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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전쟁터의 개들 Dogs of War

Writer: 이언 라이넘Ian Lynam
이안 라이넘, 도쿄, 고양이, 시바견, 개, 비애티튜드, ian lynam

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도쿄에 거주하는 디자이너 이언 라이넘이 개와 미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타입들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사회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사람들이 왜 스테레오타입에 갇히곤 하는지 허심탄회하게 풀어놓는 에세이예요.

우리는 곁에 아무도 없어도 소리를 낸다

나무처럼 혹은 광대의 눈물처럼

요, 난 광대들이 두려워

나는 작은 마을들이 두려워

‹어둠 속의 무지개Rainbow in the Dark›, 다스 레이시스트Das Racist

Part 1: 개들

올해 들어 도쿄에서 가장 추운 날이다. 길에는 캣피플들이 나섰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 집 바로 옆 공원 가까이에 작은 공간을 점유하고는 돌아가며 캠프를 세워 점점 그 수가 줄고 있는 도쿄 서부의 길고양이들을 먹인다.(1) 그곳에는 늘 사람들이 담요로 몸을 감싸고 앉아 있는데, 나는 두어 달 동안 동네에서 고양이를 본 적이 없어 그 모습이 의아하다. 

사실 전에도 이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약 12년간 도쿄에서 지내면서 세 장소에서 살았는데, 모두 두어 블록 반경 안에 있었다. 두 번째 집은 2층짜리 주택으로 약혼녀와 하우스메이트 한 명,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고양이와 함께 살았다.

그 고양이의 이름은 윌리였다. 윌리는 우리 집에 오기 전까지는 거리 모퉁이를 돌아다니며 먹을것을 구걸했다. 그래서 갱스터 윌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내가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살 때 길모퉁이에서 마약을 팔던 아주 다정한 마약상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고양이 윌리는 나를 따라 여러 번 집에 오더니 곧 나의 첫 번째 집에 들어앉았다. 윌리는 정말 좋은 친구였다. 윌리를 위해 뒷문을 열어두었더니 마음대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내가 먹는 음식을 언제든지 마음껏 먹으려 하고, 내 소파에서 빈둥거렸으며, 내가 책상에서 일할 때면 내 무릎에 앉아 프리랜서로 작업하는 그래픽 디자인 프로젝트들을 차례차례 열심히 살펴보았다. 나는 이전까지 오래 맺어온 관계에서 벗어난 시점이라 윌리가 함께 있어 정말 좋았다. 

앞서 언급한 두 번째 집으로 이사하자 고맙게도 윌리가 우리를 따라왔다. 윌리는 함께 사는 세 명의 인간이 모르는 사이에, 몇 해에 걸쳐 동네의 다른 여러 군데에도 드나들었다. 윌리가 집집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훨씬 나중에서야 알았다.

추위를 피해 뭉쳐 있던 사람들은 어느 날 밤 여러 집에 돌아다니며 거주하던 우리의 고양이 친구 윌리를 길고양이로 착각하고 잡으려고 했다. 그들은 우리집 마당에 상자 모양의 덫을 놓고 고양이 먹이를 미끼로 두었는데, 나는 그 사람들이 내는 이상하게 달가닥거리는 소리를 듣고 덫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이 재빨리 모퉁이를 돌아가는 모습도 지켜봤다. 

무단침입으로 그들을 경찰에 신고한 다음, 나와 룸메이트들은 남의 고양이를 무조건 잡아들이려 한 그 사람들에게 심한 욕을 퍼부었다. 그들은 알고 보니 보호소에 들일 수 있는 고양이는 구조하고, 들고양이 성향이 강한 고양이들은 이 도시의 공원에서 먹이를 준다는 전제하에 활동 중이었다.

그들은 윌리를 고양이 보호소에 들여야 할 고양이로 파악했다. 보호소는 근처 상가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루한 표정의 불쌍한 고양이들이 창가에 옹기종기 붙어 지나가는 행인을 간절한 눈길로 바라보며 자유를 갈구했다. 

