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피디타스 스튜디오Rapiditas Studio’는 Layla와 David가 운영하는 세라믹 브랜드입니다. 스페인의 명물인 알함브라 궁전 근처 고택을 집 & 작업실로 쓰고 있어서 뭔지 모를 우아한 종소리가 그들을 감싸고 있을 것 같지만… 아니에요! 라피디파스는 컵이나 재떨이, 그릇에 유명 브랜드의 로고와 만화 주인공을 절묘하게 조합해 아주아주 키치한 세라믹 오브제를 만든답니다. 페라리 로고를 그린 재떨이에 씹다 만 껌 모양의 오브제를 올려 판매하기도 하고, 샤넬 로고를 그린 치킨 박스 형태의 도자기를 선보일 때도 있어요. ‘예상치 못한 조합에서 발견하는 유머’를 중시하는 그들의 성향이 잘 드러나죠. “가치 있는 쓰레기를 만들고 싶다”는 라피디타스 스튜디오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바로 확인해 보세요!
‹Chanel n5 tennis ball›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반가워요! 라피디타스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Layla와 David입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에서 세라믹 오브제를 만들고 있어요. 저희는 원래 공방에서 도자기 수업을 진행했는데요. 팬데믹 때문에 운영이 어려워져서 도자기를 만들어 온라인으로 팔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위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막막했는데요. 뒤돌아보면 당시 상황을 계기로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 인터뷰도 하고 있잖아요! (웃음)
스튜디오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예전부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예술, 디자인, 패션, 음식, 자연, 음악, 스포츠, 만화, TV쇼 등 창의적인 일이라면 일단 정신이 팔리곤 했죠. 그래서 주변 친구들도 예술가가 많았고, 저희 또한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하거나 DJ로도 활동한답니다. 생각해 보면, 무언가 계속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라피디타스를 운영하는 지금 상황이 무척 만족스러워요 (웃음) 온라인으로 저희 작업을 판매하면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있는데요.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으며 새로운 작업을 계속 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Shipping Vase›, 2022
두 분의 작업 공간을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희는 1900년대에 지은 고택에서 살고 있어요. 100년이 훌쩍 넘은 집이죠. 그라나다의 명소인 알람브라 궁전과 지척이랍니다. 공간이 꽤 넓은 편이라 한편에 작업실을 마련했어요. 작업실에는 저희 작업뿐 아니라 동료 아티스트의 작업,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오브제, 인터넷에서 사들인 여러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있는데요. 물건이 많아서 조금 정신없긴 해요. (웃음)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예상치 못한 조합을 상상하며 영감을 얻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샤넬이나 루이 비통 옷이 놓인 테이블 위에 갑자기 치토스 과자 봉지가 함께 있는 상상을 해보는 거죠. 그렇게 어울리지 않을 느낌의 대상이 서로 묶일 때 발생하는 유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보통 작업에 대형 브랜드의 로고와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물건,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책의 주인공을 함께 섞어봅니다. 여기에 못생겼다고 여겨지는, 혹은 키치하다고 생각하는 대상 중 우리에게 영향 준 것을 함께 조합하며 디자인을 완성해요. 한 마디로, 보통의 맥락에서 벗어난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세라믹 오브제에 녹여내어 한 차원 다른 분위기로 승화시키는 건데요. 그렇게 유머러스한 행로를 따라 작업을 지속해서 그런지, 언제나 창작이 즐거웠던 것 같아요. 좋은 재료를 배합해 도자기를 굽는 과정도 만족스럽고요.
‹Chanel fried chicken›, 2022
‹Second life tea set›, 2023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요. 즉흥적으로 시작하거나, 아님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거나. 너무 당연한 말인가요? (웃음) 즉흥적으로 작업할 때는 마지막까지 어떤 작업을 내놓을지, 손에 쥔 작업물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저희도 몰라요. 특별히 정하지 않거든요. 작업 자체가 지닌 장식적인 요소를 살피면서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뒤뚱거리며 나아갈 뿐이죠. 이럴 때는 최종적인 작업물보다 작업 과정 자체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올 경우가 많아요. 즉흥성을 이용하면 아름다운 결과물이 탄생할 때도 있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끔찍한 작업이 눈 앞에 펼쳐질 때도 있거든요! 반면,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진행할 때는 포토샵에서 정확한 치수와 원하는 색상을 확인하고 작업에 들어가요. 벼룩시장에서 구매한 빈티지 세라믹 오브제에 처음부터 계획을 세우고 진행할 때에는, 포토샵으로 정확한 치수와 원하는 색상을 선정해서 디자인합니다. 벼룩시장에서 구매한 빈티지 세라믹 오브제에 저희가 원하는 이미지를 입히는 ‘세라믹 데칼’ 기법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도 하죠.
‹Still life trash›, 2022
‹Trash artwork sketch›, 2022
라피디타스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희는 현시대의 담론을 기반 삼아 오래전에 사용하던 세라믹 오브제의 형태를 차용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형태만 보면 고대 유물 느낌이 물씬 흐르지만 그 위에는 신자유주의, 소비주의, 세계화를 암시하는 인물이나 상징을 그려내는 거죠. ‹Ferrari ashtray›가 대표적인 예시일 것 같네요. ‘페라리’ 로고가 박힌 재떨이를 보면 뭔가 되게 럭셔리하잖아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사회적 지위를 암시하죠. 저희는 여기에 씹다 버린 껌, 피다 만 담배, 다 써버린 지하철 티켓이나 작은 동전을 올려두며 상황을 전복시켜요. ‘가치 있는 쓰레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달까요. (웃음)
‹Ferrari ashtray›, 2023
‹Moto tea set›, 2023
최근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사회에서 ‘완벽하다’고 간주하는 것, 우리가 선망하고 성공의 증표로 여기는 것을 불완전한 이미지로 뒤엉키게 표현하려고 해요. 그래서 저희 작업을 보는 사람들에게 터무니없으면서도 피식 웃는 농담처럼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낯선 모습에 긴가민가하다가, 여러 작품을 살펴보며 폭소를 터뜨리는 거죠. 하하.
