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s Room: 스팍스 에디션 장준오·어지혜의 작업실

Creator’s Room

Sparks Editon, 스팍스에디션

Creator’s Room

창작자의 작업실을 방문해 공간, 일상과 창작을 위한 도구 그리고 소중한 오브제를 글과 이미지로 소개하는 독창적인 섹션입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스팍스 에디션Sparks Editio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장준오, 어지혜입니다. 모든 디자인, 순수 미술, 혹은 그 이상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작업하고 있어요. 

스팍스 에디션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어지혜(이하 지혜): 제가 21살, 준오 씨가 27살 때 처음으로 만났어요. 컴퓨터 한 대 놓아두고 무엇이든 시도해 보려고 노력하던 시절이었죠. 우연히 뮤지션 10CM의 앨범 디자인을 함께 작업하게 됐는데 급히 팀명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당시 자주 듣던 콜드플레이Coldplay의 노래 ‘스팍스Sparks’에서 영감을 얻어서 스팍스 에디션이라고 지었답니다. 

장준오(이하 준오): 저는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후 무언가를 만들고 창조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는데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한 지혜를 만나서 창작의 폭이 더욱 넓어졌어요. 

스팍스 에디션은 그래픽 디자인, 북 디자인, 브랜딩, 아트워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작업하고 있어요. 지금까지의 활동 중 스팍스 에디션을 대표할 만한 것은 무엇일까요?

10CM의 정규 1집 ‹1.0›은 스팍스 에디션의 이름으로 작업한 첫 번째 프로젝트였어요.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제대로 배우기 전이라 지금 보면 서툰 면이 많지만, 그래서인지 더욱더 소중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업이에요. 방탄소년단의 정규 4집 ‹MAP OF THE SOUL : 7›은 아이돌과 처음으로 협업한 프로젝트였는데, 로고부터 패키지 디자인, 프로모션을 위한 가이드라인까지 두루 아우르는 앨범 브랜딩 작업이라서 무척 보람찼던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청사진 기법을 활용해 디자인한 RM의 솔로 정규 1집 ‹Indigo›도 이어서 함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르세라핌의 미니 2집 ‹ANTIFRAGILE›은 일본의 전통 도자기 수리 기법인 킨츠기(金継ぎ)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는데요. 간결한 라인에 함축적인 느낌을 담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더불어, 최재훈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 북인 ‹365 NERVE›, 보이는 각도에 따라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카페 MOSP의 아이덴티티 디자인도 저희에게는 무척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업이어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스팍스 에디션의 이름으로 처음 작업했던 10CM의 정규 1집 ‹1.0› © Sparks Edition

최재훈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 북 ‹365 NERVE› © Sparks Edition

사이니지와 그래픽을 비롯해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총괄한 카페 모습(MOSP) © Sparks Edition

뮤지션과 함께한 앨범 작업이 특히 눈에 띄네요.

지혜: 뮤지션들은 각자의 작업 스타일이 확연히 다른 편이라 그 과정부터 무척 흥미로워요. 앨범에 수록할 곡을 들려주며 창작 배경을 세세하게 설명해 주실 때도 있고, 저희의 창작 스타일에 자유롭게 맞춰 주실 때도 있어요. 아이돌과 함께하는 작업은 앨범 한 장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느낌이라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죠.

RM의 솔로 정규 1집 ‹Indigo› © Sparks Edition

© BE(ATTITUDE)

두 분 모두 개인 작업을 병행하시는 점도 흥미로워요.

준오: 스팍스 에디션 이름으로 작업에 몰두하다가 개인 작업을 하면 마음에 환기도 되고, 함께하는 공동작업에서 불가능한 창작 욕구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어서 좋아요. 온전히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을 자유롭게 하다 보면, 클라이언트 잡을 위한 에너지도 다시 충전되는 느낌이고요. 양쪽을 오가려면 몸도 마음도 언제나 분주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크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개인 작업을 꾸준히 하는 것 같아요.

지혜: 스팍스 에디션으로 일할 때는 대부분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니즈를 생각하며 작업을 진행해야만 해요. 반면, 개인 작업은 저만의 이야기와 감정을 일기처럼 꺼내어 펼쳐보는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죠. 얼마 전에 개인전을 열었는데, 주제가 ‘녹턴Nocturne’이었어요. 녹턴을 한국어로 옮기면 야상곡(夜想曲)인데요. 말 그대로 밤 시간에 영감을 얻어 작곡한 음악을 뜻해요. 저도 낮에는 스팍스 에디션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밤이 돼서야 비로소 개인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의미가 서로 연결된다고 느꼈죠.

준오: 저는 예전부터 규모가 큰 입체 조형물을 작업해 보고 싶었어요. 언젠가는 공공장소를 비롯한 넓은 공간에 작업을 전시하며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선보일 날을 바라고 있답니다.

바쁜 와중에 최근 와인 바를 오픈했다고 들었어요.

지혜: ‘매치스Matches 성수’라는 이름의 공간이에요. 요리와 브랜딩 등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가들과 함께 오랫동안 준비했어요. 저희가 창작자이다 보니 매치스 성수를 위한 테이블웨어와 메뉴판을 비롯해 여러 아이템을 만들었는데요. 지금 인터뷰하기 바로 직전에 그릇이 작업실에 도착해서 확인하고 있었네요. (웃음) 앞으로 매치스 성수가 음식 외에도 다양한 전시와 행사 등을 두루 선보이는 멋진 공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계시는 작업실은 언제부터 사용하셨나요?

지혜: 사실 오래되지 않았어요. 올해 5월에 이곳으로 이사 왔거든요. 이전에 사용하던 작업실에서 10년 정도 머물다 보니 점점 물건이 많아져서 걷잡을 수 없어지더라고요. 스팍스 에디션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제작한 포스터와 샘플이 셀 수도 없었고, 거기다가 각자 작업한 개인 작품들도 있으니까요. 죄다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남는 공간은 없어서 고민을 거듭하다 또 다른 스튜디오를 오픈한 게 바로 여기예요. 이전 작업실은 저희 아트워크를 위한 전용 공간으로 활용 중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는 국민대학교 앞이고, 이번에는 성신여자대학교 앞이라 두 곳 모두 대학교 앞이네요. (웃음) 

두 분 모두 무언가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인가요?

준오: 완전요. 물건 하나하나 모두 소중히 생각해서 절대 버리지 못해요. 길을 가다가 버려진 물건이 쓸 만하면 소중하게 주워와요.

지혜: 저도 예전에는 그런 편이었는데, 이제는 공간이 너무 없다 보니까 버릴 건 버려야겠더라고요. 우리 중 한 명이라도 현실을 생각해야만 하는 상황이 와버린 거죠. 하하.

© BE(ATTITUDE)

새롭게 구한 작업실 구조가 독특하네요. 오래된 주택 느낌이 나요.

준오: 정릉 작업실과 거리가 멀지 않아서 이 부근의 식당과 카페에 자주 들렀어요. 그때부터 오래된 벽돌 외관이 아름다웠던 이 건물을 눈여겨봤죠. 그러다 여기 2층이 매물로 나온 걸 알고 반가워서 단번에 계약했어요. 특히 이 마룻바닥 좀 보세요. 새로 시공한 마루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빈티지한 빛과 색을 가진 모습에 반했답니다.

