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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디지털 노스탤지아도 노스탤지아다

Writer: 블럭Bluc
메이플스토리

사이버 공간에서도 추억은 쌓인다

추억의 사전적 정의,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것. 보통 개인이 체험한 가장 좋은 경험이 뇌에 녹진히 남아서 추억이 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추억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자신이 겪었던 개인적인 과거의 사건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어릴 적 일을 소환한다. 물론 추억이 최근의 일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시점은 과거형이다. 그런데 그 추억이 디지털 공간에 기반한 것이라면 어떨까. 예를 들어 코로나19 시기에 대학 시절을 보냈다면? 게임이나 가상의 공간에서 과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면? 어릴 때부터 게임이나 소셜네트워크의 매력에 빠져 온라인에서만 추억을 만들고 그것을 간직하고 지낸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의 디지털 추억도 추억이라고 긍정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온라인이나 가상 공간에서 한 경험이 어떻게 추억이 될 수 있느냐고 물을 것이다. 무릇 추억이라 하면 아직도 어렸을 때 하던 공기 놀이와 고무줄 놀이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흥행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여러 게임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예를 들어 1980년대생들의 어린시절을 되돌아보자. 싸이월드 방명록에 비밀글을 남겼던 추억으로만 남은 썸, 누군가가 우리의 연애를 알아채 주길 바라며 애인과 똑같이 깔아두었던 배경음악,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처음 간 오티에서 친해진 친구와 맺은 일촌명까지. 싸이월드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쌓은 이 같은 추억들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었지 않은가.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매일매일 수많은 소통을 한다. 그중에는 간혹 기억에 남는 즐거운 대화가 있다. 나와 같은 세대를 공유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우리의 청소년청년기에 메신저 사용은 그 자체로 추억이었다. 버디버디부터 세이클럽, 네이트온, MSN 메신저까지. 그 메신저들을 썼던 시기를 떠올리면 누군가와 나눴던 대화가 자동적으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싸이월드

© 싸이월드

버디버디

© 버디버디

© 버디버디

그래도 진짜 추억이라면 함께 눈을 마주치며 나눈 경험에 달려 있다고 말할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들로어릴 때에는 뛰어 놀아야 한다’, ‘그래도 친구들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서 만드는 추억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다같은 말들이 있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라인에서의 추억이 모두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은 이미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이나 스마트TV을 끼고 산다. 그들에게 있어 뽀로로나 아기상어는 가족보다도 더 친근한 존재이다. 이들처럼 아주 어릴 적부터 디지털 콘텐츠를 접하고 기기와 서비스를 사용한 세대들에게 온라인에서 쌓는 경험들은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다. 온라인에서 쌓이는 추억을 추억이라 부르지 못한다면, 추억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는 세대들인 것이다. 이런 시대에 디지털 공간에서 생긴 추억을 과연 온전히 부정하는 게 타당할까?

우리가 디지털에서 함께 나눴던 추억은

아쉽게도 디지털상에서 경험한 추억에 관한 진지한 분석이나 연구 사례는 찾기가 어렵다. 추억을 디지털로 데이터화하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는 했다. 그러나 디지털 공간에서의 추억이 어떤 식으로 공유가 되거나 재생산되는지, 또 각각의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관한 논의는 아직 부족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온라인에서 한 경험이 어느 개인에게는 더없이 소중할 수도 있다. 친구가 남긴 방명록 하나, 일촌평 하나, 어느 시간 동시에 접속해 애인과 나눴던 대화, 함께했던 모든 것들이 좋은 추억일 수 있다. 이처럼 누군가와 함께 나눈 추억은 실제 경험과 마찬가지로 훗날 같이 소회할 수 있으며, 쉽게 대화 주제에 올라 추억거리로 떠들 수 있다. 나 역시 짧은 경험이긴 하지만 디지털 공간에서 만들어진 추억이 있다. 과거에 방영했던 CF나 내가 플레이했던 게임도 모두 추억의 영역에 남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도비 플래시 플레이어의 기술 지원이 종료되며 기존에 플래시로 제작된 컨텐츠가 사라지던 때 온라인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추억이었다(플래시 외에 잠시 잠깐 디지털 공간에 존재했다가 추억으로만 남게 된 또다른 예로 뿌까, 마시마로, 졸라맨이 있다). 어느 유튜브의 05학번에 의해 소환된, 일면식도 없는 반윤희라는 인물이 모두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디지털로 박제된 05학번의 패션 영상 덕분이었다.

