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cha! WOOR 유리아·이민지가 뽑은 것

Gacha!

GACHA!

흥미로운 인물에게 랜덤 질문을 던집니다.

가챠는 일본말 가챠가챠(がちゃがちゃ)의 준말입니다. 작은 기계에서 나는 시끄러운 금속음을 말하는데요. 우리에게는 랜덤하게 캡슐을 뽑는 게임으로 익숙해요. 저희는 이 가챠 시스템을 인터뷰에 적용했어요. 궁금한 질문을 마구 그러모은 후 인터뷰 현장에서 무작위로 뽑아 대화를 청합니다. 보통의 인터뷰와는 분명 다른 맛이 나겠죠?

랜덤으로 질문하는 예측불허 인터뷰에 올라탄 세 번째 주인공으로 모자 브랜드 ‘WOOR’을 운영하는 유리아·이민지 대표를 모셨습니다. 수많은 패션 브랜드가 피고 지는 요즘, 두 사람은 처음부터 ‘모자’에 초점을 두고 브랜드를 운영해 왔는데요. 여기에 ‘PeeP’이라는 팝업 겸 편집숍까지 연다는 사실은 에디터의 흥미를 더욱 자극했죠. 두 사람이 모자를 만들게 된 계기와 편집숍을 운영하며 겪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왼쪽부터 이민지, 유리아

◑ 서로의 스타일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을 한 가지 꼽아주신다면요?

유리아(이하 리아): 스타일도 그렇지만, 민지 언니의 큰 키가 제일 부러워요. 저는 언니를 실제 만나기 전부터 인스타그램에서 일방적으로 팔로우하고 지켜봤는데요. 평범한 옷을 입어도, 비율이 좋아서 태가 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분위기와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언니가 올렸던 사진들을 저장하고 레퍼런스로 삼았던 기억이 나요. 무슨 짝사랑하는 사람처럼요. (웃음)

┗ 그러다가 DM으로 연락을 해서 만나게 되신 건가요?

리아: 의류 쇼핑몰에서 만났어요. 제가 먼저 사무직으로 일했고, 언니는 나중에 모델 겸 아트 디렉터로 영입되었죠.

┗ 서로의 첫인상이 궁금하네요.

이민지(이하 민지): 리아의 첫인상은 정말 일 잘하는 회사원 같았어요. 디자인이나 패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아닐까 어림짐작하기도 했죠. 빠르게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 때문에 성숙해 보여서, 저보다 나이가 어린 줄도 몰랐어요. 그러다가 동대문으로 함께 시장 조사를 나갈 일이 생겼는데, 서로 취향도 잘 맞았고, 리아가 내는 의견들이 하나같이 다 제 스타일이더라고요.

┗ 그럼 그때부터 WOOR을 준비하신 건가요?

리아: WOOR을 준비한 건 회사를 나온 후예요. 2018년 즈음 공교롭게도 같이 퇴사하게 되었는데요. 직장을 찾다가, ‘아예 함께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언니를 알아갈수록 제게 없는 부분을 갖고 있어서 좋더라고요. 상상력도 풍부하고, 무언가를 서칭해서 필요한 자료를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났죠. 반대로 저는 실행이 빠른 편이고, 운영에 필요한 부분을 챙기는 데 자신 있었어요. 그렇게 함께하기로 마음먹고, 어떤 아이템을 만들지 고민하다가 모자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어요.

┗ 첫 사업 아이템으로 모자를 떠올리기 쉽지 않을 텐데 흥미롭네요.

민지: 사실 특별한 계기가 있었어요. 2015년 즈음 인스타그램이 막 활성화되던 시기였는데요. 제가 무인양품에서 구매한 버킷햇을 쓰고 찍은 사진을 올렸어요. 얼굴을 거의 가릴 정도로 푹 눌러쓸 수 있는 깊이의 검은색 모자였는데요. 그 사진에 ‘좋아요’가 엄청 눌린 거예요. 댓글이나 DM으로 제품 정보를 묻는 분들도 많았죠. 그래서 의류 쇼핑몰을 다닐 때 모자를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떠냐, 제안도 받았어요.

리아: 언니가 모자 쓴 사진이 인기가 많기도 했고, 무엇보다 둘 다 모자를 좋아했어요. 그리고 저는 예전부터 의류 업계에서 일해서 모자 만드는 과정을 알고 있었죠. 그렇게 우리가 원하는 형태의 버킷햇을 제작해보자고 마음 먹은 게 WOOR의 시작이에요.

┗ 반응은 어땠나요?

리아: 저희 기대보다 훨씬 더 잘 팔렸어요. 블랙, 네이비, 아이보리, 미스티 블루 네 가지 색상으로 만들었는데요. 개당 3만 5000원이었는데 몇천 개는 판 것 같아요.

┗ 몇천 개요??

리아: 몇천 개라고 말씀드렸지만, 사실 더 많이 팔았어요. 몇 차례 리오더를 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죠. 그래서 처음에는 인스타그램으로 팔다가, 관리가 어려워서 블로그에서 판매했어요. 대략 2년 정도 블로그로 팔았는데, 꾸준히 구매 문의 댓글이 달렸던 것 같아요.

┗ 많이 팔린 비결이 뭘까요?

민지: 저희 모자 같은 상품이 시중에 없어서 아닐까요? 앞서 말한 무인양품 버킷햇이 마음에 들어서 자주 쓰고 다니다 보니, 아쉬운 점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무인양품 버킷햇은 푹 눌러쓸 수 있어서 좋았지만, 머리를 뒤로 묶었을 때 불편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앞뒤 챙 길이를 다르게 만들었죠. 모자의 깊이는 유지하되, 시야 확보가 필요해서 앞의 챙 길이를 기존보다 짧게 했어요. 모자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쓰고 다니면서 한 번쯤 고민했을 법한 문제들을 해결해서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셨던 것 같아요.

◑ 지금까지 마주한 손님 중에 가장 진상은 누구였나요?

민지: 진상이라 할 만한 손님은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 귀여운 분들이 많았어요. 저희는 WOOR과는 별개로 PeeP이라는 편집숍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첫 번째 매장을 연희동에 열었어요. 팝업도 열고 플리마켓도 열다 보니까, 한적한 동네가 북적북적해졌죠. 그래서 동네 어르신들도 구경하러 자주 놀러 오시는데요. 한번은 어떤 어르신이 양파망을 들고 매장을 구경하시더라고요. 저희 눈에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요. (웃음)

리아: 진상보다는 감사한 분이 많았어요. 매장에 방문하신 분 중에 “옛날에 블로그에서 판매한 버킷햇 잘 쓰고 다녔어요!”라며 인사하는 분들이 기억에 남아요.

┗ 그런데 편집숍은 어떻게 열게 되신 거예요?

리아: 동명의 팝업 행사가 시작이었어요. WOOR을 오프라인에서 소개하고 싶어서 PeeP이라는 이름으로 기획했는데요. 저희 제품만 소개하기보다는, 주변에 브랜드를 운영하는 분들과 함께 행사를 진행하면 어떨까 싶었죠. 그래서 망원동에 자리한 카페 604부터 편집숍 트리라이크스워터treelikeswater, 그리고 식물 가게 4t까지 저희가 좋아하는 다양한 브랜드와 함께 하는 팝업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그게 지금의 편집숍으로 이어졌고요.

┗ 첫 팝업의 반응은 괜찮았나요?

리아: 생각보다 많이 오셨어요! 각 브랜드와 매장의 팬들로 북적거렸죠. 팝업을 진행한 4t 매장이 신용산에 있거든요. 2021년 행사를 열었는데, 마침 신용산이 뜨고 있어서 그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해요.

민지: 팝업에 많은 분이 오신 점도 기뻤지만, 그래도 가장 기분 좋았던 이유는 WOOR의 진가를 알아봐 주셨기 때문이에요. (웃음) 소재나 디테일을 칭찬하는 분들도 많았고, 가격을 듣고는 생각보다 저렴하다며 놀라는 분들도 계셨거든요. 그때 브랜드를 계속 이어갈 힘을 많이 얻었어요.

┗ 처음 팝업을 기획할 때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민지: 리아랑 만났던 회사를 나온 후, 컬렉트Kollekt라는 가구점의 사업 중 하나였던 위클리캐비닛Weekly Cabinet의 일을 제안받아 저희 둘이 진행했어요. 빈티지 가구 기반의 팝업 전시를 여는 게 주 업무였는데요. 한남동에 위치한 공간에서 매달 새로운 팝업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했어요. 전시 콘셉트 구상부터 포스터 디자인도 저희 둘이 하고, 팝업 전시에 참여하게 되는 작가님에게 연락을 돌리는 일도 저희 둘의 몫이었죠. 공간을 구성하고, 이후에 철거하는 일까지 함께했어요. 그래서 PeeP의 첫 번째 팝업을 기획할 때, ‘그때만큼 어려울까…’ 싶어서 바로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위클리캐비닛을 기획하며 기억에 남는 전시를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민지: «나른»이라는 팝업 전시가 가장 반응이 좋았어요. 차(茶)를 기반으로 한 전시였는데요. 차와 다구를 다루는 분을 섭외하고, 타이틀과 어울리는 빈티지 가구를 골라서 배치했어요. 세라믹 디자이너와 스카프 브랜드도 함께 섭외했죠. 여러 브랜드를 한데 모아 ‘나른함’이라는 단어를 시각화하려고 노력했어요. 주말에 차 시음회를 운영한 덕분에 반응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원래 계획한 전시 기간인 2주에서 한 주 연장하게 되었거든요.

리아: 위클리캐비닛에서 기획한 전시 대부분 반응이 좋았어요. 연예인도 많이 찾아와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도 했죠. 그래서 ‘우리가 팝업 기획을 잘 하는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민지: 동시에 팝업 기획이 정말 힘들다는 걸 깨달았어요. 매달 팝업을 기획하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위클리캐비닛에 입사한 지 일년 정도 지났을 때, 리아와 회사를 나왔어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WOOR을 준비했죠. 회사를 다니면서도 WOOR의 모자를 판매했는데, 꾸준히 팔려나갔거든요. 점심시간을 쪼개 회사 앞 편의점으로 달려가 택배를 보냈던 기억이 나요. (웃음)

┗ PeeP에서도 꾸준히 팝업을 기획하셨는데요. 쉽지 않은 팝업 기획을 계속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민지: 다양한 연령대의 소비자와 만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리빙’을 주제로 팝업을 진행하면 30대에서 40대가 PeeP을 찾아오세요. 그리고 영타겟의 스트리트 브랜드를 모아 플리마켓을 열면 10대에서 30대가 찾아오시죠. PeeP에서 WOOR을 함께 판매하고 있으니까, 결과적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소비자에게 WOOR이 노출될 거라 생각했어요.