나는 골수 고양이 애호가이지만, 이런 구조 활동가들은 지나치다고 본다. 이들에 대한 내 개인적인 판단이 그러하다. 그들은 구세주 콤플렉스와 탐욕이 뒤섞인 채 자신의 생각을 그럴듯하게 포장만 한, 전형적인 동물광이다. 이 정도로 고양이들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 질린다. 특정 대상에 너무 몰입한 사람들 같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식의 근시안적이고 강박적인 오타쿠 기질에는 질겁하게 된다.(2)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에는 늘 고양이들이 있었다. 어느 시점에 동생과 나는 부모님을 졸라 개를 들여왔다. 아버지가 스파키(기억이 확실치는 않다)라는 이름의 버릇없는 농장 개를 한 마리 데려온 것이다. 털에는 벌레가 득실거렸다. 내 기억에 스파키는 우리 집에 채 48시간도 머무르지 않았다. 거의 모든 방에 똥을 싸고 몇 명 되지도 않는 우리 식구 네 명 중에 셋을 물었다. 게다가 우리 고양이 두 마리를 겁에 질리게 했다. 나는 고양이들이 너무 불쌍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스파키를 데려온 곳으로 돌려보냈다.

어린시절을 되돌아보면, 이 사건 이후 우리 라이넘 가족은 ‘고양이과’ 사람들임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초기의 라이프스타일이 사는 내내 지속되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간간이 고양이들과 살았다. 최근에 마음에 드는 작은 개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개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편안하게 느낀 적이 없다. 최근 이곳 도쿄에 내가 공동 소유하고 있는 매장에서 미니어처 견종의 예쁘장한 개들을 매일 마주친다. 개들은 내 아내를 좋아하고 개 주인은 산책길에 항상 우리 매장에 들른다. 우리는 견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개들이 간식을 달라고 소소한 재주를 부리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 녀석들은 귀엽고 어리숙한 편인데다가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다. 아마 이 개들은 동종 교배되어서 시력이나 후각이 그리 좋지 않으며, 그래서 내가 미국에서 대체로 경험한 잡종견들의 특징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최근에 나는 미국에서 개 두 마리와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둘 다 나를 개싫어했다. 한 마리는 내 목을 노렸다.

개는 내 친구 마이크가 말한 “공포”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 공포는 내가 늘 느끼지만 없었으면 하고 바라는 습성이기도 하다. 많은 개 주인들이 펜스를 설치하지 않고 개 훈련에도 신경 쓰지 않았던 소도시에서 자란 덕분에 이런 공포가 생겨버렸다. 어릴적에 자전거를 타고 시골 길을 달려가면 개들이 어디선가 갑자기 튀어나와 쫓아왔다. 아마도 개들에게는 그냥 자연스러운 본능이었을 텐데, 개와 같이 지내본 경험이 없이 대체로 가족에게 보호받으며 살아온 아이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류의 경험은 내 평생을 두고 거듭 발생했다. 내가 어디에 살건 개들이 나를 노린다. 뉴욕, 오클랜드, 포틀랜드, 시애틀, 시카고.

한 3년 전 쯤, 로스앤젤레스에서 이스트 할리우드 부근을 산책하다가 핏불 두 마리 때문에 곤경에 처한 적이 있다. 나는 양쪽 다리를 두어 군데 크게 물렸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나는 소송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개 주인들이 너무 무신경했다. 그 사람들은 보이지 않게 숨어서 자기네 마당으로 개들을 불러들이고는 집 밖으로 굳이 나와서 내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건 솔직히, 너무 무서운 경험이었다.

묘하게도, 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런 식의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최근에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한 남자가 지갑을 빼앗으려고 나를 코너로 몰기에 나는 거리낌없이 내가 먼저 그 남자의 지갑을 빼앗겠다고 위협했다.(3) 그런데 개들한테는 그러질 못한다.(4) 그리고 그런 식으로 내가 폭망한 것을 안다. 내 경험들과 스테레오타입은 ‘본능’이 되었다. 그리고 그건 정말 문제다.

용서는 문화와 사회와 자연의 중요한 부분인데 우리는 이것을 자주 잊어버린다. 가장 발전된 형태는 아마도 자비일 것이다. 우리가 (아니, 내가) 스테레오타입에 얽매여 하나의 종 전체에 대한 판단을 내려버린다면, 사람의 영혼을 질식시키는 영향을 준다. 바로 여기서 증오가 자라나는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나서야 개들에 대해 품은 나의 견고한 혐오감의 원천을 없앨 수 있었다.