반년 정도 지내보니 예전과 비교해 어떤 부분이 다르던가요?

지혜: 정릉 작업실은 일단 넓었어요. 벽으로 막혀 있지 않아서 커다란 원룸 같았죠. 그래서 이번에는 공간을 오밀조밀 분리한 구조를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여기는 옛날에 주택으로 사용한 곳이라서 거실 같은 공간에서 전체 회의를 할 수 있고, 저희와 팀원들의 방도 나뉘어 있고, 부엌도 따로 사용할 있어서 마음에 들어요.

준오: 업무와 관련한 통화를 길게 하거나, 좀 더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요. 아마 팀원들도 전보다 만족도가 높아졌을 거예요. 그렇…겠죠? (웃음) 

이곳이 특히 마음에 드는 이유를 꼽아보신다면요?

지혜: 공간에 빛이 잘 들어오는지, 창가에 큰 나무들이 잘 보이는지가 제게는 무척 중요한데요. 지금의 작업실은 늦은 오후가 되면 햇빛이 거실의 절반을 넘어설 만큼 공간 깊숙이 들어오고, 창밖으로는 2층에서도 잘 보일 정도로 높고 커다란 포도나무와 라일락 나무가 서 있답니다. 올여름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 모습이 정말 신기했어요. 나무가 잘 자라는 걸 보니까 ‘볕이 잘 들고 따스한 공간이구나’ 싶어서 이곳이 더욱 마음에 들었죠.

준오: 저는 거실 옆에 자리한 크고 넓은 전면 창이 참 좋습니다. 창밖 풍경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뚜렷이 알아챌 수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고요.

작업실에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도구는 무엇인가요?

지혜: 컴퓨터로 작업할 때는 ‘와콤Wacom’ 태블릿 펜을 주로 사용해요. 정말 펜처럼 스케치를 자유롭게 할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마우스를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스케치를 러프하게 하는 맛이 있어서 각자의 특징이 존재하죠. 문구류는 스위스 브랜드 ‘까렌다쉬Carendache’를 좋아해서 펜, 볼펜, 만년필 등 용도에 맞게 다양한 컬러를 구비해 놓았어요. 펜을 쥐었을 때의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애용하고 있어요. 노트는 홍대에 있는 호미화방에서 판매하는 도톰한 두께의 크로키 노트를 주로 사용합니다.

준오: 저는 종이 중에서 로얄보드를 즐겨 사용해요. 옅은 미색과 특유의 질감이 마음에 들어서 그림을 그릴 때도 쓰고, 간단하게 모델을 만들 때도 요긴하죠. 두께도 다양해서 용도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은 것도 장점이에요. 필요할 때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테이블 밑에도 항상 적당한 양의 로얄보드 종이를 쟁여놔요. 일하다가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는 호미화방에 가서 로얄보드 종이를 잔뜩 사 오곤 한답니다. 도구를 잘 정리해 두는 편이 아니라 칼이나 자, 커팅 매트 같은 도구는 금방금방 찾을 수 있게 늘 넉넉히 구비하는 편이에요.

개인 작업에 즐겨 사용하는 도구는 아마 다르겠지요?

지혜: 페인팅할 때는 ‘골든Golden’에서 나온 아크릴 물감을 고집해요. 색감이 맑고 투명해서 색연필과 잘 어울리거든요. 색연필은 심이 굵고 단단한 질감을 선호해서, 주로 ‘프리즈마Prisma’를 사용합니다. 앞으로는 파스텔도 써보려고 해요. 좀 더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 무척 적당한 재료라는 생각이 들어요.

준오: 개인 작업이 보통 조형물로 풀려서 다양한 공구가 필요한데요. ‘마끼다Makita’가 제일 마음에 들어서 종류별로 갖춰 놨어요. 작업에 따라 쓰임이 다르기 때문에 더 많은 아이템을 갖고 싶지만, 이 작업실에도 짐이 많아질까 봐 최대한 참고 있어요. (웃음)

Sparks Editon, 스팍스에디션
Sparks Editon, 스팍스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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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ATTITUDE)

가방에 항상 휴대하는 도구나 아이템이 있나요?

준오: 저는 어떤 가방이든 항상 기타 피크 몇 개가 들어 있어요. 친구들과 밴드 활동을 해서 틈날 때마다 모여서 연습하거든요. 작업하다가 휴식을 취할 때 언제든지 악기를 연주할 수 있도록 정릉 작업실과 여기에 기타 몇 개도 가져다 놓았답니다. 만약 개인적인 작업실을 한 군데 더 만들 수 있다면 앰프 시스템을 제대로 갖춘 합주실로 활용할 것 같아요. 아, 그러면 작업실이 아니라 아지트에 가깝겠네요.

지혜: 저는 가방 속에 펜과 노트를 항상 소지해요. 새로운 영감이나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곧바로 스케치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Sparks Editon, 스팍스에디션

두 분 모두 창작에 정말 진심이군요! 혹시 창작과 관련해 평소 선호하거나 도움받는 통로가 있을까요?

지혜: 여러 분야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팟캐스트를 채널 별로 다양하게 청취하고 있어요. 사실 일을 하다 보면 만나는 사람의 직업과 커리어의 카테고리가 비슷해질 수밖에 없어요. 혹여라도 지금껏 작업하던 방식이나 스타일에 갇혀서 자칫 시선이 편협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곤 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다양한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를 흡수하려고 노력해요.

준오: 그래서 ‘스펙트럼 오브젝트’라는 이름으로 애니메이션, 회화 등 다양한 작업을 하는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고 있어요. 한 10명 정도 돼요. 다들 경력이 많아질수록 각자의 분야에 집중하면서 취향이 점점 좁아지는 걸 느껴서 모두의 스펙트럼을 조금씩 넓혀보자고 만든 모임이에요. 격주마다 만나서 자기가 영감받은 책, 음악, 영화 등의 콘텐츠를 공유하고 다음 만남까지 이에 대한 해석을 담은 결과물을 보여주는 게 규칙이에요. 이제 벌써 7~8년은 된 것 같아요.

지혜: 스펙트럼 오브젝트는 정기적으로, 그리고 꾸준히 예술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는 지점이 특히 마음에 들어요. 평소의 저라면 전혀 듣지 않을 음악을 모임에서 추천받아 듣게 되는 경험이라니요. 장르에 대한 취향도 긍정적으로 확장하는 것 같아서 흥미롭답니다. 모임에서 얻는 영감은 스팍스 에디션의 프로젝트를 할 때도 큰 도움이 돼요. 저희만의 틀에 갇히지 않아야 더욱더 창조적인 일을 지속할 수 있다고 믿어요.

업무로 지칠 때 마음을 환기하는 장소를 꼽아주시겠어요?

준오: 저는 악기를 워낙 좋아해요. 악기 구경하러 악기 숍도 가고, 낙원 상가도 찾아가는데요. 그냥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생각을 떠올릴 틈이 없답니다.