‹Ritz Ashtray›, 2023
이번에 비애티튜드와 협업해 스페셜 에디션을 만드셨어요!
비애티튜드에서 제안한 이미지와 분위기를 바탕으로 컬러 버전과 흑백 버전을 아우르는 아홉 가지 작품을 만들었답니다. 비애티튜드에서 독특한 무드 보드를 준 덕분에 저희가 만들던 방향과는 또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탄생해서 완전 재미있었어요. 평소 쓰던 석기, 유약, 세라믹 테칼 등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한 번도 저희가 신경 쓰지 못하던 이미지를 사용해 라티디타스 스튜디오 이름으로 새롭고 독특한 제품을 선보이게 되어서 무척이나 기쁩니다.
이번 비애티튜드와 협업한 작업 중 어떤 게 가장 끌리세요?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의 로고를 활용한 머그컵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좋아하는 브랜드 중에서 아직 도자기에 적용하지 않았던 케이스라서요. 비비안 웨스트우드 로고 덕분에 펑크 밴드가 자주 착용할 법한 빈티지 가죽 재킷이 떠오르는 머그컵을 보고 있자면, 다른 곳에서 쉽게 보지 못하는 독특한 작업이 탄생한 것 같아서 굉장히 신납니다.
Rapiditas Studio x BE(ATTITUDE)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두 분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도자기를 굽는 과정은 느리고, 매우 섬세하게 이뤄져요. 찰흙을 말리고, 불완전한 부분을 다듬고, 유약을 바르고 말리는 모든 과정을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길게는 72시간까지 걸리는 도자기 굽기가 남아 있지요. 여기서 절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돼요. 작은 오차라도 나면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하거든요. 온전하고 완벽한 세라믹을 손에 쥐기 위해서는 이렇게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과물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에요. 휴우~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작업하지 않는 날은 매우 평온하게 흘러가요. 이제 작업과 일상의 균형을 맞추는 법을 어느 정도 깨달은 것 같아요. 특히 집에서 일하는 상황에서 작업과 일상의 균형을 맞추는 건 정말 중요하거든요. 창의적인 디자인을 골몰하다가도, 휴식이 필요할 때는 충분히 쉬려고 노력해요. 고양이와 함께 놀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조용히 혼자서 시간을 보내면서요. 라피디타스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창작자로서 더욱 성장할 수 있었고, 창작하는 삶 그 자체를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서 기쁩니다. 창작에 몰두한 지난날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Our cat gucci x purina
요즘 꾸준히 관심을 두는 대상이 있을까요?
사람들과 소통하고, 두터운 신뢰를 쌓는 것이요. 근데 이 모든 건 결국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야만 가능한 일이에요. 자신의 건강 상태를 믿을 수 있어야 여러 계획을 세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매일 스스로 돌보고, 주변 모든 것이 원만하게 흐를 수 있도록 챙기고 있답니다.
두 분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희는 늘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해요. 삶은 언제나 복잡하고 혼란으로 가득하니까요! 그래서 작업할 때도 즐거운 마음으로 임해요. 우리가 즐겁게 만든 작업을 보고, 다른 누군가도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저희 작업에는 현실을 조금 더 명확히 보려는 태도가 묻어난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는 너무도 많은 광고에 파묻혀 있어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열망하게 만드는 주범이죠. 삶에서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도 그게 없으면 정상적인 삶이 아니라고 속삭여 대요. 소셜 미디어가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고요. 그래서 저희는 대중이 열망하는 대상과 거리를 두고 회의적으로 지켜보곤 해요. ‘과연 이 물건을 손에 쥐면, 정말 행복해질까?” 고민하는 거죠. 이런 태도가 패러디라는 작업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Bootleg Vase›, 2023 (좌)
‹Simpson Vase›, 2023 (우)
‹Chanel set›, 2021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사실 명확한 극복법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모든 일이 다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을 거라고 늘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 해요.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때로는 쓸모없지만 꼭 갖고 싶은 물건을 사기도 하죠. 아,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함께 탁구를 쳐요. 저희에게 탁구는 ‘사랑’이거든요. (웃음)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뚜렷한 해결법을 찾지 못할 경우에는 적절한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지금 상황을 솔직하게 말하고, 조언을 구하는 일을 망설이지 않는 것도 무척 중요해요. 의사 선생님도 그중 한 명이죠. 상처를 똑바로 마주 보며 교훈을 찾고, 적절한 도움을 통해 극복하는 과정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너무 많아서 문제인데요… (웃음) 우선 창작자로서 마주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늘 있어요. 동료이자, 가족으로서 늘 24시간 붙어있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도 빼놓을 수 없고요. 지나치게 더운 스페인의 날씨도 또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하.
두 분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작품과 우리 두 사람, 그리고 세상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상황을 중시해요. 더불어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일도 필요하고요. 저희를 발견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늘 있답니다. 또한 우리를 흥분시키고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동기를 늘 찾으려고 해요. 다만, 너무 진지하게 되는 건 피하려고 해요. 삶에서든, 작업에서든 말이죠. 늘 경계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아요.
‹Still Life›, 2021, Photography by Argider Aparicio
‹Noodle Vase›, 2023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거절에 대한 두려움, 여기서 비롯하는 수치심 등의 감정에 동요되지 않길 바랍니다. 너무 많은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창작자로서의 도전 정신이 자취를 감추는 경우를 자주 봤어요. 그러니 계속 도전하고, 또 다시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세상은 넓어요.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여러 창작자와 연결되는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8 bits Vase›, 2021
라피디타스는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누군가에게 기억되거나, 혹은 엄청난 대작을 남기고픈 열망은 없어요. 경쾌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배우려고 하는 편이죠. 동시에, 조금 엉뚱한 상상도 하는데요. 3~4000년 후 미래 인류가 21세기 유적을 발굴할 수도 있잖아요. 그들이 라피디타스 도자기를 발견한다면, 박물관 같은 곳에 모시는 일도 생기지 않을까요?