리아: 그리고 저희는 두 사람이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잖아요. 한 명이 팝업 기획에 전념해도 다른 사람이 브랜드 운영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니, 팝업을 기획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 옷을 만들 때 꼭 지키는 기준이 있을까요?

리아: 저희의 취향을 기준으로 삼아요. 예를 들어 짐 백Gym Bag의 경우, 다른 브랜드보다 끈 길이가 긴 편인데요. 패딩을 입고 가방을 메도 불편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저희가 겨울에 패딩을 자주 입어서요. 그리고 가방 양 끝에 고리를 달아 스트랩을 연결하면 크로스백처럼 멜 수 있게 만들었는데요. 짐이 많은 경우에 편하게 들고 다니고 싶어서 스트랩을 생각해 냈어요. 제가 평소에도 워낙 짐이 많거든요. 가방에 손톱깎이부터 반창고까지 들고 다니는 성격이에요. (웃음)

┗ 모자를 만들 때, ‘이것만큼은 꼭 지킨다’는 기준이 있을까요?

리아: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모자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두상이 다르고, 귀의 위치가 다르니까 같은 모자라도 착용감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핏과 디자인의 모자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챙이 구부려진 볼캡도 만들고, 스냅백 스타일의 플랫 캡도 만드는 거죠. 같은 플랫 캡이라도 챙의 폭과 길이를 다르게 제작하고, 챙 안에 들어갈 소재도 모자의 콘셉트에 따라서 달리해봐요. 예를 들어 빳빳한 챙이 어울릴 것 같은 모자에는 두꺼운 소재로 챙을 만들어요. 자유자재로 구부려지는 게 나을 것 같으면 스펀지처럼 말랑말랑한 소재를 집어넣죠.

민지: 챙뿐만 아니라 스트랩도 다양하게 만드는 편이에요. 끈, 천, 가죽 재질 등등 각각의 모자의 콘셉트에 따라 소재를 달리합니다. 버클로 고정한 뒤에 남는 스트랩을 늘어놓을지, 홈 안에 넣어서 깔끔하게 정리할지도 고민해요. 스트랩의 소재와 모양에 따라 모자의 전체적인 인상이 달라지거든요. 이런저런 조합으로 샘플을 만들고, 직접 착용해 보면서 제작하는 것 같아요.

┗ WOOR의 모자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지점이, 로고를 크게 박아 놓은 모자가 별로 없더라고요.

민지: 로고보다는 디테일로 WOOR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최근 출시된 로프 롱 빌 캡Rope Long Bill Cap은 모자 양쪽에 각각 두 개의 구멍이 뚫려있는데요. 양쪽에 구멍이 뚫려있는 모자는 스포츠 브랜드 기반의 기능성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에서 많이 출시하는 편이에요. 저희는 여기에 스트랩을 끼워서, 휴대하기 편한 모자를 만들었어요. 모자는 차콜과 카키로 만들고 스트랩을 세 가지 색상으로 제작해, 소비자가 모자와 스트랩의 조합을 커스텀 할 수 있도록 출시했어요.

리아: 단순히 예쁜 브랜드가 아니라, 재밌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브랜드의 가치를 로고가 아닌, 디테일로 평가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사람들을 움찔움찔하게 만드는 디테일을 가진 브랜드가 되고 싶달까요.

┗ 그런데 너무 특별한 제품을 만들면 소비자들이 쉽게 구매하기 어려워하진 않을까요?

민지: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모자 착용법과 활용법을 영상으로 제작해서 소개하고 있어요. 제작 과정을 올릴 때도 있죠. 그리고 모델이 아닌 주변 지인들이 착용한 사진을 올리는 편이에요. 소비자들이 WOOR의 모자를 어렵게 생각하시지 않았으면 해서요.

리아: 사실 매번 독특한 제품을 출시하지는 않아요. 베이직한 제품이 있어야, 독특한 제품도 눈에 띄더라고요. 짐 백도 그래서 판매가 잘 되었던 것 같아요. 모자 브랜드에서 가방을 출시하니까, 흥미롭게 지켜본 분이 많았던 게 아닐까요?

◑ 대표님이 시도했었던 가장 과감한 의상은 무엇이었나요?

민지: 이 질문 별로인 것 같아요. (웃음)

리아: 진짜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희 둘 다 과감하게 입는 편이 아니라서요. (웃음) 아! 혹시 정말 옛날도 괜찮나요? 제가 초등학생 때 탈색 머리였어요. 그리고 통이 큰 바지와 품이 큰 후드티를 즐겨 입었죠. 신발은 항상 굽이 높고 두툼한 쉐입의 나이키의 에어 포스나 DC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었어요. 거의 힙합 여전사였죠 하하.

┗ 말씀하신 스타일이 당시에 유행하던 스타일 아닌가요? 초등학생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많으셨나 봐요.

리아: 어머니가 옷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워낙 스타일리시한 분이라, 당시에 회색으로 머리를 염색하시곤 멋지게 옷을 입고 다니셨죠. 제게도 유행하는 브랜드를 많이 사주셔서, 자연스레 옷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모자를 좋아하게 된 것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죠. 겨울이면 어머니가 사주신 비니를 항상 쓰고 다녔거든요.

┗ 지금 민지 대표님은 엄청 깊은 고민에 빠지신 것 같아요. (웃음)

민지: 사실 저도 생각이 났는데요. 그때의 제 모습을 떠올리니까 정말 싫네요. (웃음) 저는 고등학교 때 캐나다에 잠깐 살았었어요. 하루는 파티가 있는 날이었는데, 이모가 원피스를 입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심지어 오프숄더 원피스를요. 하이힐과 엄청나게 큰 귀걸이도 주셨는데, ‘이게 외국 스타일인가 보다’하고 그대로 입고 파티에 갔었어요. 파티 내내 정말 부끄러웠던 기억이 나요.

리아: 언니 그렇게 입은 거 상상이 안 간다. (웃음)

◑ 옷장에 모자는 몇 개 있으세요?

리아: 지금 사무실에 둔 것만 50여 개가 될 거예요. 집에 있는 걸 포함하면 거의 100개는 되려나요? 저는 주로 비니를 많이 산 것 같아요.

민지: 저도 50개 정도 있을 것 같아요. 비니도 많은데, 편하게 쓰는 모자를 좋아해서 볼캡이 더 많아요.

리아: 이제는 모자 샘플을 많이 사는 것 같아요. 모자를 사도 공부를 위해서 구매하는 편이죠. 저희 둘 다 패션디자인 학과를 나오지 않았거든요. 패션을 따로 공부한 적이 없으니까 시중에 판매되는 모자를 사서 뜯어보고, 계속 샘플을 만들어 봤어요. ‘여기에는 이런 디테일이 들어가는구나’, ‘여기에는 이런 원단을 쓰면 이렇게 핏이 나오는구나’라는 걸 직접 발로 뛰면서 알아냈죠.

민지: 사실 처음에 WOOR을 시작하게 된 건 단순한 이유였어요. ‘우리가 좋아하는 색깔, 그리고 좋아하는 핏의 모자를 만들어 보자’라는 게 출발이었거든요. 예를 들어 처음 만든 제품 중에 이어 워머 비니Ear Warmer Beanie라는 제품이 있는데요. 비니 양쪽에 단추 홈을 뚫어두고, 비니에 연결해서 달 수 있는 목도리를 함께 판매한 제품이에요. 비니만 단독으로 착용할 수도 있고, 단추로 연결해서 양쪽에 귀가 달린 것처럼 착용할 수도 있는데요. 목도리랑 비니를 같이 들고 다니려니까 너무 귀찮아서 만든 제품이에요. (웃음)

┗ 비니도 볼캡만큼이나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민지: 연구하면 할수록 비니를 만드는 과정이 꼭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이 느껴져요. 원단에 따라서 착용감이나 전체적인 핏이 달라지고, 짜임에 따라서 전혀 다른 비니가 되거든요. 그리고 비니의 접히는 부분이 얼마나 접히느냐에 따라서도 전체적인 형태나 무드가 바뀌어요. 같은 실이라도 디테일에 따라 다른 비니가 되기 때문에, 늘 여러 요소를 동시에 고민해 보는 것 같아요.

┗ 비니를 만들 때에는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쓰세요?

리아: 핏감인 것 같아요. 저희 둘 다 눈썹이 가려지게끔 비니를 푹 눌러쓰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푹 눌러썼을 때, 머리 위로 솟아오르는 부분이 신경 쓰이지 않도록 제작하는 편이에요.

┗ 비니가 잘 어울리는 두상이 따로 있을까요?

민지: 비니가 잘 어울리는 두상은 따로 없다고 생각해요. 본인에게 어울리는 비니가 꼭 있거든요. 비니를 안 써 버릇해 보셔서 어색하시니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것 아닐까요?

리아: WOOR의 다양한 모자를 통해서, 더 많은 분이 모자를 쓰는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가장 큰 목표예요.

◑ 사업을 시작하신 이후에 후회했던 적은 없나요?

리아: 아직까지 후회해 본 적은 없어요. 저희가 만들고 싶은 제품을 만들어왔거든요. 모자를 제작할 때 사업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WOOR을 운영하는 게 값비싼 취미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요. 우리가 힘들게 모은 돈으로, 맘에 안 드는 제품을 만들기는 싫었어요.

민지: 디렉터의 취향이 흔들리지 않아야 브랜드의 추종자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다행인 건 저희 둘 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는 절대 못 하는 성격이라서요. (웃음) 덕분에 WOOR의 방향성을 잘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리아: 소비자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들을 때면 브랜드를 이어갈 힘을 얻어요. 특히 팝업에서 만나는 소비자로부터 제품에 대한 칭찬을 직접 들을 때면 더욱 기뻐요. 팝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칭찬을 들을 때면 힘들었던 기억이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어요.

◑ WOOR의 여러 제품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제품은 무엇인가요?

민지: 자카드 목도리를 고르고 싶어요. 제품을 낼 당시에 축구 클럽의 로고가 그려진 머플러가 인기였는데요. 아무래도 경기장에서 응원용으로 쓰이다 보니 화려한 색과 그래픽으로 채워진 경우가 많았어요. 여기에 WOOR의 색을 더해 만들었는데, 너무 맘에 들어 자주 매고 다녔어요.