지혜: 저는 최근에 한강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올해 유독 힘들고 고단한 일정이 많았거든요. 계속 이어지는 마감에, 개인전까지 준비하느라 몸도, 마음도 제대로 쉴 틈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한강에 갔는데요. 무척 여유롭고 좋더라고요. 망원 지구를 자주 찾는 편인데, 다른 지구도 가보고 싶어요.

Sparks Editon, 스팍스에디션

여기 성신여대 작업실에는 정릉 작업실에서 소품이나 가구를 얼마나 가져오셨어요?

지혜: 놀랍게도, 아무것도 옮기지 않고 전부 그대로 두고 왔어요. 새로운 마음으로 빈 곳을 하나씩 채웠답니다.

그럼, 이 모든 게 다…(웃음) 새로 구입한 아이템 이야기 좀 들어볼까요?

준오: 다행히도(?) 선물이 참 많아요. 우선 책상 위에 놓인 분재를 비롯해 각종 식물은 대부분 선물로 받은 거예요. 무화과나무는 얼마 전에 열매도 열렸어요. 활짝 핀 꽃처럼 생긴 전등 갓이 매력적인 빈티지 테이블 램프도 정말 마음에 드는 친구죠. 이탈리안 조명 브랜드 하비 구찌니Harvey Guzzini에서 제작한 ‘콰드리폴리오Quadrifoglio’라는 제품인데, 이탈리아어로 ‘네잎클로버’를 뜻한대요.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는데, 마침 장모님이 이사 기념으로 선물해 주셨어요!

지혜: 김기석 디자이너가 만든 ‘팩토Faktor’ 철제 책장을 새로 장만했어요. 하나의 모듈을 단독으로 쓰거나, 여러 개를 이어서 사용할 수 있는데요. 입구 옆에 하나를 놓고, 창가 앞에서는 두 개를 연결해 놓았어요. 색다른 소재의 미니멀한 가구를 고민하다가 들이게 됐는데, 오래된 나무 바닥과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준오: 사실 필요한 가구가 있으면 직접 만들기도 해요. 거실의 큰 책상은 합판을 주문해서 제가 만든 거예요. 팀원들과 다 같이 회의하고, 모델을 만들 수 있답니다. 테이블 아래에는 작은 샘플을 보관하고 종이가 필요할 때 곧바로 쓸 수 있도록 수납공간을 갖춰놨어요. 저희가 작업하는 방에 놓인 커다란 검정 테이블도 뚝딱뚝딱 제가 만들었습니다.

Sparks Editon, 스팍스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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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ATTITUDE)

요즘 작업실에서 즐겨 사용하는 오브제는 무엇인가요?

준오: 뮤지션 옥상달빛의 김윤주 씨가 운영하는 와우산 레코드의 브랜딩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게 인연이 되어서 이번에 이사할 때 뱅앤올룹슨의 A5 스피커를 선물로 주셨어요. 정릉 작업실에도 항상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피커가 있었던 터라, 새로운 작업실에도 공간과 어울리는 스피커를 두고 싶었는데 때마침 좋은 스피커가 생겨서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두 분 다 물건을 선택하는 기준이 까다로울 것 같아요.

준오: 저희는 브랜드나 디자이너를 보고 물건을 고르지는 않아요. 그 물건이 놓이게 될 공간과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나 스타일이라면 이것저것 따지지도 않고 바로 선택하는 편이죠. 작업실 곳곳마다 보이는 스틸 스탠드만 하더라도 이케아에서 발견한 제품인데요. 디자인, 가성비 모두 만족스러워서 여러 개 구입했어요.

지혜: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콘, 즉 시그너처 아이템보다는 조금 특이한 디자인을 선택하기도 해요. 이케아 스탠드 옆에 놓인 스탠드는 이탈리아 조명 브랜드 플로스Flos의 ‘토이오Toio’ 램프인데요. 전위적이고 위트 있는 디자인으로 유명한 형제 디자이너 아킬레와 피에르 자코모 카스틸리오니Achille & Pier Giacomo Castiglioni의 작업이에요.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소재로 만들었는데 플로스의 전형적인 디자인이 아니라서 오히려 마음에 들어요. 테이블과 함께 놓은 빈티지 체어는 토넷Thonet 제품인데, 우리가 아는 토넷 느낌과는 거리가 멀죠. 사실 편하고 아름답다면 브랜드는 큰 상관 없어요.

Sparks Editon, 스팍스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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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ATTITUDE)

컴퓨터를 놓은 작업용 책상에는 의외로 물건이 많이 없네요.

지혜: 둘 다 피규어를 정말 좋아해서 많이 수집하는 편인데요. 이번 작업실에서는 책상 위에 아무것도 놓지 말고 최대한 깨끗하게 사용하자고 서로 굳게 다짐했어요. 그래서 각자 좋아하는 피규어 서너 개만 가져와서 컴퓨터 앞에 놓았죠. 준오 씨는 원숭이, 저는 고양이 오브제를 좋아해요.

혹시 이 작업실에 추가하고 싶은 오브제가 있을까요?

준오: 새로운 작업실을 구한 이유 중 하나가 순전히 ‘물건이 너무 많아서’였기 때문에, 이곳에는 최대한 새로운 오브제를 구입하지 않는 게 저희 목표에요. 집이든 작업실이든 한 번 장소를 정하면 꽤나 오래 머무르는 편인데요. 과연 이곳에서는 얼마나 지낼지 기대되네요. 그래서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는 얼마나 많은(?) 물건이 추가될지 저희도 궁금해요.

Sparks Editon, 스팍스에디션
Sparks Editon, 스팍스에디션

© BE(ATTITUDE)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에 작업실로 깜짝 선물을 보내드렸어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스테이에이치STAY H’가 커다란 도움을 주셨죠. 다양한 아이템 중 작업실에 어울리는 물건을 하나 고를 수 있었는데요. 스팍스 에디션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지혜: 노르웨이 디자이너 안드레아스 엥게스비크Andreas Engesvik가 디자인한 폰타나 아르테Fontana Arte의 ‘블롬Blom’ 테이블 램프를 골랐습니다!

어떤 면에 끌리셨어요?

얌전히 오므린 꽃봉오리 같은 형태가 독특한, 현대적이면서 무척 고전적인 디자인의 램프인데요. 저희가 가지고 있는 빈티지 스탠드와 ‘따로 또 같이’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꽃잎 부분을 회전하며 빛의 양을 조절하는 센스도 마음에 들었고요. 스탠드 이름인 블롬은 노르웨이어로 ‘꽃’을 뜻하는 ‘Blomst’에서 유래했다고 하던데요. 그러고 보니 오늘 꽃나무, 꽃 조명…꽃 얘기를 참 많이 했네요. (웃음)

Sparks Editon, 스팍스에디션
Sparks Editon, 스팍스에디션

Artist

스팍스 에디션(@sparksedition)은 입체 미술을 전공한 장준오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한 어지혜가 공동으로 설립한 스튜디오다.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시각 디자인과 아트워크 작업을 하고 있다. 디자인 작업에 다양한 접근 방식을 시도하며 ‘그래픽’이라는 틀에 국한하지 않는 활동을 지향한다.

