 나에게 기쁨과위안을 주는 존재다. 편집물 디제이인 내가 원곡에서 듣고 느끼는 것은 단순한 음악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넘어녹음 당시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을 담배 연기, 공기 중의 먼지, 차 향기가 함께 떠오르곤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이 노래를 만들 때 공유한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내게 선명하게 전해진다. 편집을 할 때 이 정신과 후각적인 자극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 시대, 즉 더 이상 미래에 대한 낙관론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로 불러오고 싶은 게내 욕심이다.

Simon Reynolds – Mark Fisher Memorial Lecture 2020

사실 클럽과 디제이 문화에 속한 예민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커다란 갈망이 있다. 바로 순수한 디스코 유산의 유령들을 찾아가 함께 어울리는 것, 슈퍼클럽들과 이비자 섬에서 벌어지는 주말 파티 패키지 여행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디스코가 단순히 재미와 사업이 아니고 진정한 축제의 표현이자 갓 쟁취한 (게이, 흑인, 히피들의) 해방을축하했던, 과거의 조금 더 디스코에 열중했던 시기로, 혹은 편집물 제작자들의 상상 속에서만 계속 살아 있는 뉴욕, 이탈리아 북부, 혹은 잉글랜드 북부의 전설적인 클럽에서 조금 더 과감하게 일을 저질렀던 시기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이 그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편집물 제작, 심지어 (300 내지 500장 정도의) 소량의 바이닐 음반이 합법적이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저작권 침해부터 예술적 자유에 이르기까지 많은 의문이 제기되곤 한다. 그러한 게릴라 레이블 중 일부는 ‘전용 예술appropriation art’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한다. 예술가들을 위해서 혹은 예술가들에게서 돈을 걷는 협회인 BMI나 ASCAP(미국 작곡가, 작사가 및 음악출판사 협회)의 독일 버전인 GEMA의 이름을 따서 “Gema”라는 컴필레이션 시리즈가 출시된 적이 있다. 매시업mash-up*을 거칠게 날것으로 밀어 넣은 이 컴필레이션의 트랙을 나열하고자, 게릴라 레이블에서는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GEMA에 등록할 때 작성하는 오리지널 보고서 양식을 사용하였다. 무단으로 믹스한 음원사이에 저작권 옹호 로비스트와 정치가 들을 조롱하는 사운드 바이트가 들어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에서 정치적인동기로 전용된 예술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텍사스 주 휴스턴 출신의 펑크 밴드 컬처사이드Culturecide의 «Tacky Souvenirs From Pre-Revolutionary America» 앨범이다. 그들은 ‹Beach Boys›, ‹USA for Africa› 등의 오리지널 트랙에 효과를 더하고반기업 정서의 가사를 입혀 자기네 식으로 연주했다. 그 결과 마이너 컬트의 위상을 얻었지만, 원작자들과 엄청난 법적문제를 겪었다.

Culturcide – Bruce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주의적 행동(예를 들어 The KLF 밴드의 행동과도 같은)은 근본적인 질문을 암시한다. 재산 관리는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나? 노래가 일단 발매되고 나면 누구의 재산으로 귀속되는가? 디트리히 디데릭센Diedrich Diedrichsen이 자신의 책  『팝 음악에 관하여About Pop-Music』에서 지적했듯이, 팝 음악은 여러 가지 안에 매우 복잡한방식으로 결합된다. 그중 하나가 감상자의 역할인데, 감상자는 노래를 자기 자신의 삶에 통합할 방식을 찾게 마련이다. 바로 이것이 그 노래를 실제로 완성시키며, 그것만이 진정한 팝이라는 게 디트리히의 입장이다.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듯한 아티스트에게 이런 주장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에 아티스트가 통제권을 가진 적이 없다. 남들이 자신의 음악을 즐기고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통제권은 아티스트에게 있지 않다. 이것이 본질적으로 팝 음악이 그토록 오랫동안 큰 성공을 거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렇게 개인의 삶에서 개인적으로 이용되기 위해 팝 음악이만들어진 셈이다.

편집물을 이렇게 이용하는 것은 현재 매우 흔한 실천 방식이다. 이상주의자들에 가까운, 바이닐에 대한 페티시를 가진 몇몇 편집자들 외에, 이제 웹상에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한 홈메이드 버전 리믹스가 넘쳐난다. 이는 순수한 프로슈머주의prosumerism이다. 예를 들어 몇 해 전에 메탈리카가 루 리드와 함께 앨범을 냈을 때, 곧이어 웹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은 “이 끔찍한 노인네”를 편집으로 잘라내 새롭게 만든 여러 버전들이 쏟아져나왔다. 고인이 된 루 리드에게는 잔인한 일이지만 이러한 자체 권한 부여, 즉 수동적인 소비에서 적극적인 커스터마이징으로 옮겨간 사례를 직접 목격하니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내 노래도 일부분 편집본으로 돌아다닌다. 신경 쓰냐고? 자신의 음악을 강탈당한 느낌이냐고? 글쎄, 내 음악으로 수익을 내지 않는다면, 그리고 예를 들어 우익 선전선동 비디오에 내 음악을 넣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심하게 오용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차라리 관심과 존경을 받아 우쭐한 기분이 든다. 내 마음 속에서는 편집물 제작이 원곡을 존중할 수 있고 원곡을 기리는 한 가지 방법이어야 하므로, 나는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분명, 내가 누군가에게무언가를 하도록 영감을 준 것이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 비용을 청구할 필요는 없다.

Lous Reed & Metallica: The View

* 매시업mash-up: 편집물의 또 다른 하위 카테고리. 하나의 트랙이 아니라 두 곡 이상을 믹스하여 종종 재미있고 펑키하고 감동적이거나 풍자적인 효과를 낸다.

메탈리카 루 리드

Writer

한스 니스반트Hans Nieswandt는 독일 쾰른 출신 DJ, 음악 프로듀서이자 작가이다. 일렉트로닉Electornic, 테크노Techno, 하우스House, 디스코Disco 음악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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