나는 살면서 만난 개들을 사랑하려고 애썼다. 가장 최근에 나를 공격한 개도 사랑하려고 했다. 또 다른 개와 단 둘이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절친의 개였는데 우리끼리 남게 되자 나를 보고 으르렁거렸다(작은 개라서, 닥치라고 하니 말을 들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개들은 인간, 정치, 현재의 사건들을 비유하거나 대신하는 표현이 아니다. 은유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야말로 개들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개를 사랑한다. 내 인생의 많은 사람들이 개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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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from Talking Barnacles ⓒ Patrick Tsai

Part 2: 전쟁

당신이 어떤 스테레오타입을 가졌더라도 항상 누군가가 나타나 당신의 스테레오타입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곤 한다. 

예를 들어, 나는 평생 동안 대놓고 미 육군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반대해왔다. 군산복합체를 무척이나 충격적인 현상으로 보았고, 특히 내 평생 미국이 세계 지정학에 참여하는 방식이 거슬렸다.

10대 후반과 20대 시절에는, 군대의 역사와 해외에서 이루어진 미국 군사 작전의 충격적인 본질을 서술한 좌파 성향의 자료를 상당히 많이 읽었다. 이것은 내가 미국에서 태어나 20년간 살면서 만났던 미국 군인의 태도와 규범 때문에 혐오감을 품게 된 이유에서 비롯됐다. 나는 정기적으로 틀에 박힌 반 군대 정서의 욕설을 하고 현직 군인이든 퇴직 군인이든 그들과 굳이 친구가 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물론, 나중에 내 감정을 변화시킨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우리 아버지는 미 육군에서 근무한 퇴역 군인이다. 어떤 계급으로 군 생활을 마쳤는지는 잊어버렸다. 우리는 군대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지만, 아버지 말로는 군 생활이 꽤 견딜 만했다고 한다. 전 여자친구의 아버지 역시 퇴직한 육군 중령이었는데, 군대에 대해 아주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다정한 사람이어서 나는 그와 여러 해에 걸쳐 군 생활 이야기를 길게 나누었다. 서로 다른 부대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말 친절한 보통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여러 대학에서 가르쳤던 퇴역 군인 학생들 덕분에 군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와 함께 일한 퇴역 군인들은 두 명을 제외하고는 성실 근면하고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과는 놀랄 만큼 강력한 대인관계와 아주 끈끈한 우정을 나누었다.

그중 한 명인 잭은 사우스다코타주의 소총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며 이두박근에 호러물을 테마로 문신을 했다. 다정한 아버지이자 남편이기도 하다. 또 스테판은 내가 만난 사진가들 중 가장 재능 있는 사람으로 꼽힌다. 티파니는 선원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마음이 녹아내리게 할 만한 사람이고 나는 종종 그렇게 마음이 약해졌다. 제이미는 전역 후 테네시주에서 디자인을 가르친다. 티미는 장애 보상금으로 우루과이에서 편하게 산다. 후안은 수출입 사업을 하고 있다. 채드는 홋카이도 시골에서 교사로 일한다.(5) 친구들 다수가 현직 디자이너, 아티스트, 작가, 교사 들이다. “자부심”이라는 단어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지만, 친구들 모두가 자랑스럽다. 모두는 아니지만 이 중 다수가 노동자 계층 출신이다. 미군에 들어가 제대군인원호법의 혜택을 받는 것이 그들 대다수에게는 미국에서 가난하게 사는 공포로부터 벗어날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들은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갔다. 그리고 계층적 위상면에서 자신의 처지를 변화시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동 가능성은 ‘아메리칸 드림’이 선사하는 선물이자 저주다. 물론, 이동 가능성의 큰 부분은 지리적 이동 가능성을 뜻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뉴욕주 북부에서 성장하여 열아홉 살에 내 뜻대로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다시 로스앤젤레스로, (바라건대) 최종적으로 2005년 도쿄로 이주했다. 내가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태어난 사실에 만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이동 가능성의 개념이며, 이 개념에 대해 사회문화적으로 고무되었으므로 살면서 항상 이동 가능성을 추구해왔다.