Editor

정윤주(@chungyunjoo)는 대학에서 실내 디자인을 전공하고 «메종 코리아» 인테리어 에디터와 «보그 걸» 피처 디렉터로 일했다. 영화 속 인테리어와 데코레이션에 주목한 책 『영화 속의 방』의 저자이며, 온라인 매거진 «디퍼differ»의 디렉터 겸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프리랜스 에디터 겸 EYES and EARS 디렉터로 다양한 매체에 인터뷰와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글을 기고한다. «엘르 데코 코리아», «로피시엘 옴므»의 객원 에디터이기도 하다.

Photographer

박영감(@khuss_goods)은 안산공고 전자과를 졸업한 후 취미이던 사진이 직업이 된 비전공자 사진작가다. 좋은 분위기에서 촬영한 사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진이라고 생각하며 좋은 분위기의 현장을 위해 노력한다.

Creator’s Room: 길종상가 박길종의 작업실

Creator’s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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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의 작업실을 방문해 공간, 일상과 창작을 위한 도구 그리고 소중한 오브제를 글과 이미지로 소개하는 독창적인 섹션입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길종상가’를 운영하는 박길종입니다. 2010년부터 길종상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가구와 아이템 제작, 디스플레이, 전시, 공간과 인테리어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오늘 만나는 시간을 오전 10시로 정하셨어요. 여느 인터뷰에 비해 꽤 이른 시간인데, 작업실에 일찍 출근하시는 편인가요?

보통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 출근하고, 저녁 6시에 퇴근해요. 저 외에 다른 친구들이 이곳을 쓰기도 해서 사용 시간을 지키려고 하죠. 일정한 시간을 두고 일하는 습관이 제 일상생활에도 좋고요. 평소에는 주로 집에서 작업하는데요. 그때도 정해진 근무 시간 내에 일하려고 합니다.

지금의 루틴을 정한 계기가 있었나요?

길종상가를 운영하던 초기에는 열정이 넘쳐서, 매일 늦게까지 야근하며 기계처럼 일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저녁이 있는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된 후로는 정해진 시간에 집중해서 일하기로 마음먹었죠.

초창기 길종상가는 개인적인 의뢰를 통해 집이나 사무실을 위한 가구와 소품을 제작했어요. 지금도 생각나는 특별한 의뢰를 꼽아보신다면요?

제게 작업을 의뢰하는 분들 대부분은 가구의 용도가 명확하고 공간 크기는 정해져 있는데, 이에 부합하는 디자인을 기존 브랜드에서 찾지 못하는 경우였어요. 한 번은 술 애호가로부터 다양한 술을 저장하는 가구를 의뢰받은 적이 있었는데요. 겉보기에는 평범한 박스 형태의 작은 테이블이지만 양쪽을 열면 내부에 술을 수납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가구였어요. 바퀴가 달려서 원하는 곳으로 옮길 수도 있었죠. 술 저장고가 흔한 아이템이 아니라서 지금도 기억에 남네요.

요즘은 공공기관, 박물관, 갤러리를 위한 가구와 전시 프로젝트와 관련한 설치물을 제작하기도 하시죠.

네, 맞아요. 더불어 이제는 상업 시설의 공간 전체를 설계하고, 내부 가구와 집기류를 디자인하는 영역까지 조금씩 확장하고 있어요. 인테리어는 2020년부터 시작했는데요. 최근, LP바 ‘근정전’과 카페 ‘애쉬빌 베이커리’를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길종상가에서 공간 디자인을 맡은 장소들. (좌) LP바 ‘근정전’ © 박길종, 신동환, 최원빈. (우) 베이커리 겸 카페 ‘애쉬빌 베이커리’ © 이해란

길종상가를 언급할 때 에르메스 쇼윈도 디스플레이 작업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해요.

에르메스와는 2015년부터 지금까지 약 9년간 함께 작업하고 있어요. 정기적으로 새로운 오브제를 디자인할 때마다 많은 에너지를 받고 있습니다. 대신 정해진 마감일을 지키고, 창작에 대한 부담감을 감내해야만 하죠. 야간에 설치를 진행하다 보니 육체적인 피로도 무시할 수 없어요. 하지만 오랜 전통과 분명한 아이덴티티를 지닌 브랜드와 일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답니다. 예를 들어, 그 작은 쇼윈도 안에 등장하는 어떤 제품이라도 그 자리에 놓여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 같은 거요. 에르메스는 신발 한 짝 허투루 놓는 법이 없어요.

2021년 가을 롯데 월드 타워점  에르메스 매장 윈도 디스플레이 © 사진 김상태 / 에르메스 코리아 제공

2019년 봄 롯데 월드 타워점  에르메스 매장 윈도 디스플레이 © 사진 김상태 / 에르메스 코리아 제공

서양화를 전공하셨어요. 길종상가 작업을 생각하면 의외라고 느끼는 분들이 계실 텐데요. 전공이 본인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되나요?

사실 저는 지금도 가구와 건축 분야에서 아이콘이라 부를 만한 유명 디자이너와 건축가에 대해 잘 몰라요. 책을 살피다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발견하면 누구 작업인지 확인하는 정도에요. 가구, 인테리어의 역사와 스타일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기준이나, 선입견, 정해진 흐름을 신경 쓰지 않고요. 재료와 표현 방식 면에서 새롭게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해요.

지금까지 정말 많은 작업을 해왔는데요. 혹시 대표작으로 꼽고 싶은 작업이 있을까요?

보통 최근에 진행한 작업을 대표작으로 소개하는 편이에요. 그 속에 제 모든 노하우가 담겨 있으니까요. 너무 멀리 말고, 몇 년 사이에 기억나는 것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로비에 전시했던 ‹팔방풍›이 생각나요. 이후 ‹팔방거›, ‹언덕 위의 팔방풍› 등의 연작이 나오는 시작점이라 제게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입니다. 2017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관련자, 그래픽 디자이너와 즐겁게 협업한 ‘고객의 소리 MMCA 온’에서 가구 디자인을 맡았는데요. 미술관에 갈 때마다 항상 사람들이 앉은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마음이 흡족해요. 2018년,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커피사회»에 설치한 ‹커피, 케이크, 트리›는 지름 5m, 높이 4m 규모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커다란 상징 조형물이었어요. 당시 연말에 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기분이 들어서 기억에 남아요. ‘제14회 언리미티드 에디션 – 서울아트북페어 2022’의 경우에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적은 비용과 촉박한 스케줄 아래에서도 효과적으로 공간을 장악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 같아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팔방풍›, 2016

‹MMCA ON›, 2017

나무, 플라스틱, 스틸, 종이, 폼보드 등 다루는 재료가 무척 다양한데 어떤 걸 선호하세요?

아무래도 오랫동안 다뤘기 때문인지 나무가 제일 편하게 다가오죠. 대학 졸업 후 시급이 높다고 들어서 목공소를 찾아갔거든요. 그곳에서 어깨너머로 기술을 많이 배웠어요. 그리고 순차적으로 금속과 아크릴을 사용하면서 재료의 혼합을 즐기기도 했고요. 지금은 딱히 어떤 재료를 선호하기보다는, 프로젝트에 잘 어울리는 재료를 적절하게 찾아서 사용하려고 노력해요.