리아: 저도 자카드 목도리가 제일 애착이 가요. 길거리에서 처음 본 저희 제품이거든요. 버스를 탔는데 앞자리 남성분이 저희 목도리를 하고 계신 걸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당장이라도 어깨를 톡톡 치고 ‘제가 만든 거예요!’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어요. (웃음)

┗ 편집숍에서 판매하시는 제품 중에 WOOR 말고 소개하고 싶은 브랜드가 있을까요?

민지: 다들 너무 맘에 드는 제품이라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요. 도그 앤 디시스Dog And Dishes는 감사한 브랜드라 소개하고 싶어요. 해외에서 셀렉한 그릇과 컵, 그리고 자체 굿즈를 판매하는 곳인데요. PeeP에서 처음 팝업을 열었을 때, 남은 수량을 전부 팔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당시에 브랜드 운영을 중단하셔서, 도그 앤 디시스의 팬분들이 매장에 많이 찾아오셨죠. 한 분은 오셔서 도그 앤 디시스의 그릇과 컵 20만 원어치를 사 가셨던 기억이 나요.

리아: 9월에는 PeeP이 연희동에서 을지로로 자리를 옮길 계획이에요. 을지로 매장은 계단으로 걸어 올라와야 하는 공간이라, 1층에 자리한 연희동 매장보다는 조금 더 프라이빗한 분위기가 느껴질 것 같은데요. 매장에서 소개하는 브랜드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니 돋보이는 제품도 달라질 것 같아요.

◑ 최근 서로의 생일에 어떤 선물을 주고받았나요?

민지: 저는 리아한테 포스터를 받았어요. 독일의 음반 레이블 퍼블릭 포세션Public Possession에서 만든 그래픽이 담긴 포스터인데요. 리아가 어떻게 알았는지 제 노트북 배경 화면과 똑같은 포스터를 선물해 준 거예요. 그것도 해외 배송으로요. 맘에 쏙 들어 쇼룸에서 자랑 중이에요. (웃음)

리아: 저는 언니에게 강아지 모양의 케이크를 선물 받았어요. 제가 ‘우주’라는 이름의 슈나우저를 키우는데요. 언니가 굉장히 멀리까지 가서 우주를 닮은 강아지 모양의 케이크를 만들어 줬어요. 너무 귀여운 케이크라, 아까운 마음에 못 먹을 정도였죠. 무엇보다 언니가 우주 사진을 골라서, 케이크 가게에 들러 직접 가져왔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스윗하잖아요! (웃음)

┗ 엄청나게 계획적으로 준비하신 거 보니까, 민지 대표님은 왠지 J 이실 것 같아요.

민지: 정 반대에요. (웃음) 오히려 리아가 ESFJ고, 저는 INFP예요.

리아: 저희가 싸우지 않는 이유가 둘 다 F라서 그런 것 같아요. (웃음) 검색을 해보니까 ESFJ 주변에 INFP 성향의 사람들이 많대요. ESFJ 성격의 사람들이 INFP 성향 사람들의 자존감을 지켜줘서요. 저희 둘을 생각해 봐도, 제가 언니에게 서슴없이 칭찬을 많이 하는 것 같아 얼추 맞는 것 같더라고요.

민지: 솔직히 MBTI는 과학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저는 리아의 E와 J같은 면모를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J와 P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는데, 리아가 집에서 하루 종일 쉬는 날을 못 봤어요. 어떤 날은 집에서 티비만 보면서 힐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리아는 항상 뭔가를 하고 있어요. 퇴근 후에도, 매일 쉬지 않고 아이디어를 내고요. 그래서 제가 아직도 리아한테 존댓말을 써요. 어떨 때는 저보다 더 어른스러운 것 같아서요. (웃음)

┗ 리아 대표님은 민지 대표님께서 존댓말을 쓰는 게 불편하지는 않으셨어요?

리아: 처음에는 ‘나를 불편해하나?’ 생각했어요. 이제는 너무 편한 사이가 되어버려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데요. 미팅을 나가면 외부 분들이 되려 놀라시더라고요. 친구들은 네 살 언니에게 반말하는 제 모습을 보고는 버릇없다고 해요. (웃음)

민지: 사실 리아가 한번은 술 먹고 엄청 서운하다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되게 귀여웠어요. (웃음) 그런데 리아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나이가 어리다고 막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리아: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할 말이 없더라고요. (웃음) 그래도 돌아보면, 서로 존중하는 마음 때문에 지금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크게 다퉈본 적이 없거든요. 그리고 직장에서 만나 친구 사이가 되고, 동업까지 하게 되는 게 흔하지 않은 일이잖아요. 취향 맞는 사람을 만나, 같은 길을 걷게 될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Creator

유리아와 이민지는 모자 브랜드 WOOR과 세운상가에 위치한 오프라인 기반의 셀렉샵 PeeP을 함께 운영하며 공간 및 팝업을 기획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Editor

방현식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롱블랙»을 거쳐, 현재 «비애티튜드»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Photographer

박도현(@dhyvnpark)은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사진 기술자다. 렌즈 기반의 ‘좋은 이미지 제작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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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흥미로운 인물에게 랜덤 질문을 던집니다.

가챠는 일본말 가챠가챠(がちゃがちゃ)의 준말입니다. 작은 기계에서 나는 시끄러운 금속음을 말하는데요. 우리에게는 랜덤하게 캡슐을 뽑는 게임으로 익숙해요. 저희는 이 가챠 시스템을 인터뷰에 적용했어요. 궁금한 질문을 마구 그러모은 후 인터뷰 현장에서 무작위로 뽑아 대화를 청합니다. 보통의 인터뷰와는 분명 다른 맛이 나겠죠?

비애티튜드의 호기로운 모험에 올라탄 두 번째 주인공은 카페 ‘무슈부부커피스탠드’를 운영하는 권오현·박선영 대표입니다. 무슈부부커피스탠드는 에스프레소 붐을 일으킨 카페 중 하나예요. 에스프레소를 기반으로 한 창작 메뉴를 선보이며 ‘에스프레소 = 작고 쓴 음료’라는 공식을 깨는 데 큰 힘을 보탰죠. 지금의 망원동 자리에 가게를 연 지 1년이 조금 지났는데요.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전인 2014년, 망리단길의 초입에 있던 ‘카페부부’에서 시작합니다. 최근에는 제주도에 매장 두 곳을 열며 무슈부부커피스탠드의 영역을 확장하기도 했어요. 망원동에서 갑자기 제주로 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궁금한 마음을 가득 안고 카페 문을 두드렸습니다. 예측불허 가챠 대화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 스스로 ‘꼰대 같다’라고 느낀 적이 있나요?

권오현(이하 오현): 저 완전 꼰대입니다. (웃음) ‘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일, 옳다고 생각하는 의견은 계속 밀어붙여 왔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꼰대 중의 꼰대, ‘초꼰대’라고 해야 할까요. (웃음) ‘꼰대’라는 호칭을 애써 부정하고 싶지도 않아요. 저만의 기준을 꺾지 않은 게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는 힘이 된 것 같거든요. 환경은 계속 변할 텐데, 시대에 맞춰서 기준을 바꿔왔다면 무슈부부커피스탠드(이하 무슈부부)가 발전하지 못했을 겁니다. 다만 단순히 ‘늙은 꼰대’는 되기 싫어요. ‘멋있게 늙어가는 꼰대’가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  ‘멋있게 늙어가는 꼰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게 있나요?

오현: 우선 ‘멋있음’의 기준을 스스로 정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올해로 47살인데요. 팔에 타투가 많고, 신발도 체커보드 패턴의 스니커즈를 신고 다녀요. 보통 이 나이대 분들이 등산복이나 낚시복, 골프웨어를 입으니까 시골집에 내려가면 어르신들이 종종 ‘미친놈’ 소리를 하시죠. (웃음) 그런데 저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멋이 좋아요. 편리함을 맹종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제가 추구하는 멋의 기준에 맞춰 계속 살고 싶을 뿐이에요.

박선영(이하 선영): 저는 옷이든 라이프스타일이든 자연스러운 게 멋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연스러움은 자존감에서 나오거든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5000원짜리 티셔츠를 입어도 태가 나요. 아이들에게도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멋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해요.

오현: 아이들 입장에서 ‘멋있는 아빠’보다는 ‘같이 놀고 싶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랑 저랑 다 같이 늙어가지 않도록 부지런히 살고 있죠. 다만 젊게 살고 싶다고 아빠 노릇을 놓은 건 아닙니다. 요즘 다이빙을 배우고 있는데요. 다이빙하는 제 모습이 멋져서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으니까 배우는 거예요.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삶이야말로 저희가 놓치고 싶지 않은 멋진 삶의 기준 중 하나입니다.

◑ 가장 인기가 많은 메뉴는 무엇인가요?

오현: ‘로마노’가 제일 잘 나가요. 초반에 저희 가게를 알린 메뉴죠. 팬층이 가장 두꺼운 메뉴입니다. 여러 잔 드시는 분들도 로마노는 꼭 드시는 것 같아요.

┗ 로마노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설명해 주시겠어요?

오현: 우선 커피를 바로 젓지 말고, 컵 안에 들어있는 레몬 향을 맡아보세요. 그다음에는 두세 번에 나눠 커피를 마시는 게 좋아요. 컵 바닥에 설탕이 두껍게 깔려 있어서 첫 모금은 쓰지만, 마시다 보면 점점 단맛이 올라와요. 커피를 어느 정도 마셨다 하면, 이제 레몬이 주인공이 될 차례입니다. 레몬을 살짝 들고 컵 바닥에 깔린 설탕과 커피를 듬뿍 올린 후 그대로 과육을 뜯어 먹어보세요. 입안에 상큼함이 가득 차면서 비로소 로마노의 서사가 완성됩니다. 아! 레몬을 먹은 다음에는 꼭 함께 드리는 탄산수를 마시길 추천해요. 입에 단맛이 남아 있으면 냄새가 날 수 있는데, 탄산이 그 맛을 제거해 주거든요. 

┗ 로마노는 어떻게 만들게 되신 거예요?

오현: 로마노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메뉴예요. 이탈리아 현지 펍에 가면 에스프레소 기계가 꼭 있어요. 칵테일 바에는 레몬이 꼭 있죠. 쓴맛의 커피에 설탕을 조금 넣고, 레몬도 함께 넣어 탄생한 메뉴가 로마노예요. 저희는 우리나라 사람이 조금 더 먹기 편하고, 재밌게, 무엇보다 맛있게 드실 수 있도록 약간 변형했어요. 레몬 과육과 커피를 함께 즐길 수 있고요. 설탕을 올려 먹을 때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레몬을 손질했죠.