현재 두 분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복잡한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싶어요. 가족과 친구와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저희의 예술적인 근육을 계속 기르고 싶습니다. 지금 같이 사는 고양이들과 계속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또 언젠가는 서울에서 라피디타스만의 도자기를 만드는 날이 오길 기대해 봐요!
‹Smile funeral urn›, 2022
Artist
라피디타스 스튜디오Rapiditas Studio는 Rayla와 David가 운영하는 세라믹 공방이다. 그들의 작업은 스페인 마드리드, 오스트리아 빈, 영국 런던, 캐나다 토론토, 중국 홍콩, 대만 타이페이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2022년 영국의 유력 언론 «가디언»에서 기사로 다룬 바 있으며, 2022년과 2023년 이탈리아 그로탈리에 IT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ISSUE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 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 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
김현희 작가는 전통 가구에서 형태를 가져오되, 현대적인 소재를 활용해 작업을 완성해요. 특히 과거 여성의 생활공간에 쓰인 ‘규방 가구’를 반투명한 아크릴 소재로 재해석하며 주목받았는데요. 가구 내·외부의 경계를 지우고, 여성과 남성의 경계에 관해 물음을 던지고 있어요. 가구를 통해 동시대의 담론을 꺼내는 김현희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White Nostalgia»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김현희입니다. 가구를 주 매체로 활용하며 이야기를 전하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말하자면 길지만, 결국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할 때면, 이로부터 비롯한 작은 물음이 진지한 생각의 줄기로 이어지곤 했는데요. 이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표현 방법이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시각적 부산물을 만들어 내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것 같아요.
‹Para Era, Para Area›, 2019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이태원의 위치한 작은 상가 건물 1층을 작업실로 쓰고 있어요. 제 작업은 무겁고 부피가 크기 때문에 운송이 용이한 1층 자리를 찾았습니다. 근처에 철물 상가나 화방이 따로 없어 인프라 측면에서 큰 이점이 있지 않지만, 작업실 주변에 정말 재미있는 친구들이 많이 살아서 좋아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거든요. (웃음) 그리고 작업실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전방에 큰 유리창이 나 있어서 제가 안에서 대체 뭐 하는지 궁금한 분이 종종 문을 두드리곤 해요. 사람 만나는 일을 그다지 즐기지 않아서 처음엔 좀 번거로웠는데, 이제는 즐겁게 대하고 있습니다.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제가 하는 일을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워요.
사진. 강지훈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엇비슷하지만 미세하게 다른 하루하루를 보내며 힌트를 얻어요. 매일 버스를 타고 오가는 길에서 만나는 비슷한 표정의 다양한 사람들, 돌아오는 계절, 나이를 먹어가는 내 가족과 친구들, 고향에 대한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 여자로 태어나서 살아가는 즐거움과 힘듦에서 영감을 받곤 합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책 속 문장이나 속담, 영화의 특정 미장센Mise-en-Scène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미처 정의하지 못했던, 정처 없이 떠다니는 마음의 어떠한 감정과 딱 들어맞는 단어를 발견할 때가 있는데요. 그 단어에서 시작해 이야기를 확장합니다. 주변에 있는 익숙한 재료, 플라스틱이나 쇠, 신문지 등을 물질적으로 다르게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차오를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재료를 이렇게 저렇게 깎아보기도 하고 태워보기도 하면서 가지고 놀기 시작해요. 그러다 생각과 물질이 한 지점에서 맞닿으면서 세상에 보여줄 만한 의미 있는 작업으로 완성되는 것 같아요.
‹Q-bang series Bandaji›, 2016
‹Ham 4›, 2023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White Nostalgia› 연작 중 반닫이 시리즈를 소개하고 싶어요. 이전 작업인 ‹Q-Bang› 연작의 반닫이 시리즈는 이분법적인 관념에 대한 저항을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풀어낸 작업이었는데요. ‹White Nostalgia›는 개인적인 마음의 서사에서 출발한 작업입니다. 고향인 제주를 떠나 서울이라는 사회에서 지내면서,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몸과 마음의 권태를 오랫동안 겪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부적응적 삶의 태도가 비단 저뿐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대부분이 겪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죠. 이런 생각을 시작으로 인간에게 내재한 과거지향적이고 관념적인 본능(Nostalgia)이 삶을 지속하는 데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하고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얀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어요. 거짓말은 ‘이익을 위해 사실과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인데, ‘하양(white)’이라는 색의 속성과 함께하는 순간 단어의 의미가 반대로 변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하얀 거짓말(white lie)’이라는 단어에서 ‘흰색’이 주는 긍정적인 힘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그래서 저 또한 ‘기억’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끌어오기 위해 흰색의 힘을 빌어오기로 했어요. 그리고 익숙하지만 퇴화해 버린 한국 전통 가구의 이미지를 차용해 하얗고 반투명한 이미지로 변환했습니다. 가구에 무언가를 담으면 흐릿한 안개처럼 잔상이 남는데요. 마음속에 넣어두고 가끔 꺼내보는 추억과 닮은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을 보며 누군가 정적인 평화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떠안고 있는 문제의식이 혼자만 느끼는 게 아니고, 마찬가지로 나도 흔들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말하고 싶은 것 같아요. 전달이 잘 되는지는 모르겠는데요. (웃음) 작품이 슬쩍 내비치는 메시지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위로로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시들한 마음에 작은 불씨라도 지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제 작품을 사랑해 주신 덕에 ‘양’적으로 많이 제작할 수 있었어요. 아직 젊은 작가 입장에서 이런 행운이 큰 위로로 다가오지만, 이미 발표한 작업을 다시 만드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는 점이 고민입니다. 새로운 구상과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들어서 썩 불편한 감정이 피어오르기도 해요. 올해 하반기에는 기존의 작업을 쉬고, 새로운 작업을 구상하며 다시금 내면을 단단하게 하려 합니다.