여기 작업실은 언제부터 사용하셨나요?

2016년부터 사용했으니 이제 7년이 넘었네요. 저는 집이나 작업실 같은 장소를 선택하면 그 동네에 오래 머무는 편이에요. 그전에는 이태원에 작업실이 있었는데요.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거주하던 곳이라, 자연스럽게 집과 가까운 곳에 작업실을 만든 경우였어요. 혼자서 소규모로 일할 때는 집과 작은 작업실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점점 작업량이 늘어나고, 재료를 수납할 공간이 필요해져서 좀 더 넓은 곳을 찾게 됐어요. 을지로는 여러 재료를 다루는 가게들이 모인 지역이라 자주 다녀서 익숙하기도 했고, 당시 여러 조건에 잘 들어맞아서 이곳을 선택했어요.

대로변에는 가구와 조명 가게가 많은데, 작업실이 위치한 안쪽 골목은 또 다른 분위기네요. 건어물 시장이 펼쳐지며 골목마다 굴비가 주렁주렁 걸려있어요. 오랜 시간 지내보니 이 동네와 작업실의 장단점은 무엇이던가요?

가장 큰 장점은 필요한 재료를 빠르게 구할 수 있고, 아크릴이나 금속 제작 거래처에 가까워 오가기 편하다는 거예요. 반면, 도매시장 한복판이라서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만 작업실 쪽으로 차를 진입할 수 있는 건 단점이죠. 그래서 백화점 디스플레이를 진행할 때 사실 가장 힘들어요. 백화점은 매장 문을 닫은 후에야 설치 및 철거 작업이 가능하잖아요. 근데 자정이 지나면 작업실 쪽에 주차할 수가 없으니까… 양측의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 않죠. 골목 입구에서 작업실이 있는 건물로 접어드는 도로가 좁고 울퉁불퉁해서 짐 옮기는 일이 힘들기도 하고요. 그래서 크고 단단한 바퀴가 달린 수레를 여러 개 제작했어요.

그럼에도 여전히 머물고 계시네요. 이사를 고민할 정도의 단점은 아닌가 봐요. (웃음)

지금보다 공간이 넓고, 작업실 바로 앞에 주차 공간이 마련된 작업실을 현재 예산에서 찾으려면 아무래도 서울 시내에서는 어려우니까요. 다른 멤버와 함께 작업할 때도 있어서, 각자 집과의 거리를 생각해 보면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이 작업실이 지금으로선 최적이라고 생각해요.

작업실에 비치한 가구는 직접 만드셨나요?

구입한 건 거의 없어요. 산책하다가 길에서 발견해서 주워 오는 경우도 있고요. (웃음) 필요한 게 생기면 보통 저나 멤버들이 만들어요. 그래서 작업실의 분위기나 공간 구조가 수시로 바뀌는 편이에요. 여기 작업실 한가운데 있는 수납장도 얼마 전에 만든 거예요.

작업실 내부에 벽과 문으로 구분한 사무 공간이 있네요.

사무실 내부는 필요할 때마다 계속 고치고, 무언가 새로 만들면서 사용 중이에요. 처음에는 작업실에 가구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회의할 자리가 필요해서 테이블을 만들고, 누군가 사무실에 있는 소파를 집에 가지고 가면 남은 자리에 책상을 만들어 놓는 식으로요. 그래서 가구의 유무나 배치가 매우 유동적인 편이에요. 정해진 자리나 규칙이 없어요.

오래된 영화 포스터, 엽서, 이미지가 잔뜩 붙은 철제 캐비닛이 눈에 띄네요.

대학생 때부터 사용한 물건이에요. 당시 관람한 영화 팸플릿이나 마음에 들었던 잡지 이미지 등을 붙여 놓았어요. 시간이 지나면 종이가 찢어질 법도 한데, 신기하게 다 잘 붙어 있네요. 20대의 제 취향이 여기 모두 담겨 있어요. 여러 차례에 걸쳐 꾸준히 이룬 결과이기 때문에, 그 시기를 상징하는 저만의 일기장 같은 거죠. 그때 좋아했던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óvar 감독의 영화 이미지가 가장 많이 붙어 있어요. ‹귀향›(2006), ‹브로큰 임브레이스Broken Embraces›(2009) 등이죠. 작업실을 다른 곳으로 옮길 때에도 저 캐비닛은 끝까지 가지고 가지 않을까 싶네요.

작업할 때 자주 사용하는 도구는 무엇인가요?

타카와 드릴, 사포, 샌딩기 등이 기본적으로 필요해요. 가구 만드는 사람은 대부분 갖추고 있는 평범한 아이템이죠. 고가이거나 특별한 브랜드의 장비를 사고 싶은 생각은 딱히 해본 적 없어요. 

그래도 작업하다 보면 장비 욕심이란 게 생길 만도 한데요.

예전에 장비 개수가 많지 않을 때는 욕심이 났어요. 그래서 돈이 생길 때마다 장비를 하나씩 사들였는데, 어느 정도 기본적인 장비 체계를 갖추니까 그런 마음이 사라지더라고요. 새로운 기술과 멋진 디자인의 장비는 앞으로도 계속 출시될 텐데 작업실 공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무작정 욕심부릴 수는 없어요. 지금도 충분해요. 

즐겨 사용하는 브랜드가 있을까요?

일본 공구 브랜드인 ‘마끼다Makida’를 많이 사용해요. 처음에는 충전 배터리의 호환성 때문에 구입했는데요. 배터리에 맞춰 다른 공구들도 줄지어 마끼다 제품을 사다 보니 어느새 모든 공구를 한 브랜드로 통일하게 됐네요. 호환성도 좋고, 공구 종류도 다양한 편이고, 가성비도 비교적 만족스러워요.

여행을 가면 공구 상점 같은 곳에 들리는 편인가요?

시간이 되면 가보려고 해요. 국내에 없는 도구가 있으면 핸드 캐리가 가능한 범위에서 사 오기도 하고요. 줄자는 기념품처럼 사는 편이에요. 자주 사용하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소모품의 성질을 지녔거든요. 사용하다 보면 고장도 잘 나고, 앞부분이 휘어지면 못 쓰게 돼요. 그래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요.

사용해 본 줄자 중 마음에 드는 물건을 알려주세요.

‘페스툴Festool’이라는 독일 브랜드 줄자는 앞의 고정하는 부분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요. 그 자리에 연필을 넣어 줄자를 돌리면 컴퍼스처럼 원을 그릴 수 있어서 편리하답니다. 그래서 줄자보다 컴퍼스 용도로 자주 활용해요. ‘타지마Tajima’라는 브랜드에서 나온 줄자는 여러 개 사서 곳곳에 두고 작업용으로 잘 쓰고 있어요.

작업실을 살펴보니 여기저기에 연필이 굉장히 많아요.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르는 샤파 연필깎이도 있네요. 특별히 즐겨 사용하는 필기도구가 있을까요?