메뉴 ‘로마노’

┗ 레몬은 다른 곳과 특별히 다르게 손질하시나요?

오현: 로마노를 보면 잔에 레몬을 툭 넣은 것 같잖아요. 그런데 아니에요. 레몬을 그냥 넣어버리면 자칫 커피가 지나치게 써질 수 있어요. 산도가 단백질을 응고해서 발생하는 현상인데요. 커피의 맛을 해치지 않으려면 레몬을 꼭 손질해야 해요. 레몬은 껍질, 껍질 안쪽의 하얀 부분, 과육이 지닌 맛이 모두 달라요. 그중 제가 내리는 커피와 레몬의 어떤 맛을 배합해야 밸런스가 맞을지 고민해서 만들었어요.

┗ 무슈부부에는 창작 메뉴가 많아요. 앞서 설명해 주신 로마노처럼, 맛있게 먹는 방법이 따로 있어서 한 잔인데도 서사가 느껴지기도 하고요. 대표님은 메뉴 창작에 대한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으세요?

오현: 계절에서 가장 큰 영감을 얻어요. 예를 들어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카페 프로즌’은 더운 여름에 마시면 좋을 것 같아서 만들었습니다. 카페 프로즌은 에스프레소 안에 상큼한 맛의 슬러쉬를 넣고, 위에 라임을 올린 메뉴인데요. ‘프로즌 다이키리’라는 칵테일에서 형태적인 영감을 받았어요. 쿠바에 있는 다이키리 광산에서 일하던 기술자가 현지에서 흔한 라임과 럼을 섞어 샤베트 형태로 내놓은 술이 프로즌 다이키리예요. 저는 럼 대신 에스프레소를 넣었죠. 에스프레소와 라임 조합은 스페인에서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방식 중 하나인데요. 라임만 넣으면 한국 분들이 써서 잘 못 드실까 봐 입맛에 맞도록 준비한 결과가 카페 프로즌이랍니다.

메뉴 ‘카페 프로즌’

┗ 소비자에게 맞는 맛을 찾기 위해 요즘 뜨는 카페에서는 어떤 메뉴가 잘 나가는지, 어떤 맛이 잘 팔리는지 시장 조사도 자주 나가세요?

오현: 다른 카페를 가지는 않아요. 남이 만든 좋은 걸 본다고 새로운 걸 만들지는 못하더라고요. 무의식으로 남의 걸 따라 하는 게 전부죠. 차라리 카페보다는 멋진 칵테일 바나 좋은 식당을 가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디저트 중 ‘무슈선데 바질 토마토’는 절인 토마토가 우유 아이스크림과 함께 나와요. 토마토를 절이는 방식은 쿠바식 생선 요리인 세비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착안했어요. 흰 살 생선을 절이는 방식으로 토마토를 담근 거죠. 근데 토마토만 그냥 드리면 새콤하니까, 우유 아이스크림과 여러 향신료와의 배합을 고려하며 새콤달콤한 맛을 연출한 메뉴예요

메뉴 ‘무슈선데 바질토마토’

┗ 그럼 메뉴 창작에서 ‘이것만큼은 꼭 지킨다!’라는 대표님만의 기준이 있을까요?

오현: 장식만 화려한 메뉴는 만들지 않아요. 비주얼이 새로운 메뉴가 아니라 음료 본연의 맛이 새로운 메뉴를 만들고 싶거든요. 또 하나의 기준이라면, 뻔하지 않게 내놓으려고 해요. 무슈부부에서 칵테일을 함께 선보이는 이유입니다. 에스프레소와 칵테일, 그리고 위스키를 함께 먹을 때 느낄 수 있는 맛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에스프레소 메뉴에 다양한 위스키를 추가해서 드실 수 있어요. 저희 가게에는 창작 칵테일 메뉴도 있는데요. 최근에 만든 ‘반했나’는 여름에 먹기 딱 좋아요. 바나나 리큐르에 런던 드라이진, 그리고 베일리스를 넣어서 약간 달콤하면서 쌉쌀한 향미가 느껴지는 메뉴죠.

메뉴 ‘반했나’

┗ 실제로 칵테일 드시러 오는 손님도 많은 편인가요?

오현: 네, 실제로 드시는 분이 많아요. 외국 손님도 많이 오시는데요. 호주에서 오신 한 손님은 에스프레소를 마신 후, 칵테일을 두 잔 먹고, 마무리로 에스프레소를 먹고 가시더라고요. 호주 카페에서 본인이 그렇게 루틴처럼 마셨다고요. 다른 손님도 무슈부부라는 공간을 이국적으로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만약 지인이 카페를 연다고 한다면, 추천하시겠어요?

오현: 카페 컨설팅을 의뢰하는 분이 종종 계세요. 찾아오시는 분들이 열 분이라면, 아홉 분에게는 ‘하시지 말라’고 해요. 말씀을 듣다 보면 ‘이분은 카페를 열어도 2년 안에 망하겠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 판단의 근거로 삼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오현: 우선 개성이 없어요. 그리고 취미 생활, 혹은 부업으로 카페를 시작하는 경우에는 하지 말라고 말씀드려요. 그런 분들은 저와 정반대 지점에 계신 분들이거든요.

┗ 그럼 어떤 분에게 ‘카페를 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씀해 주시나요?

오현: 당연히 경제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어요. 다만 ‘카페로 무너진 집안을 일으켜 보겠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제가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카페를 시작한 게 아니거든요. 카페를 하기 전에 저는 그래픽 디자이너였어요. 당시 한 달 수익이 지금 일 년 동안 가게 운영하며 버는 것과 맞먹어요. 그런데 저는 카페를 운영하는 지금이 훨씬 좋아요. 주변 이웃의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상황이 행복합니다.

┗ 경제적인 여유보다, 정신적인 여유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으신 걸까요?

오현: 네, 맞아요. 제가 만든 공간에서, 하고 싶은 대로 사니까 삶의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가장 좋은 점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거예요.

선영: 육아라는 게, 결국 엄마나 아빠나 정신적으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더라고요. 그래야 부모의 평온함이 아이에게도 온전히 전해져요.

오현: 저희가 올해 제주도에 매장 두 곳을 열었는데요. 브랜드를 확장한다는 마음보다는, 온 가족이 제주도로 이주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그런 결정을 내렸어요. 아이들을 키우는 데 정답은 없겠지만,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요.

선영: 많이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저도 남편과 마찬가지로 디자이너였는데, 디자이너 시절에는 하루에 3시간 자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저희가 내년이면 10주년이에요. 10년 동안 열심히 하니까 이제는 어느 정도 유연하면서 적당히 살아보자는 마음이 들어요. 물론 놀고먹기만 하는 형태는 아니겠지만요. (웃음)

┗ 그런데 제주도에 가시면 서울에 계실 때보다 일을 더 하시는 거 아닌가요? 매장을 두 곳이나 늘리셨잖아요.

오현: 제주도 매장은 운영하는 사장님이 따로 계세요. 저희와 비슷하게 살아갈 크루원을 모집했답니다.

┗ 무슈부부의 공식 인스타그램을 쭉 훑다 보니, 이전에 ‘무슈부부크루’라는 이름으로 여러 식당을 오픈하셨더라고요. ‘무슈부부와일드키친’, ‘무슈부부스낵코너’ 등이 눈에 띄었는데, 이제는 영업하지 않으시나요?

오현: 직접 운영하다가 이제는 문을 닫았어요. 제가 요리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해서, 다 해보자고 야심 차게 준비했다가… ‘약은 약사에게, 병은 의사에게’라는 사실을 확실히 배웠죠.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어요. 그런 경험이 쌓이니까 컨설팅을 받으려는 분에게도 조금 더 자신 있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것 같아요. 

┗ 그럼 커피는 어떻게 시작하신 거예요?

오현: 아까 말씀드린 대로 예전에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했는데요. 아시는 분들은 아실 텐데, 디자인 스튜디오에 계신 실장님들은 ‘멋있어야’ 하거든요. (웃음) ‘디자이너는 남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어서 조금 빠르게 스페셜티 커피를 접하게 됐어요. 커피 도구를 해외에서 들여와 집에서 내려 먹기도 했고요. 그때 스튜디오가 합정에 있었는데, 근처에 ‘앤트러사이트’라는 카페가 있었어요. 자주 가다 보니까 직원이며 사장님까지 다 친해졌고, 카페에서 열리는 커피 클래스를 배우면서 커피 공부도 틈틈이 하게 됐죠. 그렇게 취미로 커피를 하는데, 사장님께서 “카페를 열어도 잘 운영하실 것 같다”라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마침 당시 결혼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는데요. 집, 스튜디오, 카페를 한 공간에서 열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2014년 지금의 망리단길 초입에 ‘카페부부’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마당이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 살면서 커피도 팔고, 디자인 작업도 한 거죠.

┗ 당시에도 망원동이 지금처럼 핫한 동네였나요?

오현: 제가 2012년부터 망원동을 알아보고 2014년 정착했는데요. 당시 망원동은 지금처럼 핫한 카페나 식당이 없었어요. 대신 아티스트 작업실이 있었죠. 대부분 합정과 홍대에서 쫓겨난 배고픈 아티스트였는데요. 디자이너로 오래 일하면서 아티스트를 만나보니까, 다들 밥은 안 먹어도 커피는 멋진 공간에서 마시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웃음) 그래서 망원에 커피를 내도 괜찮다 생각했어요.

┗ 실제로 아티스트가 많이 찾아왔나요?

오현: 다들 슬리퍼 신고 오더라고요. 건물 앞 마당 구석에 모여 기타 치면서 놀기도 했고요. 나중에는 밤새고 작업하다가 술을 진탕 마시고, 해장 커피 하러 들르는 아티스트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 되었어요. (웃음)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오는 뮤지션과 친해졌는데요. 아예 마당을 무대로 꾸며서 한 달에 한 번 정기 공연을 열기도 했어요.

┗ 앞서 말씀하신 ‘사랑방 같은 공간’이 좀 더 명확하게 그려지는 것 같아요.

선영: 10년 가까이 카페를 운영할 수 있었던 건 다 손님 덕분이에요. 사실 손님이라는 호칭도 되게 멀게 느껴져요. 그만큼 상업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힘을 얻었던 것 같아요.