‹Ancient Future Series No.1›, 2019
‹Ancient Future Series No.2›, 2019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평일에는 근로소득자로서 주 평균 40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어요. 주로 오전 6시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나 회사로 출근합니다. 오후 5시쯤 퇴근하고는 작업실로 향해 이르면 9시, 늦으면 12시까지 작업해요. 집으로 돌아가서는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얼른 잠을 청하는… 치열한 한 주를 살아내고 있답니다. 주말이 찾아오면 하루 정도는 집 안에 숨어있어요. 100보를 채 걷지 않으며 에너지를 충전해요. 남은 시간에는 미뤄왔던 서류 작업을 마무리합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남겨지는 것, 그리고 버려지는 것들에 많은 애정이 가요. 예를 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버리는 택배 봉투나 작업을 마치고 난 자리에 남겨지는 수많은 부산물을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관심 없이 바라보는 것에서 어떤 미의식을 되찾고 싶은 욕구를 느껴서 여러 가지를 실험하고 있어요.
‹White Nostalgia Series, Dui-ju›, 2020
‹White Nostalgia Series, Dui-ju›, 2020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논리적으로 표현할 길은 없지만, 생에 대한 의지, 삶과 사랑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누군가는 인생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하죠. 그런데 제게는 인생을 산다는 것 자체가 슬럼프인 것 같아요.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느껴요. 그럼에도 삶이라는 긴 권태를 잠시나마 잊기 위해, 작업을 하면서 세상을 다르게 보고 표현하려고 합니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는 일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 작업이 물리적인 힘을 많이 요하는지라, 최근 목디스크 진단을 받았어요.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들어서, 최근 2년간 작업에만 집중하느라 운동이나 건강 관리를 전혀 하지 못한 걸 후회하는 중입니다. 왜 사람은 꼭 뒤늦게 후회하는 걸까요? (웃음)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누구나 창의적이고 멋진 일을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를 업으로 삼고, 과정과 결과를 내보이는 ‘창작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몇 초간 번뜩인 깨달음을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수년간 연구하고 가공하며 ‘이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고민하는 과정은 굉장히 힘들고 지루할 수 있어요. 그래서 창작자라면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고통의 과정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소화해야 오랫동안 좋은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A Dream of Butterfly›, 2019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작업을 하면 할수록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는다면 절대 좋은 작업이 나올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돼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보다 ‘어떻게 해야 나의 솔직한 모습을 만날 수 있을까?’를 더 고민하기를 바라요. 눈치 보지 말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으면 좋겠어요.
‹White Nostalgia Series, The Light›, 2020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유쾌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데요… 아직 작품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웃음)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세상이 이상과는 정반대로 펼쳐져도, 유머를 잃지 않고 농담을 건넬 수 있는 사람으로 가득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AS SEEN BY» Rimowa, 2022
Artist
김현희는 익숙하고 퇴화한 과거의 이미지와 현대인에게 자리 잡은 신소재를 결합해 미래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가구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변화를 가져오는, 느린 속도감을 가진 매체라는 점에 주목하고 한국 전통 가구라는 연대적 매개체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진행한다. 특히 과거 여성의 생활공간에 쓰인 ‘규방가구’(규방은 집 안의 공간을 의미)에 주목해 고전미를 현재의 가치로 재정의한다. 젠더 문제에 관한 고정관념의 해방, 소홀히 여기는 일상의 가치 재발견 등 일상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가구를 통해 표현한다.
ISSUE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 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 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
세아추 작가는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눈길이 가고, 곱씹어 생각하고 싶은 것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기록합니다.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웃긴 밈meme은 주요한 작업 소재가 되곤 하죠. 삶에서도, 작업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태도 때문이랍니다. ‘작업에서만큼은 하고 싶은 말과 드러내고 싶은 감정을 솔직히 담아내고 싶다’고 말하는 세아추 작가.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기쁨을 작품으로 변신시키는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이 정도도 충분히 대견합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개인 작업을 병행하는 프리랜서 세아추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가 요즘에는 만들기에 도전하는 중이에요. 집에 머물면서 특히 누워있는 상태를 무척 좋아합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 CV를 보면 별다른 경력이 없어요. 몇 군데 직장을 다녀봤지만 버티기가 힘들더라고요. 지금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은 이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게 굉장히 많잖아요. 저는 아직 지금의 삶을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요. 정확히 말하면, 깜냥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웃음) 그래서 어딘가 소속되지 않은 채 꽤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현실적인 문제로 힘들 때도 있지만, 자유로운 생활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불안감을 떨쳐 내며 프리랜서로서 마주하는 이런저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입니다.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올 때, 가장 먼저 넓은 책상을 구매했어요. 밖에서는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움직이는 게 귀찮은 성격이라서요. 그렇게 넓은 책상에서 모든 일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해왔는데요. 올해 초 펀치니들Punch Needle 작업을 시작하면서 큰맘 먹고 간이 테이블과 트롤리를 추가로 구입했어요. 사무용 책상에서 작업하려니 애매하더라고요. 저는 주거 공간에 아무것도 없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요. 새로운 작업을 계속하는 와중에 덩달아 살림이 늘어서 걱정입니다. 지금은 컴퓨터 써야 하는 일은 침대방에서, 실을 써야 하는 일은 거실에서 작업해요.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끔 하는데요. 침대에서 거실로 가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는 지금의 작업실이야말로 제게는 작업하기 딱 좋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우연히 발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어요. 평소에 사진을 자주 찍는 편이라,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사진첩을 둘러보며 무엇을 그리고, 만들지 결정합니다. 평소 제가 생각하던 것이나 당시의 감정 상태와 겹치는 이미지를 발견한 후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더라도 제 느낌에 따라 그때그때 표현하고 싶은 걸 작업하는 편이에요.