연필은 독일 브랜드 ‘스테들러STAEDTLER’의 노란색 제품을 가장 많이 사용해요. 생각해 보니 집에서도 스테들러의 ‘트리플러스 파인라이너triplus fineliner’ 펜을 쓰고 있네요. 노트는 문구점에서 가장 저렴한 제품을 여러 권 구입해요. 스케치뿐 아니라 메모도 해야 해서 항상 줄이 없는 디자인을 선택합니다.

평소 스케치를 즐기나요?

프로젝트를 위한 스케치뿐 아니라 수시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메모하듯 스케치해요. 나중에 살펴보면 좋은 영감의 도구가 되더라고요. 공동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다 같이 모여서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도 유용해요. 스케치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거든요. 그래서 연필과 연습장이 정말 많이 필요해요. 작업실에도 손 뻗으면 닿을 자리에 항상 연습장을 비치해 둬요. 학창 시절부터 크로키와 드로잉을 많이 했는데, 그때 단련한 기술이 지금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작업실 곳곳에 딱 봐도 세월이 느껴지는 물건들이 있어요. 대부분 개인 소장품인 듯 해요.

어릴 때부터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었어요. 일기나 그림, 무언가를 기록한 메모, 좋아하던 물건 등을 오랫동안 모았는데요. 부모님 댁에서 독립한 후로 본가에 갈 때마다 하나둘씩 가지고 왔죠. 초등학교 6학년 때 그린 포스터, ‘아이와AIWA’ 오디오 세트, 연필깎이 등을 작업실 여기저기에 두었어요. 제가 실제 사용한 것도 있지만, 산책 중에 발견한 물건도 많아요.

혹시 특별히 꾸준하게 수집하는 아이템이 있을까요?

무언가를 수집하는 행위 자체는 좋아하는데요. 아이템 하나만 굉장히 많이 모으거나, 고가의 희귀한 아이템을 가지는 일에 몰두하지는 않아요. 태엽 시계나 오래된 라디오를 좋아하지만, 개수가 많지는 않아요. 수집이라고 부르기엔 소소한 수준이죠. 게다가 집이나 작업실에 수집품을 놓을 공간도 한정되어 있으니, 집중과 선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수집품에 대한 판단 기준이 궁금해지네요. 어떤 물건에 매력을 느끼나요?

클래식한 형태와 디자인을 좋아해요. 지금은 과거의 디자인을 보고 ‘레트로’ 스타일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당시에는 그게 매우 클래식한 디자인이었을 거예요. 그런 물건의 형태와 가치를 살피면서 작업에 대한 영감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창작물의 일부로 삼기도 합니다. 얼마 전,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 중에도 예전에 수집했던 오래된 물건을 부착한 경우가 있었어요. 새롭고 현대적인 제품을 달아볼까, 고민도 해봤는데 역시나 마음에 썩 들지 않더라고요.

오래되고 버려진 물건에 새로운 의미와 역할을 부여하는 면모가 길종상가의 매력 같아요.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다 보면 동네를 자주, 천천히 걷게 되는데요. 두리번거리면서 주변을 살펴보다가 재미있는 물건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 흥미로운 풍경을 목격하면 사진을 찍거나 메모를 통해 기록으로 남겨두지요. 산책은 여전히 지금도 제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어요.

산책 중에 접한 물건이 작업으로 구현되는 경우도 있나요?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인 ‹전시 보행기›가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어요. 동네 할머니께서 작은 유모차를 끌고 다니시는데요. 그 위에 시계를 비롯해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을 달아놓으셨더라고요. 그 장면을 보고, 시계와 선풍기가 달린 스틸 소재의 보행기가 떠올랐어요. 길을 걷다 전문가가 아닌 어르신들이 대충 뚝딱뚝딱 만들거나 고친 물건을 바라보면 정말 기발하고 재미있어요.

지금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가요?

경기도어린이박물관 로비에 휴식을 겸한 벤치를 디자인하고 있어요. 들어서 옮길 수 있고, 함께 모이면 어린이 얼굴이 되는 디자인이에요. DDP에서 ‘비더비’와 함께하는 전시가 예정되어 있고요. 작년에 설계했던 카페 2호점 디자인도 준비 중입니다. 사이사이에 에르메스 디스플레이를 바꾸는 일도 빼놓지 말아야 하고요.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편인데, 마감 날짜가 서로 달라서 크게 힘들지는 않아요.

혹시 롤모델로 꼽을 만한 사람이 있다면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가구, 인테리어, 미술 등 여러 분야를 조금씩 다 건드리다 보니까, 지금의 저와 비슷한 길을 갔던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설사 비슷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서로가 추구하는 스타일이나 흥미를 느끼는 접점은 분명 다를 거예요. 그러니 저는 제 방식대로 산책하듯이 나아가려고 해요.

Artist

박길종(@parkgagong)은 2010년부터 ‘길종상가’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길종상가는 살아오면서 경험한 모든 것들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이나 인력, 그 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적절한 금액을 받고 운영하는 곳이다.

Editor

정윤주(@chungyunjoo)는 대학에서 실내 디자인을 전공하고 «메종 코리아» 인테리어 에디터와 «보그 걸» 피처 디렉터로 일했다. 영화 속 인테리어와 데코레이션에 주목한 책 『영화 속의 방』의 저자이며, 온라인 매거진 «디퍼 differ»의 디렉터 겸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EYES and EARS 디렉터로 다양한 매체에 인터뷰와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글을 기고한다. «엘르 데코 코리아», «로피시엘 옴므»의 객원 에디터이기도 하다.

Photographer

박영감(@khuss_goods)은 안산공고 전자과를 졸업한 후 취미이던 사진이 직업이 된 비전공자 사진 작가이다. 좋은 분위기에서 촬영한 사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진이라고 생각하며 좋은 분위기의 현장을 위해 노력한다.

Creator’s Room: 모스그래픽 석윤이의 작업실

Creator’s Room

Creator’s Room

창작자의 작업실을 방문해 공간, 일상과 창작을 위한 도구 그리고 소중한 오브제를 글과 이미지로 소개하는 독창적인 섹션입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그래픽 디자이너 석윤이입니다. 그래픽 디자인 회사 ‘모스그래픽mohsgraphic’, 그래픽을 바탕으로 다양한 아이템을 전개하는 브랜드 ‘모스mohs’를 함께 이끌고 있어요. 북 디자인을 비롯해 다양한 인쇄물, 로고 디자인, 아이덴티티와 브랜딩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이 아니라 서양화를 전공하셨어요. 

서양화를 전공할 때도 설치미술, 그래픽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당시 일러스트레이터나 포토샵을 가르치는 학원이 유행했는데요. 제 성격상 전업 작가를 하기보다 툴을 배우고 회사 생활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졸업 후 작은 광고회사를 2년 정도 다닌 후에 출판사 ‘열린책들’에 입사하게 됐죠. 열린책들에서도 제 전공보다 포트폴리오를 통해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신 것 같아요. 서양화를 공부하며 색을 어떻게 사용하고 조합할 때 아름다워지는지 기본적인 초석을 다진 것도 디자인을 할 때 도움이 많이 됐죠.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열린책들에서 1000여 권이 넘는 책을 디자인하셨죠.