◑ 메뉴와 함께 테이블에 등장하는 잔도 너무 예쁜 것 같아요. 잔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선영: 남편이 메뉴를 만들면, 제가 어울리는 잔을 찾아서 건네줘요. 대부분 황학동이나 청학동을 돌아다니며 구입했어요. 10년을 함께 하다 보니 남편이 만드는 메뉴에 대한 이해도가 자연스럽게 생겼어요. 그래서 이런 메뉴는 어떤 잔에, 어떤 모습으로 나오면 좋겠다고 제안하는 편이죠.

오현: 서로 취향이 비슷해요. 저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나온 모든 디자인을 사랑하는데요. 아내도 세월이 묻어나는 오랜 빈티지 제품을 좋아하죠. 그래서 더 믿고 맡길 수 있었어요. 저희 가족 각각이 지닌 능력을 아니까, 새로운 메뉴나 공간을 만들 때 잘 써먹으려고 합니다. (웃음) 저희의 슬로건인 ‘FOR A LONG LIFE IN THE FAMILY’를 실천하고 있죠. 드립백과 컵에 보이는 로고는 저희 아들이 직접 그린 거예요.

선영: 정말 슬로건처럼, 가족 모두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합해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요. 저희 두 아들의 그림 덕분에 무슈부부에 알파 세대의 감각이 더해진 것 같아서 만족해요. (웃음)

┗ ‘FOR A LONG LIFE IN THE FAMILY’는 어떻게 짓게 되신 거예요?

오현: 저희의 슬로건이자, 동시에 제 최종목표이기도 해요. 지금 운영하는 카페가 우리 가족의 평생직장이었으면 했거든요. 아이들 각자 원하는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가서 일을 배우게 될 텐데요. 먼 훗날 일에 지쳐 헤매고 있을 때, 무슈부부가 늘 같은 자리에 있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어린 시절 아빠를 따라 자연스레 배운 커피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 최근에 가족이 다 같이 함께라서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오현: 모이면 항상 행복한 것 같아요. 8월에는 가족 모두 제주도에 가서 에스프레소만 판매하는 푸드트럭을 할 거예요. 제가 커피를 내리고, 아내는 트럭을 꾸미고, 두 아들은 홍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그러다가 손님도 없고, 날도 더우면 아이와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요. 손님이 오면 뚝뚝 떨어지는 물을 닦고 커피를 내리겠죠? (웃음) 푸드트럭은 거창하게 홍보하진 않을 거예요. 우리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고, 같이 즐기고 싶은 손님이 오기를 바랄 뿐이죠. 최근에 힙해져서 그렇지, 단골 손님은 무슈부부를 그저 저와 아내가 있는 곳이라고만 생각하거든요. (웃음)

◑ 손님과는 어떻게 소통하시나요?

오현: 처음 오신 분은 정말 어색해하세요. 다른 곳에서는 테이블 너머의 직원과 말할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대부분 제가 먼저 자연스럽게 말을 겁니다. 설명할 때는 에스프레소가 어려운 커피가 아니라는 말씀을 꼭 드려요.

선영: 메뉴판을 보며 고민하는 분들에게는, 계속 이것저것 여쭤보며 메뉴를 추천해 드려요. 에스프레소가 익숙한 분과 그렇지 않은 분에게 드리는 메뉴가 다릅니다. 손님 반응을 계속 체크하며 다른 메뉴를 또 소개해 드리는 편이에요.

오현: 메뉴를 다양하게 만든 것도 손님과 더 많은 대화를 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예요. 최근에는 퍼포먼스를 가미한 메뉴를 만들까 고민하고 있어요. ‘에스프레소 밤’이라는 가제를 붙여봤는데요. 샷 잔에 데킬라 샷을 넣고, 테이블에 강하게 내려치는 칵테일 메뉴가 있거든요. 손님에게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하면서 한 번 더 말을 걸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고 해요.

┗ 카페를 대표님의 공연장으로 쓰는 것 같아요. (웃음)

오현: 무슈부부는 단순히 먹는 재미만 추구하지 않아요. 오신 분에게 경험을 선물하려고 하죠. 실제로 예전 합정 매장에서는 바이올린과 베이스 연주자를 초청해 공연과 함께 에스프레소를 내어 드렸어요. 저는 무슈부부가 서비스를 파는 가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감동을 점점 쌓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문을 열었을 때 공간이 주는 색채부터 시작해서 귀에 들리는 음악, 바에 앉아 바리스타와 나누는 대화, 그리고 커피의 맛으로 감동의 천장을 칠 수 있도록 손님들의 경험을 설계하죠. 그래야 손님들이 잔을 비운 후 감정이 사그라들면서 아쉬움을 품고 문을 나서게 되더라고요. 달리 말하면 재방문율을 높이는 방법일 텐데요. 그렇게 상업적인 생각으로 손님에게 말을 거는 건 아니에요. 미친 듯이 커피를 만들어서 손님에게 내놓은 다음, 휙 뒤돌아서는 매장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바 너머의 손님과 얘기하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저희 팬이 늘어나더라고요. 실제로 전체 손님 중 30% 이상이 재방문하는 분이에요. 완전히 새로 오시는 분은 70%가 안돼요.

┗ 손님과 대화를 이끌어가는 대표님만의 팁이 있다면요?

오현: 일단 잘 들어야 해요. 바리스타와 바텐더는 결국 업의 본질이 같다고 생각해요. 손님의 거울이 되어야 하죠. 손님 입에서 말이 떨어질 때까지 흥을 계속 맞춰드려야 해요.

선영: 다만 저희가 강요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써요. 직원이 추천하고 손님이 맛있게 드시는 모습에 호응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왜 이렇게 먹으라고 지시하는 거지?’ 생각하는 손님도 있을 수 있거든요. 한 끗 차이의 뉘앙스를 잡아내며 대화하려고 노력합니다.

◑ 앞으로 에스프레소 문화는 더욱 확산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오현: 저는 그럴 것 같아요. 에스프레소 문화는 국내 소비자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찾아온 현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해외여행에 대한 장벽이 전보다 훨씬 낮아졌잖아요. 이탈리아에 가서 직접 에스프레소 문화를 경험한 분이 많아지면서, 이해도도 함께 생긴 거죠.

┗ ‘높은 수준의 커피 문화’가 ‘에스프레소 문화’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오현: 높은 수준이라기보다는, 커피가 우리 생활에 더 깊게 들어온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커피는 아메리카노 아니면 라테였는데 이제 선택지가 정말 많아졌어요. 드립 커피를 먹고 싶을 때 찾는 곳, 편하게 쉬면서 책 읽고 싶은 곳,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곳이 다 달라요. 한 3~4년 전만 하더라도 누군가 에스프레소를 먹고 있으면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어요. 

┗ 맞아요. ‘나 에스프레소 좋아해’라는 말을 내뱉는 게 정말 민망했던 것 같아요. (웃음)

선영: 에스프레소는 양이 적고, 비싼 음료라는 인식이 있어요. 그래서 저희 가게에 오시는 손님이 “에스프레소에 대한 편견이 깨졌어요”라고 말할 때 정말 뿌듯해요.

오현: 사실 재료비는 에스프레소 메뉴가 더 들어요. 콘파냐 한 잔이 라테 한 잔보다 재료비가 더 높습니다. (웃음) 에스프레소를 통해 손님이 지금까지 커피를 마시던 루틴을 자연스럽게 바꾸고 싶어요. 아메리카노나 라테를 먹던 분이 에스프레소와 콘파냐를 먹기 시작하면 절대 예전으로 못 돌아갑니다. 그러면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분이 더 많아지겠죠? (웃음)

메뉴 ‘콘파냐’

┗ 처음에는 당황스러운 경험도 많았을 것 같아요. 다들 에스프레소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었잖아요.

선영: 요즘도 그렇지만, 에스프레소 잔을 쌓아놓고 사진을 찍는 게 인기였잖아요. 그래서 에스프레소 붐이 일었던 초기에는 작정하고 한 번에 네다섯 잔을 시키는 분이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저희는 꼭 한 잔씩 내어 드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매출만 따지만 한꺼번에 드리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 나름의 순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오현: 한 잔을 만들어 드리면, 나머지 메뉴가 나올 때까지 안 마시고 기다리는 분도 많았죠. 그럴 때는 제가 직접 가서 말씀드려요. “이 잔을 마시기 전에는 다음 메뉴를 드리지 않을 거예요.” 이왕 드시러 왔으니 좀 더 맛있게 드시고 가셨으면 하거든요. 제가 ‘초꼰대’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웃음) 이런 걸 보면 조금 괴팍스러운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 입장에서는 화가 나거든요. 커피가 나오고 바로 드셔야 맛있는데, 맛의 밸런스가 다 무너진 상태에서 마시고 얼굴을 찌푸리시면 할 말이 없어져요. 그리고 SNS에 맛없다는 평이 올라오면… 참 안타깝습니다. 메뉴 한 잔이 나오기까지 무수한 고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 카페나 맛집을 찾을 때 어떤 플랫폼을 사용하세요?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 아니면 지인 추천?

오현: 저희가 망원동에 살고 있잖아요.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공력이 느껴지는 카페를 발견하는 편이에요. 연남동에 ‘언더독’이라는 카페도 그중 하나예요. 요즘에 핫한 카페들에 비해 인테리어도 수수하고, 메뉴의 가짓수도 단출한데 실제 먹으면 눈이 번쩍 떠져요. 남가좌동에 있는 ‘까페여름’도 자주 갑니다. 아주 늦게 오픈해서 아주 일찍 닫는데, 손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팔 생각이 있는 건가?’ 싶죠. (웃음) 그런데 이곳 역시 커피를 한 잔 마시면, 맛에 대한 사장님의 자신감이 느껴져요. 제게는 그런 카페가 정말 힙한 곳이예요.

┗ ‘여기는 정말 멋진 곳이다’라고 생각한 카페도 있나요?

오현: 본인이 가진 개성을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보여주는 분이 계세요. 그런 분을 보며 많이 배우죠. ‘살아남으려면 역시 나를 보여줘야 하고, 결국 내 자신이 탄탄해져야 한다’라는 사실이요. 트렌드를 따르면 결국 후발주자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새로운 창작 메뉴를 계속 연구하는 거예요. 카페의 생명력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요.

┗ 요즘엔 카페 정보를 알려주는 플랫폼이 정말 많잖아요. 무슈부부와 관련된 피드백도 살펴보시나요?