왼쪽부터 ‹SOmurice›, ‹잠이 잘 오는 마법의 이불›
왼쪽부터 ‹이 눈빛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니›, ‹가끔은 비명을 지르고 싶어›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창작 과정에서는 작업하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을 자주 해요. 펀치니들은 단순 반복 작업이 전체 프로세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서 생각할 시간이 아주 많거든요. 큰 틀을 잘 짜두면 오랜 시간 긴장 없이 작업할 수 있어서 마음도 굉장히 편하고요. 그래서 작업하는 동시에 다른 작업을 구상하는 것도 가능하죠. 저는 항상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선택하는 게 제일 어려운데요. 펀치니들 덕분에 이런 고민을 오래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알고 보면 저는 비현실적인 공상을 하는데 더 시간을 쓰는 것 같아요. (웃음).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Cool Kids Jonna Sleep›은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작업이에요. 입체로 구현하는 일이 아직 어색하기 짝이 없어서 그림에 과감히 도전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꼭 만들어 보고 싶어서 겨우 완성한 작업입니다. 누워있는 사람과 침구는 제가 자주 그리는 대상이기도 하고, 요즘 잠을 잘 자지 못해서 푹 자고 싶은 마음을 담아 완성했어요.
‹CKJS: Cool Kids Jonna Sleep›
‹CKJS: Cool Kids Jonna Sleep›
‹마음을 담아서›는 가장 뿌듯했던 작업 중 하나였어요, ‘개자식’이라고 쓴 케이크죠, 전부터 꼭 만들고 싶었는데, 어떤 방식으로 만드는 게 효과적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 오랜 기간 보류 중이었어요. 그런데 다른 작업을 계속하다가 어느 순간 ‘이건 이렇게 풀면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만들어 보니까 실제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답니다. 성공!
‹마음을 담아서›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작업에서 유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어찌 됐든 이 세상을 살아가며 유머를 지키는 건 참으로 중요하니까요. 실제로 웃음이 삶이 균형을 맞춰주는 것 같기도 하고… 웃으면 복이 오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고 보면 제 그림에는 울고 있는 사람이 자주 등장하고 내용도 어두운데요. 펀치니들 작업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사실 펀치니들 작업이 너무 재밌어서 그림에 소홀한지가 좀 오래되었는데, 그동안 제 정서가 바뀐 거 같기도 해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그림 작업을 하면서 지낸 게 대략 10년 정도 되는데요. 펀치니들 작업을 시작한 지는 이제 8개월 정도예요. 두 작업을 이어온 기간에 대한 격차가 커서 작업할 때마다 몸소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작업에 필요한 유연성이나 순발력 면에서요. 사실 모든 작업이 멀게 느껴지는지라 펀치니들은 더욱더 멀기만 했는데요. 오히려 저는 이런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예전에 만들어 둔 작업을 보고 ‘이건 이렇게 했으면 더 빨랐겠다’ 같은 생각이 들 때 뿌듯하더라고요.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서인지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전혀 없어요. 점수로 치자면 5점 만점에 5점을 주고 싶고, 만족도는 가장 높은 ‘매우 만족’에 체크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네요.
‹내가 만든 내 친구들›, 2023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정말 별것 없어서 뭘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요. 일단 제 일상은 굉장히 불규칙하고 즉흥적으로 흘러가요.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시간을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편입니다. 꼭 해야 하는 일정만 미루어지지 않도록 조절하죠. 창피한 얘기지만, 최근까지 이렇게 지내는 데 별생각이 없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몸이 신호를 보내더라고요.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요. 저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에 모든 시선과 집중을 쏟는 편인데요. 이게 과로와 낭비의 원인이라는 점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제 일이든 놀이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열심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건강이요. 그동안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을 따로 구분했었는데요. 요즘에는 이런 구분 방식이 틀렸다는 사실을 실감해요. 운동을 몇 달 하다가 잠깐 쉬었는데, 그 짧은 기간 동안 상태가 몹시 안 좋아지는 현상을 경험했거든요. 혹여나 다른 원인이 있는 걸 아닐까, 이리저리 궁리해 봐도 결국 일상에서 바뀐 건 ‘운동을 쉬고 있다’는 사실뿐이라서 조금 절망했어요. 깨닫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깨달아 버린 것만 같달까요… 사람의 몸은 너무 비효율적인 것 같아서 진심으로 억울하기도 해요.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누구나 현실적인 문제와 내면의 괴로움에 세게 부딪힐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면 저는 충분히 화를 내거나, 깊이 낙심하고, 자책한 뒤에 꼭 웃긴 이미지나 영상을 봐요. 말도 안 되게 어이없어서 원초적이고 유치한 유머가 담긴 이미지나 영상을 찾아봅니다.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게 힘들어하지 않기 위한 셀프 처방인 셈이죠. 실소가 터지는 이미지나 아무 생각 없이 깔깔댈 수 있는 영상을 보다 보면, 앞서 고민한 게 비교적 별일 아니게 느껴져요. 특히 귀여운 동물 사진을 잔뜩 보는 걸 좋아합니다. 있는 그대로 이를 작업으로 만드는 게 참 재밌죠. 작업화하는 것도 참 재밌고요. 그렇다 보니 작업에 어떠한 메시지를 깊게 숨기는 일을 선호하지 않아요. 작업을 공개할 때의 태도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고요. ‘나는 오늘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런 걸 좋아하네’, ‘요즘은 이런 것도 참 웃기더라…’ 이 정도에 그칠 뿐이죠.