좋은 책과 콘텐츠가 넘치는 세상에서 무척 행복한 시간을 보낸 시절이었어요. 초창기에는 제가 한 사람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에 불안했어요. 얼른 일을 손에 익혀 제 몫을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런 날이 지나며 어엿한 디자이너가 되고, 팀장이 되는 크고 작은 순간들이 제게는 모두 감동이었던 것 같아요. 북 디자인이 중심 업무였지만, 열린책들이란 회사에 출판사뿐 아니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미메시스 디자인 등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와 관련한 도록, 굿즈, 문구류 등 다채로운 영역을 폭넓게 디자인해 볼 수 있었어요. 그때 경험이 지금 모스를 이끄는 데 유용한 바탕이 되었죠.

깊고 화사한 컬러를 조합한 ‘석윤이 표’ 책은 다른 책들 사이에서 단번에 눈에 띄곤 했어요.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만 하더라도 출판물에 사용하는 색상이 다양하지 않았고, 은유적인 표현도 드물었어요. 책의 내용이 슬프면 표지 디자인도 슬픈 분위기로 표현했죠. 다른 방식을 고민하던 차에 마침 회사 대표님도 컬러를 더 밝게 써보라고 하셔서 제가 좋아하는 컬러를 용기 있게 많이 시도해 볼 수 있었어요. 지금은 업계 전반에 컬러와 디자인을 사용하는 폭이 많이 넓어진 것 같아요.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

독립을 생각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사실 제가 그만둘 때는 직장생활이 평탄했어요. 일하는 재미도 알고, 그 흐름을 적당히 조절할 수 있는 연차였거든요. 오히려 퇴사했을 때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상황이었죠. 그럼에도 퇴사를 선택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딸아이를 돌보던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으셨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결정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죠. ‘과연 독립해서 일할 수 있을까? 누가 내게 일을 맡길까?’란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만두려고 하니까 퇴사하던 날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독립한 지 벌써 5년이 흘렀어요. 지금 생각하면 성공적인 선택이라고 보시나요?

그럼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잘 흘러왔죠. 제가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열린책들에서 함께 일하다 다른 출판사로 간 편집자들이 연락을 많이 줬어요. ‘내가 허투루 살지는 않았구나’ 싶었죠. (웃음) 그렇게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많이 하면서 모스그래픽이 조금씩 안정될 무렵에 오랫동안 생각했던 브랜드를 전개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때가 2021년이었죠.

지금까지의 작업 중 대표작으로 꼽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등으로 많은 분이 제 이름을 기억하시는데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현대 문학 모음인 『블루 컬렉션』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프랑스 국기 속 청색을 베이스로 다양한 이미지를 조합하는 작업은 제가 원한 디자인을 회사에서 전적으로 수용해 준 경우여서 ‘하고 싶은 거 다했다’는 기분이 들었죠. 모스그래픽의 대표작으로는 국내 두 번째로 생긴 애플 스토어인 ‘애플 여의도’ 로고, 모스의 대표작은 48가지 화사한 패턴 그래픽이 눈을 사로잡는 ‘포스트박스 카드-블루 잉크Postbox Card-BLUE INK’를 꼽고 싶어요. 애플 여의도 로고는 모스그래픽의 초창기 작업인데요. 웹과 인쇄물, 영상 간의 조화를 생각하며 디자인한 부분이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모스의 포스트박스 카드는 택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안부나 감사를 전하자는 의도를 담은 브랜드의 시그니처 아이템이에요. 카드 속 컬러와 그래픽도 시즌마다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죠.

‹블루 컬렉션›, 열린책들

애플 여의도점 로고 디자인, 모스그래픽

회사와 브랜드 이름에 쓰인 모스는 어떤 뜻인가요?

모스의 영문 스펠링이 ‘Mohs’잖아요. 이걸 뒤집으면 ‘Show’가 돼요. 제 작업이 대부분 어떤 내용을 통해 제가 느낀 감정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보여주거든요. 그래서 브랜드 이름도 직관적으로 지었어요. (웃음) 

모스그래픽만으로도 충분히 바쁠 텐데, 자체 브랜드인 모스를 시작한 계기가 있을까요?

모스는 전적으로 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용하고 싶어서 시작한 경우예요. 이게 모이면 저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하나의 포트폴리오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죠. 문구류나 리빙 아이템에서 컬러가 눈에 띄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금세 입소문을 탔어요. 국내외 편집숍에서 입점과 팝업 스토어 제의도 자주 받고 있고요. 아직은 모스가 추구하는 방향이나 목표를 명확하게 잡고 있지는 않아요. 브랜드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천천히 확장하며 앞으로 나아갈 생각입니다.

혹시 모스그래픽과 모스를 병행할 때 힘들진 않으세요?

클라이언트 잡과 개인 브랜드를 병행하는 형태는 오히려 제 성격에 잘 맞는 것 같아요. 북 디자인은 오롯이 혼자 집중하고 연구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요. 반면 브랜드 일은 여러 사람과 소통해야 하고 외부 브랜드와의 협업도 잦죠. 일하는 과정과 스타일이 워낙 다르다 보니 한쪽에서 소진한 에너지를 다른 한쪽에서 채우는 기분이 들어요. 

지금 계신 작업실은 언제부터 사용하셨나요?

독립 초기에는 작업실 없이 집에서 일했어요. 모스그래픽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동행 중인 정아영 디자이너도 저희 집에 와서 함께 일했죠. 그러다 외부 업무가 점점 많아지고, 인턴이 일할 공간과 제품 재고를 위한 창고가 필요해지면서 결국 작업실을 알아보게 됐어요. 

작업실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었나요?

가장 중요한 1순위는 집과의 거리였어요. 무조건 가까워야 했죠. 그래서 집에서 도보로 10분 내외로 걸리는 장소를 중점적으로 살폈는데요. 당시 소형 사무실과 오피스텔을 겸하는 건물이 새로 들어서는 걸 보고 바로 계약했어요. 별도의 수도 설비 공사를 하지 않아도 되고, 입주자가 지하 창고를 사용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었고요. 덕분에 사무실을 더 깨끗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단점으로 꼽을 만한 아쉬운 점은 무엇일까요?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정말 하나도 없어요. 모든 점이 만족스러워요. 굳이 말하자면, 예전에는 창밖 너머로 저 멀리 한강이 보였는데요. 앞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서 그 뷰가 가려졌어요. 언젠가는 한강 뷰의 작업실로 이사 갈 날이 오겠지 생각 중이랍니다.

작업실에 다양한 가구가 있어요. 어떻게 구성하셨어요?

책상과 의자는 집에서 사용하던 걸 고스란히 갖고 왔어요. 책상은 리차드 램퍼트Richard Lampert가 디자인한 ‘아이어만 2 테이블Eiermann 2 Table’이고, 의자는 허먼 밀러Herman Miller의 ‘에어론Aeron’ 체어입니다. 테이블 위의 스탠드 램프는 각자 디자인이 다르지만, 브랜드는 모두 아르테미데Artemide예요. 입구에 있는 찰스 앤 레이 임스Charles & Ray Eames의 ‘FSW-6’ 스크린은 빈티지 숍에서 구입했죠.