오현: 자주 보지는 않아요. 다만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맛없는 카페’는 없다고 생각해요. 본인의 취향에 맞지 않는 카페가 있을 뿐이죠. 그런데 SNS에 카페 관련 정보가 많아지면서, 한 사람의 별점으로 좋은 카페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쉬울 때가 많아요.

◑ 카페 일을 시작한 지 어언 10년이 지났으니 이름이 바뀌어도 꾸준히 가게를 찾아오는 단골 손님도 많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요?

오현: 합정동 골목에서 무슈부부를 운영했을 때의 일이에요. 가게를 연 게 5년 전이었는데, 에스프레소만 전문으로 내놓는 가게가 저희랑 ‘리사르커피로스터스’ 밖에 없었죠. 하루에 많으면 다섯 명, 적으면 두 명이 오던 때였어요. 그때 저녁 9시쯤 항상 오는 손님이 계셨어요. 에스프레소를 시켜놓고, 정말 열심히 컴퓨터로 작업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누가 너무 열정적으로 뭔가 하고 있으면 방해하기 미안한 마음이 들잖아요. 그래서 한동안 12시까지 문을 열어뒀어요. (웃음)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모델을 꿈꾸고 서울로 상경한 분이었어요. 아침에는 쇼핑몰 모델을 하고, 저녁에는 우리 카페에 와서 자기 홍보를 위한 유튜브 영상을 편집했던 거죠. 이야기를 통해 본인 인생의 서러움을 다 털어놓는데, 끝에 가서는 정말 펑펑 울더라고요. 그렇게 안면을 튼 후 선물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졌어요. 지금도 종종 찾아오는 단골 중 한 분입니다.

┗ 반대로 당황스러운 손님도 많았을 것 같아요.

선영: 에스프레소 붐이 일던 초기에 에스프레소 바가 많이 없었잖아요. 그래서 에스프레소 카페를 열고 싶은 분이 손님인 척하고 많이 찾아왔어요. 잔도 뒤집어 보면서, 저희한테 잔을 어디서 구입해야 하는지 묻는 손님도 계셨죠. (웃음) 가장 황당한 경우는, 저희 가게 메뉴를 이름까지 그대로 베낀 분이었어요. 심지어 남편이 메뉴를 설명하는 멘트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하시더군요.

오현: 저희 메뉴는 다 창작 메뉴잖아요. 그런데 에스프레소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까, 그게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메뉴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라테나 카푸치노처럼요. 어떤 가게에서 ‘프로즌’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파는 경우도 봤어요. (웃음) 심지어 ‘무슈부부에서 전수받았다’는 식으로 인터뷰한 분도 계셨고요.

┗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어요.

오현: 이제는 별로 신경 안 써요. 누군가에게 레시피를 똑같이 설명해도, 절대 똑같은 맛을 낼 수 없거든요. 경험치도 다르고요. 그래서 요즘엔 제보가 들어오면 ‘오히려 감사하지! 우리가 유명해졌나 봐’라고 생각하며 넘어가는 편이에요. (웃음)

◑ 최근 기억에 남는 대화나 말이 있나요?

오현: 손님으로 와서 이제는 이웃이 된 친구의 말이 기억에 남아요. 낚시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그 친구가 술을 끊었다고 말하는 거예요. 이유를 물어보니까, “자기한테 평생 쓸 수 있는 하트가 10개가 있는데, 조금이라도 아껴 쓰고 싶어서 술을 안 먹기 시작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때 한 방 맞은 기분이었어요. 저 역시 아이랑 뛰어놀 수 있는 물리적인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올해부터 술을 안 먹기 시작했어요. 전에는 퇴근하고 나면 집에서 소주 한 병을 혼자 비웠어요. 꼰대 아저씨였죠, 정말. (웃음)

선영: 저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요즘 남편이 제주도로 출장 가면 낚시를 해요. 그러다 한번은 무늬 오징어를 잡아 온 거예요. 4kg 정도 되길래 주변 이웃을 저희 집에 다 불렀어요. 카페 손님이었다가 근처에 살아서 친해진 분들이 대다수인데요. 남편이 직접 오징어를 손질해서 숙회로도 해 먹고, 볶음밥으로도 해 먹었죠. 아이들이랑 아빠들은 무늬 오징어 뼈를 들고 놀기도 하고요. 원래 엄마들끼리 친했는데, 무늬오징어 덕분에 그날 이후로 아빠들끼리도 친해졌어요.

┗ 인터뷰 초반에 말씀해 주셨던 슬로건에서 ‘family’의 범위가 더 확장된 것 같네요.

오현: 저희 가치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다들 개성 있는 삶을 사는 멋진 친구들이에요. 서로 좋은 영향을 주는 관계로 지내고 있어요.

선영: 망원동이 저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좋은 이웃 아닌가 싶어요. 처음부터 이렇게 가족 모두가 친하진 않았어요.

오현: 이제는 다들 가족 같은 사이가 된 것 같아요, 정말.

선영: 사실 ‘가족 같은 사이야’라는 말이 뭐랄까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예전에는 그런 말이 가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마음 맞는 친구들이 모여드니까, 좋아요. 동네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가 단단한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준 것만 같아요.

오현: 그 무늬 오징어가 사실 되게 귀한 품종인데요. 자랑하려고 잡았으면 SNS에 올리고 말았겠죠. 하지만 귀하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가족 같은 사람과 나눠 먹고 싶었어요. 이제는 집에서 반찬을 많이 해서 양이 남으면, 출근할 때 이웃집 앞에 두기도 해요. 서로 만든 반찬을 들고 집을 옮겨 다니면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도 하고요.

┗ 이웃끼리 서로 음식을 주고받는 게 서울에서는 그려지지 않는 모습인 것 같아요.

오현: 서로 솔직하게 대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알게 된 건 5년 전이고 요즘에 본격적으로 친해졌어요. 5년이라는 기간이 서로 차츰차츰 신뢰를 쌓아오는 시간이었죠.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자연스럽게 친해졌기 때문에 이렇게 막역히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됐다고 생각해요.

선영: 특히 아빠들끼리 친해지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무늬 오징어 먹는 장면을 SNS에 올렸을 때, 다들 부러워하더라고요. 지금도 저희끼리 만나면 그때 얘기를 해요. 남편에게 “무늬 오징어 또 언제 먹을 수 있나요?” 물어보기도 하고요. (웃음)

┗ 지금 무늬 오징어 얘기를 계속하셔서 그런지, 머릿속이 무늬 오징어로 가득 찼어요. (웃음)

오현: 나중에 기회 되면 놀러 오세요. 이 가족은 늘 열려 있으니까요.

Creator

권오현과 박선영은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안그라픽스를 거쳐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결혼과 함께 카페부부를 시작으로 10년 동안 커피를 업으로 삼고 있다. 평생 가족 직업이 목표다. 아빠 취향의 무슈부부커피스탠드를 합정, 망원, 제주에 오픈했고, 울산과 부산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현재 엄마 취향의 마담부부를 기획 중이다.

Editor

방현식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롱블랙»을 거쳐, 현재 «비애티튜드»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Photographer

박도현(@dhyvnpark)은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사진 기술자다. 렌즈 기반의 ‘좋은 이미지’ 제작을 지향한다.

Gacha! 더차일드후드홈 김대현이 뽑은 것

Gacha!

Gacha!

흥미로운 인물에게 랜덤 질문을 던집니다

비애티튜드가 새로운 섹션을 시작합니다. 바로 ‘가챠!Gacha!’인데요. 가챠는 일본말 가챠가챠(がちゃがちゃ)의 준말입니다. 작은 기계에서 나는 시끄러운 금속음을 말하는 가챠는 랜덤하게 캡슐을 뽑는 게임으로 우리에게 익숙해요. 저희는 이 가챠 시스템을 인터뷰에 적용했어요. 궁금한 질문을 마구 그러모은 후 인터뷰 현장에서 무작위로 뽑아 대화를 청합니다. 보통의 인터뷰와는 분명 다른 맛이 나겠죠?

비애티튜드의 호기로운 모험에 올라탄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편집숍 ‘더차일드후드홈THE CHILDHOOD HOME’을 운영하는 김대현 대표입니다. 패션 브랜드에서 세일즈, 바잉, MD 업무 등을 맡으며 11년간 일한 그는 2022년 1월 용리단길에 자신만의 편집숍을 시작했어요. 스트리트 브랜드 제품부터 라이프 스타일 제품까지, 다채로운 제품으로 채운 편집숍은 언제나 만석! 다른 매장에서는 쉬이 찾아보기 어려운, 개성 넘치는 국내 브랜드의 제품도 만나 볼 수 있어 입소문을 탔죠.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뽀빠이Popeye»에서 서울의 다채로움을 다룬 2023년 7월 호에 더차일드후드홈을 소개하면서 더욱 주목받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김대현 대표는 왜 홍대나 압구정이 아닌 신용산에 편집숍을 낸 걸까요? 편집숍 이름을 ‘더차일드후드홈’이라 지은 이유는 또 뭐고요? 궁금한 마음을 가득 안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예측불허 가챠 대화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 편집숍 공간이 예뻐서 사진 찍으러만 오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럴 때 기분 어떠신가요?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홍보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촬영을 하고 가시는 분들의 수에 비해, 인스타그램에 편집숍 계정이 태그된 게시물 수는 적은 느낌이어서요. 더차일드후드홈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홍보해 주시면 어떨까… 하는 게 요즘의 바람입니다. (웃음)

일본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뽀빠이 Popeye» 2023년 7월호에 소개된 더차일드후드홈

┗ 더차일드후드홈이 «뽀빠이»에 소개된 뒤에 외국 손님도 많이 찾아올 것 같은데요. 외국 손님과 한국 손님의 차이가 있나요?

아무래도 외국 분들은 매장 제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보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저희가 외국에 있는 숍을 구경할 때 궁금한 매장은 더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잖아요. 같은 이유로 외국 손님들의 체류 시간이 더 긴 것 같아요.

┗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으세요?

최근에 스웨덴에서 온 남자 두 분이 기억에 남아요. 두 분 다 스타일이 좋아서 패션 업계에 계시는 분인가 보다 하고 어림짐작했는데, 예상이 맞았더라고요. 어떻게 찾아오셨냐고 여쭤보니 역시 «뽀빠이»를 보고 오신 분들이었어요. 스웨덴 분이, 일본 잡지를 보고, 한국 매장에 놀러 왔다는 사실이 재밌어서 기억에 남아요.