졸라맨

© 졸라맨

아빠와 나

© 졸라맨

© 아빠와 나

Fruit Ninja

나의 개인적인 디지털 추억 이야기를 해볼까. 나는 1990년대에 PC통신 유행의 끝자락을 아주 짧게 경험했다. 그러곤 2000년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시작했다. 지금은 없어진 mphiphop.com이라는 곳의 게시판에서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 커뮤니티 활동을 했다. 이 사이트는 당시 한국 힙합 신(scene)의 주류였던 마스터플랜의 홈페이지였다. 그곳은 어린 나에게 아저씨들이 힙합에 관하여 진지하게 가르쳐주는 논의의 장이었다. 래퍼들 간의 디스전이 공식석상에 나오기만 하면 게시판이 들끓었다. 열정 가득한 힙합 팬들은 그들의 팬심을 온라인 게시판에서 숨기지 않았다. 그외에도 밀림닷컴이라는 사이트도 종종 찾았는데, 이곳은 아마추어들이 만든 곡을 업로드하고 공유하는 곳이었다. 그 후 내 기억에 남는 인터넷상의 추억은 트위터로 옮겨갔다. 지금은 트위터를 하지 않지만, 여전히 그때 트위터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낸다. 그러한 경험은 밤섬해적단과 같은, 그 당시 트위터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존재들에 관한 기억으로도 이어진다.

요즘의 친구들은 아마 나보다 좀 더 디지털에 특화된 세대인 만큼, 인터넷에서 보고 즐기는 것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오프라인상에서 즐기는 것보다 온라인상에서 즐기는 것이 더 많아진 만큼, 그리고 디지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추억에 있어 디지털 혹은 온라인이 차지하는 부분이 훨씬 늘어났다. 아마 에브리타임이나 블라인드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에피소드 같은 건 추억만큼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경우도 제법 있을 것이다.

과거의 온라인 또한 추억이다

보통 인터넷 용어나 줄임말을 접하면 사람들은 지레 과민반응한다. 야민정음처럼 되지 않을까 우리말의 변형을 우려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유행어들은 수명이 짧다. 지금 이 시대에이나우왕굳같은 예전의 언어를 썼다가는 라떼 취급 받기 일쑤다. 야민정음 역시 요즘은 몇 가지만 남아있고, 지금 유행하는 몇 단어들 역시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언어 역시 모두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게 내 지론이다. 예컨대이란 단어를 공유했던 세대끼리는 그 한 글자만으로 2000년도로 바로 추억여행이 가능하다. 이는 단어뿐만이 아니다. CF나 노래로 추억을 되새기듯 인터넷 밈, , 유행어 모두 추억의 대상이다. 물론 밈이 제작되고 사라지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보니 흥행에 성공한 것만 남지만, 그래도 과거의 것들을 다시 만나면 반갑고 즐겁다. 인터넷상에서 데이터가 사라질지라도 즐겼던 추억은 남는 셈이다. 앞서 언급한 사라진 수많은 플래시 게임이 그렇고 아이러브스쿨, 프리챌과 같은 공간은 종료되어 사라진 서비스인 동시에 추억의 공간이다. 나아가면 PC통신이나 과거의 인터넷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도 유저에게 남아 있는, 같은 세대가 공유하는 기억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Annoying Orange – Rolling in the Dough

Annoying Orange – Rolling in the Dough

물론 철지난 유행을 추억으로 미화한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추억이라고 부를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라고라떼는 이런 게 유행이었어‘, 하며 분위기를 차갑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이미 밈이나 짤 하나로 충분히 향수과 그리움, 아련함을 느낄 수 있다!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추억의 밈을 보는 순간 당신 역시 그 당시의 자신, 밈과 얽힌 개인의 경험이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흑역사도 역사다, 문제는 흑역사의 빈도다

다만 무분별한 환경 속에서 좋지 못한 추억을 만드는 상황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실이 문제다. 돌이켜보니 인터넷 짤 중에 폭력적이거나 무지성에 가까웠던 콘텐츠도 많았다.무엇보다 온라인상에서 있는 것들 중 좋은 것만 있다는 것이 아닌 점도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각종 악플이나 미움이 가득한 글, 어릴 때 아무 생각 없이 쓴 글이나 인터넷에서의 싸움 등 좋지 못한 기억도 많다. 특히나 범죄에 해당하는 불법 촬영 같은 것들이 인터넷에 남아 있다면그런 것은 추억이라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하다 못해 네이버 지식인이나 SNS에 개인이 남긴 어리석은 글이 영원히 박제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기록을 삭제해주는 업체도 생기지 않았는가!