왼쪽부터 ‹밥 내놔›, ‹은.이.언.니›
‹두려울 것이 없는 다섯 친구들›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보통 슬럼프는 자신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때 찾아오잖아요. 저는 슬럼프로 인해 괴로웠던 시기가 정말 길었는데요. 이제는 그냥 무시하려고 노력합니다. 요즘에는 작업하다가도 스스로 너무 빡빡하게 구는 것 같으면 ‘이만하면 됐다’는 문장을 계속 상기해요. 잘 안되는 작업을 억지로 붙잡으면 몸도 마음도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면 과감히 쉬는 편이에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얼마 전에 치과에 다녀왔는데, 진단서를 보니까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른이 되면 이 정도 돈은 항상 주머니에 챙겨야 하는 건가…’ 싶어서요. 그 주 내내 마음이 힘들었어요. 가끔 이렇게 금전적인 문제로 직격타를 맞으면 제가 살아온 삶 전체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속마음›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하자’를 작업 신조로 삼고 있어요. 무언가에 빠져드는 기회, 열심히 하는 시기, 그리고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결코 무한하지 않거든요. 이런 때와 마음은 매 한 사람의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우연의 중첩이라고 믿어요. 원한다고 쉽게 마주할 수 있지 않기에, 실제 마주하면 힘껏 소중히 여기려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좋아하는 걸 지속하는 상황은 정말 어려운지라 선뜻 말하기가 쉽지 않네요. 저는 그냥 계속 해 보는 것 같아요. 여기서 ‘그냥’과 ‘계속’이 포인트예요. 제 고질적인 습관은 깊이 생각하며 과하게 걱정하는 건데요. 깊이 고민하지 않을수록 좋은 것 같더라고요.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좋아하고, 그리고 현재를 있는 그대로 즐기다 보면 많은 일을 쉽게 느낄 거라고 믿어요.
‹SOmurice›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구질구질한 면은 있으나 솔직한 사람. 저는 제 생각을 즉각 말로 전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어요. 소심하고 걱정 많은 사람이라 일상에서 명쾌한 순간이 잘 없네요. 그래서 작업할 때만큼은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고, 최대한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해요. 가끔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면 ‘그래, 이거다!’라는 명료한 느낌을 받는데요. 제게는 그 느낌이 무척이나 소중합니다.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문제가 작업을 하면서 한번 정리되고 해소되는 것 같아서요. 그 과정에서 제가 지닌 약점이나 판단 오류가 종종 공개되는데, 딱히 부끄럽지는 않아요. 오히려 속이 시원하죠. ‘하고 싶은 말이나, 드러내고 싶은 감정을 작업에 솔직하게 담아내는 창작자’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특별히 꿈꾸는 미래는 없어요. 다만 가까운 미래의 제가 요즘처럼만 지내면 좋겠네요. 지난날에 비해 최근의 저는 굉장히 안정적인 상태라서요. 이런 기분을 거의 처음 느끼는 것 같아서 생소한 기분마저 드는데요. 기분이 나쁘지 않네요. 지금 감정이 꾸준히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해를 넘겨도,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에 별생각 없이 잘 지낸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Artist
세아추는 곱씹어 생각하고 싶은 것,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눈길이 가는 것, 흥미를 느끼는 것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기록한다.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생각, 길을 걷다 발견한 껌딱지의 표정, 이런 대상에 집중하는 자신의 상태 등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관심을 그때그때 붙들고 싶은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최근 새로 시작한 펀치니들 작업으로 개인전 «사연 있는 친구들»(PRNT, 2023)을 열었다.
ISSUE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 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 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
곽인탄 작가는 과거의 잔여물을 재구성해 현재의 조각으로 만들어 냅니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놀던 기억과 당시의 기분을 엮어내거나, 미술사를 살피다 관심이 든 회화에서 작품이 출발하기도 해요. “끊임없이 궁금한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곽인탄 작가. 유일무이하고 독특한 작품을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을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허공으로의 행진›, 2020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조각 작업을 하는 곽인탄입니다. 2016년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3의 영역»을 열었고, 지금도 조각에 대한 탐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교 때 조각을 전공하면서,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과정 자체에 흥미를 갖게 되었어요.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점토를 가지고 놀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동물을 점토로 꼼지락거리며 성취감을 느꼈죠.
‹Movement 4›, 2022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경기도 파주시에 작업실이 있어요. 조각 작업을 하려면 공간이 넓어야 해서 공장형 작업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넓은 마당이 딸려있어 작업하기 좋은 환경이에요. 실내에서는 주로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분진이 많이 날리는 작업 등은 야외에서 진행합니다. 작업실 주변에 밭도 있고, 나무와 풀이 많아요.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죠.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일상에서 일어나는 상상이 작품에 많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접하는 이미지와 텍스트로부터 여러 생각이 뻗어 나가는데요. 실제 물성을 지닌 조형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작업이 완성됩니다. 미술사를 살피다 관심이 든 회화를 참고할 때도 있어요. 최근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추억, 혹은 평소 제가 좋아하는 장소의 풍경에서 영감 받아 새로운 조형을 시도 중입니다.
‹Palette 2›, 2022 (좌)
‹Palette 3›, 2022 (우)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즉흥적으로 진행하는 편이에요. 구체적인 아이디어 스케치에서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오히려 스케치 없이 시작할 때가 훨씬 많죠. 평소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구상을 발전하다가 바로 작업에 들어갑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표면에 스케치를 끊임없이 하며 입체적인 조형으로 발전시켜요. 조각에 채색하기를 실험할 때도 있고요. 작품 자체에 입체적인 스케치가 겹치는 과정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작품이 완성되는 기분입니다.