┗ 역시 손님들의 패션을 보시는군요. 저는 편집숍을 방문할 때마다 한편으론 걱정하기도 했었거든요. 사장님이 내 패션을 평가하는 건 아닐지… (웃음)

손님분들의 스타일을 자세히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스타일이 좋으신 분들은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요. (웃음)

┗ 스타일이 좋은 손님이 있으면 먼저 말도 걸고 그러세요?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아요. 매장이 넓지 않아서, 제가 먼저 말을 걸면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종종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보통 손님이 들어오시면 가볍게 인사 정도만 하고 카운터에 있어요. 업무를 보거나 핸드폰으로 SNS 게시물을 관리하곤 하죠. 중간중간 손님들을 살피면서, 혹 도움이 필요하신 분이 있다 하면 그제야 말을 걸곤 해요. 예를 들어 행어에서 옷을 꺼내 들고 다니시는 분이 있다면, 새 상품 혹은 필요하신 사이즈가 있는지 여쭙는 정도에요.

◑ 더차일드후드홈은 용리단길에 있는데요. 왜 여기로 오셨나요?

‘용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부터, 지인들이랑 술 한잔하러 자주 왔었어요. 서울의 중간이라 모이기 좋잖아요. 성수에서 모이자니 홍대에 사는 친구들이 멀고, 홍대에서 모이자니 성수에 사는 친구들이 먼데 여기는 딱 중간 지점이니까요. 그런데 모일 때마다 아쉬운 게, 이 근방에 볼거리가 많이 없더라고요. 밥 먹고, 커피 한잔한 뒤에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편집숍을 차리기로 한 게 퇴사하기 1~2년 전 즈음인데요. 그때부터 삼각지와 신용산 쪽을 눈여겨보며 자리를 찾았어요.

┗ 이전에는 어디 계셨어요?

편집숍 에이랜드ALAND에서 운영하는 프랑스 브랜드 아페쎄A.P.C.의 바이어 겸 해외 브랜드 바잉 업무를 5년 동안 맡았었어요. 이후에는 국내 브랜드들을 전개하는 레이어LAYER로 옮겨 MD로 6년간 일했습니다. 도합 11년 정도 직장에 있었네요.

┗ 요즘 패션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패션 MD를 꿈꾸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패션 MD가 정확히 어떤 업무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회사 규모나 방향성에 따라 MD 업무는 다를 것 같아요. 레이어에 입사했을 당시에, 때마침 회사가 커지는 시점이라 여러 업무를 맡아서 했던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로 MD가 ‘모든 걸 다한다’의 약자라고 하잖아요. (웃음) 그때는 정말 영업부터 기획 업무, 협업, 해외 업무까지 맡아서 했어요. 그래도 당시를 돌아보면, 여러 업무를 맡아서 했던 게 지금의 저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 더차일드후드홈을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패션 업계에 계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자기 걸 하고 싶은 갈망이 있을 거예요. 그게 브랜드든, 편집숍이든 간에요. 저도 둘 중에 고민했었는데요. 브랜드를 혼자 운영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매 시즌 컬렉션도 준비해야 하고, 생산 비용도 혼자 짊어지기가 만만치 않은 걸 아니까요. 그래서 편집숍을 택했어요. 편집숍을 운영하면서 중간중간 PB 상품을 출시한다면, 브랜드 운영과 편집숍 운영의 장점을 모두 살릴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든요. 무엇보다 오프라인 공간을 꼭 열고 싶었고요.

┗ 오프라인 공간은 왜요?

브랜드가 어떠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공간이 가장 효율적인 것 같아요. 해외의 유명한 편집숍을 방문해 보면, 공간에 들어갔을 때 오감으로 전해지는 브랜드의 취향이라는 게 있거든요. 

┗ 그럼 더차일드후드홈에 오시는 분들에게는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싶으셨어요?

편안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연령과 성별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들어와 머물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죠. 더차일드후드홈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이유와도 연결될 것 같은데요. 더차일드후드홈은 직역하면 ‘어린 시절의 집’이에요. 어린 시절 온 가족이 함께 살던 집을 생각해 보면, 제가 좋아하는 물건만 놓여 있지 않잖아요. 부모님이 좋아하는 물건은 찬장에, 형이나 누나가 좋아하는 물건은 티비 위에 놓여있죠. 각자 다른 취향을 담은 물건들이지만, 같은 공간 안에 편안하게 어우러져 있잖아요. 그래서 더차일드후드홈도 스트리트 브랜드 의류부터 리빙 제품까지 다양한 물건이 어우러져 있어요.

┗ 그것도 궁금했어요. 매장에 들여오는 브랜드를 선정하는 기준이요.

매장에서 소개했을 때, 브랜드와 매장이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고민해요. 잠재력이 있는 브랜드를 찾는 편이에요.

┗ 대표적으로 하나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최근에 ‘맨프롬이스트Manfromeast’라는 브랜드와 협업 컬렉션을 출시했어요. 맨프롬이스트는 3D 프린트를 이용해 피겨, 키링 등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이는 브랜드인데요.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입점 제안을 드렸어요. 3D 프린터를 활용하니 아무래도 가격 면에서 다른 피규어에 비해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했죠. 피규어 시장이 넓은 일본에서도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브랜드는 많지 않아서, 해외 시장에 소개하기에도 좋다고 생각했고요.

Manfromeast x The Childhood Home 협업 컬렉션 © 더차일드후드홈 인스타그램

┗ 한국의 신진 브랜드를 해외에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으신 거군요.

지금은 해외 브랜드를 수입하는 것보다는, 한국 브랜드를 소개하는 게 시대적으로도 맞지 않나 생각해요. 한국 브랜드에 대한 해외 소비자들의 관심도 늘었고요. 무엇보다 해외 브랜드만 편집숍에 있다면, 해외 분들에게는 올 이유가 없잖아요. 동시에 한국 브랜드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한몫하고요.

◑ 옷장에 티셔츠는 몇 장 있으세요?

글쎄요… 최근에 많이 버렸어요. 이제 한 40~50여 장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요새는 쇼핑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재고 또는 선물 받은 티셔츠를 입곤 해요. 쇼핑 욕구도 예전만큼은 아니어서요.

┗ 쇼핑 욕구가 활활 타올랐을 때는 한 달에 얼마 정도 쓰셨어요?

얼마를 정해서 썼던 것은 아니지만, 돌아보면 당시 지출에 옷이 차지하는 부분이 꽤 컸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패션 회사를 다니다보니까요. 요새는 예전처럼 옷을 많이 사 입지는 않지만, 굳이 쇼핑을 한다면 브랜드보다는 핏을 따져보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빈티지 제품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 것 같고요. 새것이 아니다 보니 특유의 핏이나 유니크함이 옷에 담겨있어, 가끔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발견하면 구매하곤 해요.

┗ 빈티지 쇼핑은 어디서 하세요?

찾아서 쇼핑을 하는 정도는 아닌데요. 빈티지 제품이나 아카이브 제품을 판매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많더라고요. 우연히 계정을 둘러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제품이 있으면 사이트에 들어가 살펴보고 구매를 고려하는 편이에요.

◑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체력 관리… 해야죠. 이제 진짜 해야 할 것 같아요. (웃음) 예전에는 퇴근 후에 탁구도 했었는데, 바빠서 자주 못 가게 되네요. 땀 흘리면서 할 수 있는 유산소 운동을 찾아보는 중이에요.

┗ 쉴 때는 주로 뭐 하면서 시간 보내세요?

생각해 보면, 일주일에 쉬는 날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몸은 쉬고 있어도, 머리로는 계속 다음 일을 구상해야 하거든요. SNS 관리도 해야 하고요. 그래서 집에 있을 때면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보면서 최대한 푹 쉬려고 해요. 매장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간단한 스케치를 하기도 하고요.

┗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인상 깊게 본 작품 있으세요?

어제 밤에 ‹블랙미러Black Mirror› 시즌 6를 다 봤어요. 최근에 본 영화 중에는 미셸 공드리, 레오스 카락스, 봉준호 세 감독이 각자 도쿄를 배경으로 만든 세 편의 단편 영화 ‹도쿄Tokyo›가 기억에 남아요. 보기에는 조금 꺼림직하지만 실험적인 형식을 가진 예술 영화도 좋아하고요. 평소 생각하지 못한 스토리 전개를 따라가면 안 쓰던 뇌의 영역을 깨우는 느낌이랄까요. 영화뿐 아니라 소설책, 진Zine, 아트북도 마찬가지로 평소 생각하지 못할법한 스토리를 가진 콘텐츠를 좋아해요. 보다 보면 ‘이런 소스를 그래픽으로 풀어볼까?’, 혹은 ‘이런 전개로 팝업을 기획해 볼까?’ 각종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굳이 영감을 찾겠다고 노력하지 않아도요.

◑ 대표님은 몇 살까지 살고 싶으세요?

글쎄요… 너무 일찍 죽기는 싫고요. (웃음) 80~90대 정도가 좋지 않을까요?

┗ 그때까지 편집숍은 쭉 운영하고 싶으신 거죠?

더차일드후드홈은 오래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한국을 보면, 식당은 대를 이어가면서 몇십 년을 버티는 곳들이 있지만 숍은 그런 경우가 없는 것 같아서요. 나중에 제가 맡지 않아도, 다른 사장님이 이어서 맡아주면 어떨까 생각해요. 무엇보다 저는 지금 규모가 딱 좋거든요. 더 키우고 싶지도 않고요. 브랜드도 무턱대고 바잉하려 하지 않아요. 입점 브랜드가 많아지면 각각의 브랜드를 온전히 소개하기 어렵거든요. 위치도 여기가 딱 좋아요. 물론 건물주가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겠지만요. (웃음)

┗ 매출은 예상했던 것만큼 나오시는 편인가요?

아직 돈을 벌어봤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지금은 투자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돈을 벌어도 새로운 PB 상품 개발에 돈을 써야 하고, 새로운 브랜드도 들여와야 하고, 광고비도 계속 내야 하니까요. 아마 내년까지 상황은 비슷하지 않을까 해요. 투자를 계속하면서, 더차일드후드홈만의 아카이브를 착실히 쌓아두려 해요. 단순히 판매하는 공간으로 남지 않고, 여러 이벤트를 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거든요. 팝업 기획도 꾸준히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 기억에 남는 팝업 있으세요?