미국인의 이동 가능성이 가지는 또 다른 큰 측면은 경제적 · 재정적 이동 가능성이다. 미국인의 삶은 가난하게 태어나 부자가 되든지, 혹은 그 반대다. 나는 가난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의미 있는 개인적 경험이 없다.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고 내가 겪은 가난은 대부분 피해갈 만했다. 우리 부모님은 노동자 계층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났다. 아버지는 육군에서 수년간 복무하고 제대군인원호법을 통해 대학 학비 지원을 받았으며, 뉴욕 주정부에서 행정직을 구하여 동생과 내게 더 나은 삶을 제공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체감한다.

내가 현재 가르치는 학생들과 과거의 학생들 중에서 대다수는 미군 복무 기간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그 점은 내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겉으로 보기에 중요하지 않은 직위이더라도 미군에 입대하는 데에는 큰 위험이 뒤따른다. 

내 동생은 미군에 복무해서 죽었다. 부대에 있을 때 얻은 경험과 상처 때문에 제대 후 삶이 고통으로 피폐해졌다. 동생 이야기를 하기가 정말로 너무너무 힘들다. 동생은 개들을 무척이나 아끼는 사람이었고 다루기 힘든 어떤 떠돌이 개라도 잘 다루어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스테레오타입과 굳어진 행동 경향이 있다면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좋다. 그런 식으로 사람은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이 세상에서,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하여 더 나은 존재가 된다. 세상은 고정된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그 안에서 변화 없이 고정된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갈등을 일으키게 되는 셈이다.

도쿄에서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밤이다. 다시 캣피플들이 밖으로 나섰다. 나는 가까운 자판기에서 뜨거운 옥수수 수프 캔을 사서 그들에게 나눠준다.(6) 우리는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10년 전에 생긴 일에 대해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설명하고 사과한다. 그들은 이해한다. 나도 이해한다. 우리는 친구가 된다. 우리는 수프를 더 마시고 윌리의 딸일지도 모르는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사실인지는 절대로 알 수 없지만.

결국, 혼자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1) 도쿄 도지사는 도쿄에서 길고양이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하고 대체로 그렇게 실행해왔다. 고이케 도지사 님, 세계에서 제일 큰 수도에서 쥐들은 이 조치에 감사하겠지만, 저는 분명 그렇지 못합니다. 당신은 도쿄에서 가장 매력적인 특징 하나를 없애버렸어요.

(2) 내가 그런 사람이다. 상대적으로 디자인 역사를 강박적일 만큼 좋아하지만, 지식에 대한 내 열망에도 한계가 있다.

(3) 내가 그랬을 리가 없다. 나는 싸움꾼이 아니라 화가다. 

(증거: http://westdenhaag.nl/publications/Alphabetum/Writing_Writing)

(4) 물론 못한다. 개들은 지갑도 가지고 다니지 않으니까.

(5) 이 사람들의 진짜 이름과 직업이 아니며, 실제로 사는 지역도 아니다.

(6) 도쿄에서 눈 오는 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걸어다니며 도시의 변화를 바라보고, 캔에 든 뜨거운 옥수수 수프의 다양한 맛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이 일은 아무리 해도 질리지가 않다.

이안 라이넘, 도쿄, 고양이, 시바견, 개, 비애티튜드, ian lynam

Writer

이언 라이넘Ian Lynam은 그래픽 디자인, 디자인 교육, 저술 활동 등 다방면에 종사한다. 일본 템플대학교 교수이며, 버몬트 미술대학교 그래픽 디자인 석사 과정, 도쿄의 밈 디자인 스쿨에서도 가르치고 있다.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의 객원 평론가이기도 하다. 도쿄에서 디자인 스튜디오 ‘이언 라이넘 디자인’을 운영하며, 아이덴티티, 타이포그래피, 인테리어 디자인을 아우르며 작업한다. «IDEA»(일본), «Modes of Criticism»(포르투갈/영국), «Slanted»(독일)에 기고하며, 디자인 관련 서적을 다수 출간했다. 

ianly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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