최근 ‹놀이터 1›, ‹조각 교차로 1›을 작업했어요. 두 작품 모두 작은 조각이 모여 하나의 조각으로 탄생한 작품입니다. ‹놀이터 1›은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다양한 놀이를 하며 하루하루 설레는 기분으로 뛰어놀던 시간들, 그때 눈에 담았던 풍경이 작품 전체에 다채로운 잔상으로 교차하며 등장하도록 설계했어요. ‹놀이터 1›에서 조각이라는 매체는 제가 상상하는 타임라인의 풍경이 되기도 하고, 그 시공으로 들어가는 문 역할도 맡습니다. ‹조각 교차로 1›은 미완성 상태로 방치하던 두상 조각을 받침대로 썼어요. 두상 안면부의 거대한 구멍은 다양한 종류의 조각이 교차하는 통로이자 문으로 설정했습니다. 두상 조각을 관통하는 유기적인 선의 조형은 도로 교차로를 참조했어요. 교차로 위 여러 조각은 손으로 직접 제작한 부분과 이를 3D 스캔하고 3D 프린터로 출력한 결과물을 섞어놨어요. 실제와 가상을 교차하며 변주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끊임없이 확장할 수 있도록 구성했죠.
‹놀이터 1›, 2023
‹조각 교차로 1›, 2023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조각을 공간, 혹은 풍경으로 바라봐요. 제가 상상하는 여러 타임라인을 펼치고 재구성하려고 노력합니다.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작품에 기록하고 표현하며 여러 시간과 풍경을 혼합해요. 더불어 창작 활동을 놀이의 장으로 삼습니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생각이 자유로워지기 보다 불안함과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져서, 미술의 순수성과 유희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어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과정뿐 아니라, 미술을 대하는 전반적인 태도를 전보다 자유롭게 바꾸려고 엄청나게 노력해요. 덕분에 작품도 흥미롭게 발전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습니다. 다만 미술을 유희하는 과정에서 작품이 너무 쉽게 변주될 때는 고민이 늘기도 해요. 작품의 내용과 진지함 역시 놓치지 않기 위해서 늘 신경 쓰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작업에 투자하고 있어요. 다른 일도 틈틈이 합니다. 1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사람들을 만나고, 전시도 보면서 휴식을 가져요. 작업 시간 이외의 일상을 재밌게 보내고 싶은데, 아직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활기차게 생활하기.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이 많지만, 그동안 미뤄왔던 일상도 챙기려고 해요. 창작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며 작은 시간이라도 내어서 운동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 성격이 끈기 있는 편인데요. 작업하면서 그대로 반영되는 것 같아요. 작업을 시작하면 과할 정도로 다른 유혹을 참으며 집중하거든요. 또 감정 표현이 솔직한 편인데, 평소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을 작업 과정에서 과감히 표현해요. 제 욕심과 욕구가 작품에 드러나는 느낌이에요.
‹발작›, 2020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가 온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작업이 안 될 때도 그저 꾸준히 합니다.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시간에 무기력함이 동반하는데, 작업을 통해 활기를 찾고 자존감을 확인하는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지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요. 독립을 생각 중인데, 늦은 나이에 독립하려고 하니 전에 비해 더욱 진지하게 대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최근 경제적인 부분에 많이 신경 쓰고 있습니다. 또 작가 활동을 이어가다 보니 성격도 비현실적으로 발전되는 기분이라 개선해 보려고 나름 노력 중이에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특별히 중시하는 부분이 따로 있지는 않아요. 다만 창작자는 본인만의 독특한 생각으로 표현하고,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과 다양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업 시간은 대부분 혼자 보내야 하니까 이때 직면하는 무기력과 외로움을 인내하는 게 필요합니다.
‹Movement 21 1›, 2021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본인이 하는 일에 확신이 있어야 해요. 처음부터 확신을 가지기란 쉽지 않지만, 하나씩 하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다채로운 피드백을 얻어야 합니다. 새로운 미션을 과감하게 시도하고, 스스로 자신감을 얻는 과정을 반복해야,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린이 조각가›, 2022
‹Palette 1›, 2022
«Sculpture Gate» Space 9, 2020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글쎄요, 어려운 질문인데요. 작품을 만들 때마다 ‘어떻게 하면 조각으로 제 모습을 독특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요. 제 작품을 접하는 많은 분들이 유일하고 독특하다고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끊임없이 궁금한 작가가 되고 싶어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작품 활동만으로 충분히 수익을 내는 전업 작가가 된다면 정말 좋겠어요. 창작에 더욱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지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미술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지속됐으면 좋겠어요.
«Palette» 공근혜갤러리, 2022
Artist
곽인탄은 과거의 잔여물을 재구성해 현재의 조각을 제작하는 데 집중한다. 미술사에 서술된 회화, 조각을 자유롭게 해체하고 동시대 조형 방식을 활용해 독특한 조각을 창작한다. 미술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겪는 여러 문제와 불만을 해소하고 극복하기 위한 유희의 장으로 조각을 활용 중이다. 개인전으로는 «Palette»(2022, 공근혜갤러리), «Sculpture Gate»(2020, space 9), «Unique Form»(2019, studio 148)을 열었고, «영원한 침묵을 비춰다오»(2023, GCS), «대발생»(2023, 은평문화예술회관), «조각충동»(2022,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인저리타임 1»(2021, WESS), «인저리타임»(2021, 뮤지엄헤드), «에피파니아»(2020, 온수공간)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ISSUE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 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 EXPLORE YOUR ARTISTIC LIFESTYLE
‘프리키 케이크Freaky Cakes’는 이소리가 운영하는 케이크 픽업 숍입니다. 제 이름을 꼭 닮은 독특한 모양과 알록달록한 케이크로 존재감을 알렸는데요. 앞으로 케이크를 도화지 삼아 회화,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을 펼칠 계획이라고 해요. 외부에서 전해지는 피드백보다는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이상적인 미래보다는 찬란한 현재에 주목하는 프리키 케이크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프리키 케이크의 이소리입니다. 케이크를 만들다가 찾은 정체성을, 다시 케이크에 담는 재미난 순환 속에서 지내고 있어요.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뜬금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프리키 케이크는 미술 전시 «충동으로 이어지는 아흔아홉 고개»에서 출발했어요. 해당 전시는 관객에게 작가의 진로를 상담받는 인터랙티브 아트 형식으로 진행되었죠. 당시만 해도, 저는 충동으로 얻어낸 온갖 재주로 소위 잡탕밥(?) 같은 삶을 살고 있었는데요. (웃음) 직접 만든 모형 케이크와 네일 아트 도구를 들고 전시에 나갔어요. 기회가 되면 관객에게 타로점도 봐 드렸죠. 그중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게 케이크였답니다. 저도 전시를 준비할 때 케이크 만드는 일에서 가장 큰 흥미를 느꼈고요. 그렇게 관람객의 반응과 저의 감정을 계기로 케이크를 만들게 되었어요.