지난 7월에 열었던 로컬 진Zine 페어 ‘People & Print & Papers (PPP)’가 반응이 좋아서 가장 기억에 남아요. 팝업은 편집숍 ‘포스티스poshthis’를 운영하는 옥근남 디자이너, ‘로우 스튜디오Raww Studio’의 이구노 포토그래퍼와 함께 기획했는데요. 국내에서 활동하는 포토그래퍼, 뮤지션, 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창작자 27팀의 진을 한데 모았죠. 팝업은 주말 이틀 동안 진행했는데, 대략 500분 정도 와주셨어요. 저희도 기획하면서 반응이 어떨까 궁금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놀랐어요. 그래서 이번 9월에 두 번째 행사를 열 예정입니다. 7월에도 새로운 팝업을 기획 중이에요. 아직 가제인데요, ‘신용산 – 신기한 용산 전자상가’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려 해요. 게임기와 관련된 제품을 모아서 판매할 계획입니다. 어릴 때 프라모델, 미니카, 그리고 게임을 구매하려 용산전자랜드에 자주 갔었거든요.

People & Print & Papers (PPP) 로컬 진Zine 페어 현장

┗ 뭔가 어린 시절에도 대표님은 뚜렷한 취향을 갖고 계셨을 것 같아요. (웃음) 대표님께서 문화적으로 시야가 확 트인 사건이나 계기를 뽑아보자면 무엇이 있을까요?

중학교 1학년 때 가서 군대 가기 전까지, 뉴욕에 한 7년 정도 있었는데요. 청소년기를 미국에서 보낸 게 시야가 넓어진 계기가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한 편은 아니어서, 기술을 배워야겠다 생각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별의별 알바를 다 했었어요. 비디오 렌탈샵에서도 일해보고, 식료품 가게, 신발 가게, 꽃집에서 꽃 배달도 해봤죠. 비디오 렌털숍에서 일할 때는 한창 인기였던 ‹야인시대›를 한인분들에게 대여해 드린 기억도 나네요. (웃음)

┗ 그러다가 패션 업계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되신 건가요?

원래는 미용사가 되고 싶었어요. 미국에서 통역을 하면서 미용 일을 배웠는데, 아르바이트였는데도 돈을 꽤 벌었어요. 주급에 팁을 더하니까 한 달에 200만 원 이상은 벌었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미용 일을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정반대더라고요.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일에 쫓겨서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대다수였어요. 그래서 진로를 다시 고민하다가 패션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당시에도 옷 입는 건 좋아했거든요. 결심이 선 뒤에는 동대문에 가서, 아무 가게나 들어가 “무급으로 일할 테니, 공장 따라다니면서 일 좀 배울 수 없겠냐” 물어보고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 그때 대표님이 몇 살이었는데요?

스무 살에서 스물두 살? 군대 가기 전까지 동대문에서 일했어요. 전역 후에는 에이랜드의 세일즈팀에 입사했죠. 당시에 압구정 에이랜드에서 일했는데, 지하는 여성복이었고 2층은 남성복과 잡화였어요. 1층이 아페쎄였고요. 저는 2층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아페쎄 매니저 형 밑의 자리가 계속 사람이 바뀌는 거예요. 제가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고, 그렇게 아페쎄 팀으로 옮겨 일을 시작하게 됐죠. 아페쎄 일을 하는 중에, 에이랜드 이사님이 저를 좋게 봐주셔서 사무직으로 팀을 다시 옮기게 됐고요. 아무래도 영어를 할 줄 알았던 게 플러스 요인이었던 것 같아요.

┗ 진짜 몸으로 부딪치면서 일을 시작하셨네요.

열정으로 가득 찼던 때였죠. (웃음) 운도 좋았던 것 같아요. 레이어도 에이랜드에 있을 때 몇 번 협업하면서 알게 된 곳인데요. 협업 제품이 반응이 좋았고, 레이어 쪽 대표님과 MD분도 저를 좋게 봐주셔서 스카우트 제의를 해주셨어요. 좋게 봐주신 분들이 있어 감사한 마음이죠.

┗ 패션 업계에 오래 계셨던 만큼, 대표님께 자문을 구하러 오는 후배 혹은 동료 업계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특히 요즘 서울에 작은 규모의 편집숍들이 많이 생겨났잖아요.

많이 물어보긴 하는 것 같아요. 그분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혼자 일하는 분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어디서 피드백을 들을 수 없는데, 제가 MD로 오래 일했으니 일과 관련된 질문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브랜드에서 나와 편집숍을 차리고 싶으신 분들도, 어떻게 운영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기도 하시고요.

┗ 보통 그렇게 편집숍을 열겠다고 오시는 분들에게, 편집숍을 추천하는 편이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찾아오신 분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해도 하실 분들이거든요. (웃음) 그래서 제가 운영하면서 겪었던 현실적인 어려움 정도만 말씀드리는 편이에요.

◑ 편집숍 주변에 자주 가는 카페는 어디인가요?

바로 근처에 ‘당케Danke’라는 카페를 자주 가요.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하는데, 여기 카페에서 핸드드립으로 내려주는 에티오피아 원두를 좋아합니다. 업무 시작 전에 꼭 들러서 사 오는 것 같아요.

┗ 보통 하루 스케줄이 어떻게 되세요?

출근하면 가장 먼저 밥을 먹어요. 그리고 매장 청소 한번 하고, 온라인 주문이 들어온 물품을 배송하고, 새로 들어온 물건을 기준으로 매장 구성을 정비합니다. 오픈하고 나서는 컴퓨터로 온라인 사이트에 상품 등록을 하거나, 메일을 확인합니다. SNS용 이미지를 제작하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제품 제작을 위한 디자인이나 협업 작업, 미팅, 이벤트 준비 등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 퇴근 후에 술 한잔할 때는 주로 어디서 드세요? 편집숍 주변에 추천해 주실 만한 맛집 있을까요?

점심으로 먹기에는 ‘북천돈가스’, ‘정성손칼국수’가 좋아요. 물론 낮술 하기에도 좋고요. (웃음) 저녁에 자주 가는 곳이라면, ‘삼각정’을 추천할게요. 특수부위전문점인데요. 특히 모소리 부위랑 내장탕이 맛있어요. ‘제주옥’도 정말 자주 갔어요. 제주도 음식 전문점인데 비빔국수랑 몸국을 시켜놓고 술 먹으면 딱 좋습니다. 더차일드후드홈에서 함께 팝업을 기획한 태국 로컬 아티스트를 데려가기도 했어요. 나중에는 또 다른 태국 친구들에게도 추천해 주었는데, 가서 먹어보고 좋아하더라고요.

┗ 대표님 ‘인싸’시군요 태국 아티스트와 팝업 기획도 하시고⋯

아뇨, 인싸는 아니고요. (웃음) 10년 넘게 같은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여러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생긴 인연이 많아요. 업계 분위기가 바뀐 것도 한몫하는 것 같고요. 예전에는 브랜드끼리, 혹은 편집숍끼리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였는데요.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같이 잘 되는 게,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아는 것 같아요. 저희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에 신용산 근처에 작업실이 있는 브랜드, 혹은 편집숍의 제품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시유하다siyuada’라는 세라믹 브랜드는 바로 근처에 쇼룸이 있어요. 매장에 방문한 손님 중에 시유하다의 제품이 궁금한 분들은, 근처에 쇼룸이 있으니 한번 들러보시라고 말씀드리곤 해요. 리빙 편집숍 ‘샵 페블스Shop Pebbles’의 여러 제품들도 판매하고 있는데요. 샵 페블스는 후암동 근처에 매장이 있어요. 그래서 샵 페블스 제품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샵 페블스 매장에도 들러보시라고 추천합니다. 그 외에도 슈즈 브랜드 ‘이소IYSO’도 삼각지에 쇼룸이 있어서 저희 매장에서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 대표님의 인생에서 ‘행운이었다’고 말할만한 사건은 무엇이었나요?

지금의 아내를 만난 일이 아닐까요. 이제 결혼 6년 차인데, 아내는 제 인생을 여러모로 바꿔준 사람이에요. 연애를 막 시작할 때 제가 반지하에 살았었는데요. 아내가 제게 “그냥 지금부터 자기 집에서 같이 살면서 돈을 아끼고, 결혼 자금을 모으자”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정말 같이 살았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그때까지만 해도 비혼주의자였거든요. (웃음) 덕분에 아내랑 한참 토론도 했는데요. 같이 살다 보니 심적으로도 안정되고, 아내 덕분에 돈도 모여서 좋더라고요. 지금 편집숍을 차리게 된 것도, 아내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 같아요.

◑ 만약 대표님이 영화에 출연한다면, 맡고 싶은 배역이 있나요?

이왕이면 평범한 역할보다는 강렬하게 기억되는 악역을 맡고 싶어요. 제가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의 열혈 팬인데요. 드라마에서 치킨집 사장 역할로 나오는 구스타보 프링Gustavo Fring 역할이 멋진 것 같아요. 개인적인 시련도 있으면서, 외부적으로는 위압감 있는… 인상적인 악역이라 기억에 남아요.

◑ 인생에서 잠깐 돌아가 그때의 감정을 느끼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집에 온 가족이 모여 밥 먹었던 때로 한번은 돌아가고 싶어요. 돌아보니까 살면서, 가족 전체가 같은 밥상에 앉아 밥 먹었던 순간이 별로 없더라고요. 제가 형들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제가 컸을 땐 형들이 기숙사에 들어간 후였어요. 그래서 다섯 식구가 모여 밥 먹는 장면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 미국에서 살던 때를 말씀하시는 거죠?

아뇨. 미국에서 살기 전에요. 이건 저도 편집숍을 차리고 난 뒤에 알게 된 건데요. 제가 예전에 살던 집이 편집숍이 위치한 신용산 근처더라고요. 편집숍에서 나와 조금만 걸으면 용문시장이 있어요. 어린 시절을 돌아보니까, 장 보러 나가시던 어머니를 따라 용문시장에 자주 갔었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때 시장에 100원을 넣으면 움직이는 말 모양 놀이기구가 있었는데, 어머니를 졸라 실컷 타던 것도 생생하고요. 시장 안에 있는 신발 가게에서 번쩍번쩍 불이 나는 신발을 샀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기억을 더듬다 보니까 소름이 돋더라고요. 어린 시절에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Creator

김대현은 신용산에 위치한 라이프스타일 편집 매장 ‘더차일드후드홈THE CHILDHOOD HOME’의 운영자다. 여러 국내외 브랜드를 소개하며 다채로운 팝업을 병행 중이다.

Editor

방현식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롱블랙»을 거쳐, 현재 «비애티튜드»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Photographer

박도현(@dhyvnpark)은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사진 기술자다. 렌즈 기반의 ‘좋은 이미지’ 제작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