흑역사를 그리워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엄연히 말해 디지털 공간은 하나의 공간이지 추억의 공간만은 아니다. 물론 그 가운데 앞서 말했듯 디지털상에서도 삭제되어 찾을 수 없는 것도 있고, 추억의 영역이 아닌 것도 모두 혼재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추억을 찾고 그리워할 수도 있다. 기성 세대처럼 특정한 물리적 공간을 향유하고 몸소 느꼈던 것만이 추억인 세대는 지났다. 동시에 디지털 추억이라고 해서 디지털 공간에서 겪은 절대 다수의 경험이 모두 추억인 것도 아니다.

노스탤지아, 환경을 그리워하는 이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디지털 공간에서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을까? PC통신 시절, 혹은 SNS가 지금처럼 발전되지 않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노스탤지아는 충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싸이월드가 사라졌을 때 많은 사람이 그리워했고, 여전히 PC통신 당시의 추억을 떠드는 이들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동물의숲은 그때가 좋았지하는 이들도 생기고, 어쩌면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포트나이트는 그때가 좋았지라고 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그것 또한 경험이고 기억이며 그리움의 대상이다. 아마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메타버스에서 쌓은 추억이 몸으로 겪었던 추억을 밀어낼 수도 있다. 다만 노스탤지아가 형성되고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그러한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이 많아야 하는데, 지금의 디지털 환경은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래서 불과 찰나의 시간만 지나도 과거가 되어버려서 그리워하는 대상이 되고 만다. 물론 혼자만의 추억이라는 것도 충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추억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조건이 필요한 법이다. 문제는, 디지털 환경에 접어들수록 서로가 이해하고 함께 그리워할 수 있는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의 크기는 작아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향수라고 있을까

당연히 디지털 환경에 생기는 향수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디지털 노스탤지아는 이미 어느 정도는 존재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현실을 무작정 비판하거나 수용하고 말 것이 아니라 디지털 노스탤지아가 어떻게 발생하고 있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요즘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통 놀 수가 없다고 말하고는 혀를 쯧쯧 차는 것보다, 메타버스가 실제로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장난감보다 유튜브를 즐기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디지털 노스탤지아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경과를 관찰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디지털 노스탤지아의 예시는 무엇인지 일별해보고 파악하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무작정 디지털 환경을 비판하는 태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디지털 노스탤지아라는 말이 시기상조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향수라는 것이 그리워하는 마음을 의미하는 만큼, 그리고 그 단어가 가진 어감이 분명한 만큼 충분히 역사가 쌓이고과거가 된 다음이라야 그러한 평가가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다가온 현실이자 우리가 매일매일 마주하고 있는 순간이다. 이 단어의 의미를 부정하는 이들에게도 하나쯤은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온라인 세계에서의 경험과 기억이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세대가 다르면 공감대를 찾기 어려울 수는 있지만, 대상은 달라도 그 대상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메이플스토리

Writer

블럭(박준우)은 2011년 힙합엘이에 글을 쓰기 시작해 웹진의 시대 속 지금은 사라진 여러 매체에 글을 써왔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표본창고” 음악감독부터 청룡영화상 단편영화상 수상작 “신기록”의 번역까지 가리지 않고 여러 일을 해왔고, 월간 국립극장부터 월간 재즈피플까지 몇 음악 매체에 아직 글을 쓰는 중이다. 빌보드 본사부터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영포스트까지 해외 매체에도 기고했다. 스타트업 미디어 비석세스부터 디자인프레스까지, EBS국제다큐영화제부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램노트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고 글을 쓰지만 가장 오래 일해온 것은 음악 쪽이다. 11년차 전업 프리랜서이고 먹고 살아야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는 편이다 보니 이렇게 되었고, 그냥 쭉 이렇게 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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