작업실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금은 케이크 픽업만 주로 하고 있는데요. 필요 이상으로 크게 느껴져서 앞으로는 용도를 한정 짓지 않고 다양한 이벤트를 열 계획이에요. 다양한 사람이 만나고 어울리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물상화된 작품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아요. 작업을 이어가다 보면 종종 저만의 판단에 갇히곤 하는데요. 그럴 때면 그 세계에서 저를 꺼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가요. 손에서 탄생하는 결과물은 순간의 우연에 맡길 수도 있지만, 이를 더욱 예민하고 번뜩이는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세계를 벗어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우연히 어떤 발상에 이끌려 무념무상 속에서 작업을 마쳐요. 완성된 작업물을 보면서 ‘내가 왜 이렇게 만들었지?’ 고민하는 편입니다. 저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인 것 같아요.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 가까이 지내는 뮤지션 선레이크(@sunlake_archive)님의 앨범 커버 작업을 맡았어요. 라임과 식용 펄, 네일 파츠로 커버 이미지를 완성했는데요. 언뜻 보면 시계가 떠오르는 형태로 만들었죠. 무기력하게 고민하며 보내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중에 되돌아보면 지금 이 순간이 당신을 만든 가장 값진 순간이 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앨범의 수록곡인 ‘다음날’의 가사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 대한 내용이거든요. 앞으로의 미래를 고민하는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시간 낭비로 비칠 수 있지만, 그 시간도 싱그럽고 반짝이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앨범 커버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어요.
‹다음 날› 커버 이미지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해요. 창작을 지속하다 보면 정신적인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요. 그럴 때 몸을 덜 쓰면 생각에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이에요. 저는 정신적인 부분에 마음을 많이 두고 사는 편이랍니다. 그래서 ‘정신을 잘 다스려야 창작을 지속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어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말이 참 많아지는데요. (웃음) 요즘은 점성술을 공부하고 있어요. 점성술을 활용한 상담도 소소하게 하고 있답니다. ‘인간에게는 주어진 운명이 있다’고 믿는 점성술에 거부감을 가진 분도 종종 만나는데요. 자기 자신의 한계점을 알 때 이를 벗어나는 방법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점성술을 통해 만나는 분들이 ‘나’라는 한계의 바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조용히 돕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작업을 할 때 꼭 심오한 의미를 담지는 않아요. 다만 저에게도 게으름과 두려움 그리고 절망이라는 울타리가 쳐져 있는데요. 작업물을 만들고 세상에 꺼내 놓는 일이 바로 이런 울타리에서 잠시 나와서 하는 행동이지요. 그때 찾아오는 해방감을 사랑하기도 하고요. 이런 시도가 프리키 케이크의 내밀한 의미가 되는 것 같아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슬럼프는 ‘극복’이라는 단어로 넘어설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슬럼프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서 승패를 가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언제까지 슬럼프가 내 안에 왔다 갈까?’라는 마음으로 기다려요. 슬럼프를 겪는 기간이 길다 싶으면 케이크에만 매달리지 않고 작업실 밖의 재미있는 경험을 찾아가려고 하죠. ‘흥미’라는 감정을 어떤 방법으로든 자극하는 걸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거창한 방법을 찾을 때도 있지만, 작업실이나 집에서 노래하고 춤출 때도 있어요. (웃음)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케이크 만드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마치 저를 대표하는 것이 되어버려서 고민이에요. 저는 회화나 영상 작업도 하고 싶고, 크루를 형성해 공동 작업도 해보고 싶거든요. 다만 체력과 시간이 부족해서 계속 미루다 보니 지금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프리키 케이크를 만들기 전에 잡다한 흥미를 가졌던 때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네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일상의 작은 부분을 확대할 수 있어야 해요.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도 좋지만, 이 역시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시겠어요?
외부의 성과나 인정에 기대어 창작을 지속하다 보면, 결국 손에서 놓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외부의 피드백을 받는 일은 창작을 이어가는 데 중요하지만, 스스로 중심을 정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작품 한 가운데는 텅 비어버릴 수 있거든요.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은 활짝 열어 놓되, 자신에게 유효한 내부 동기를 튼튼히 세워놓아야 건강한 창작 활동을 지속할 수 있어요.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10년 뒤에는 예술과 관련된 일이라면 전부 다 할 수 있는 ‘올라운더’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각기 다른 것을 제법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백현진 님처럼요. 앞으로 이렇게만 살아갈 수 있다면 완벽히 성공한 인생일 것 같네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이상’과 ‘미래’는 참 좋은 말이지만, 지금의 사회 흐름을 살펴보면 현대인에게 가장 불필요한 말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미 충분히 피로한 사회인데, 현재를 벗어나 이상과 미래를 그리다 보면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 커져서 자꾸 무리하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그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현재’라는 찬란한 순간을 축소하지 않았으면 해요.
Artist
프리키 케이크(@freaky.cakes)는 2022년 7월 미술 단체전 «튜브타고 창문 넘어 아흔 아홉고개 사랑»에서부터 불현듯 탄생한 케이크숍이다. 이름은 케이크지만 다양한 작업을 시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케이크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구매할 수 있고, 협업 의지도 아주 활짝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