가구나 제품을 선택할 때의 기준이 궁금해요.

저는 가격이 조금 높더라도 디자인과 품질이 좋은 제품을 사서 오래 쓰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위시 리스트를 작성한 후에도 제품을 선택할 때 꽤 오랫동안 고민하는 편입니다. 에어론 체어만 하더라도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까 우선 1개만 사서 얼마나 편한지 검증을 끝내고 1개를 더 구입했어요. 브랜드의 경우, 비트라나 허먼 밀러처럼 역사 있는 브랜드를 선호해요. 제품이 지닌 디자인적 가치도 생각하고요. 가구는 워낙 오래전부터 관심을 두던 분야라서 시간이 날 때마다 마음에 드는 가게나 웹사이트를 드나들면서 트렌드와 변화를 확인해요.

싱크대도 남달라 보여요. 하부 장에 작은 냉장고가 빌트인되어 있네요.

맞아요. 보신 것처럼 냉장고를 싱크대 속에 잘 숨기는 게 저희의 중요한 디자인 조건 중 하나였답니다. ‘MMK(Museum of Modern Kitchen)’에서 주문 제작했는데요. 커피를 마시거나 손을 씻는 정도로 간단한 부엌이 필요했는데 이왕이면 모스의 테이블웨어 촬영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감각적인 디자인이면 좋겠다 싶었어요. 싱크대의 세 면마다 다른 컬러를 조합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아이디어를 공유한 끝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죠.

쭉 둘러보니 스틸 소재가 눈에 자주 들어오는 느낌이에요.

스틸 소재가 주는 차가운 느낌을 좋아해요. 그래서 책상다리도 스틸 소재로 골랐어요. 벽 쪽의 철제 수납장은 무인양품에서 구입했는데 위아래로 무한 확장이 가능하고 디자인도 깔끔해요. 책상 사이에 있는 철제 장은 ‘공간의 기호들’로 활동하는 김기석 디자이너의 작품이에요. SNS에서 보고 마음에 쏙 들었는데 실물을 확인하고 구입하기엔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우선 작은 사이즈로 주문해 봤죠. 구성도 실용적이고, 마감도 만족스러워요.

작업실이 화사한 색으로 가득할 것 같았는데, 정작 무채색 느낌이 강한 게 흥미로워요.

디자인 작업을 할 때 말고는 사실 무채색을 더 선호해요. 특히 옷이나 가구 등을 고를 때요. 작업실에 배치한 가구 중 컬러를 강조한 물건은 빈티지 사이트에서 구매한 발레리 오브젝트Valerie Objects의 플로어 램프, MMK의 그린 체어, 키오스크48th의 리사이클링 블루 플라스틱 스툴 정도인 것 같아요.

작업실에서 어떻게 하루를 보내세요?

평범한 직장인과 비슷한 일정이에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커피 마시고 일하다가 점심 먹고 들어와서 저녁 6시까지 쭉 일하죠. 가끔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려고 중간에 나갔다 오기도 하고요. 야근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작업실에서의 시간 대부분을 책상에서 보내실 것 같아요. 책상 주변에는 주로 어떤 물건을 두나요?

책상에 물건을 많이 펼쳐 놓는 편이 아니라서 펜 케이스, 노트 정도만 두고 지내는데요. 대부분 굉장히 오래 사용했어요. 자작나무 펜 케이스만 하더라도 열린책들에 있을 때부터 갖고 있었거든요. 펜도 한번 구입하면 끝까지 써요. 무언가 잘 잃어버리지도, 버리지도 않고, 전반적으로 물건을 바꾸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딱히 뭔가를 모으거나 수집하는 일에 열정도 없고요. 이런 걸 보면 제게 컬렉터 기질은 없는 것 같아요. (웃음)

책상 위에 역시 모스의 노트가 몇 권 놓여 있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품이 노트예요. 그래서 모스를 시작할 때 다양한 디자인의 노트부터 넉넉하게 만들었죠. 평소에 떠오르는 영감이나 해야 할 일을 노트에 많이 낙서해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브레인스토밍 단계에서 살펴보면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있어요. 옛날부터 사용한 노트와 다이어리도 여전히 모두 보관 중이랍니다. 제 일상이 전부 담겨 있어서 시간이 지났을 때 보면 마치 하나의 일기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모스의 아이템은 앞으로 얼마나 확장될까요?

다양한 사이즈와 내지로 만든 노트, 다이어리, 플래너, 메모지 등의 지류 아이템은 지금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퀄리티도 생각해야 하고 저희가 감당할 수 있는 업무량에 맞춰서 신중하게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싶어요. 에코백, 쿠션 커버, 러그, 코스터, 피크닉 매트 등 패브릭 분야에 도전해 봤는데 꽤 재미있었어요. 모스의 이름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각보다 활짝 열려있다고 느껴요.

작업실을 둘러보니 아직 출시되지 않은 모스 아이템이 있는 것 같아요.

가장 최근 출시한 유리컵은 작업실에서 정말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앞으로 출시 예정인 코튼과 니트 패브릭 쿠션 커버는 샘플을 만들어 직접 써보는 중이고요. 보냉 백도 내년에 선보일 예정이랍니다. 다른 브랜드와 협업해 타월도 준비하고 있어요. 모스그래픽 작업도 해야 해서 모스에 마냥 집중할 수 없으니, 제품이 나오는 일정을 저희도 짐작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시간 분배를 잘하려고 늘 노력 중입니다.

책장에는 직접 디자인한 책 외에도 많은 책이 꽂혀 있네요. 어떤 책을 주로 보세요?

북 디자인을 할 때는 책의 원고도 꼼꼼하게 다 봐야만 해요. 활자 위주의 책은 작업 중에 많이 읽어서 저를 위한 책을 구비할 때는 인테리어 서적이나 화집을 사게 돼요. 눈을 잠시 쉬게 놔두면서 영감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트북에서 컬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벨기에 출판사 러스터Luster에서 출간하는 디자이너와 인테리어 관련 하드 커버 북은 나라 별로 소장할 만큼 좋아해요. 자주 봐서 표지가 너덜너덜해졌지요. (웃음) 집 주인이 사용하는 소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여행을 자주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리 만족도 되더라고요.

사무실 한쪽에는 식물이 많이 모여있어요. 꼭 식물 가게 같아요.

사실 집에서 일하던 3년간 무수히 많은 식물과 작별 인사를 나눴어요. 그래서 이 작업실에서만큼은 식물을 잘 길러보자고 마음먹었는데,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성공입니다. 하루 종일 모니터만 봐야 하는 직업 때문인지, 녹색 식물이 있으면 공간과 시선을 환기하는 기분이 들어요.

미니멀한 스피커 시스템도 눈을 사로잡네요.

아, 스피커는 방송 엔지니어로 일하셨던 아버지가 직접 만드신 거예요. 퇴직 후 취미 삼아 커스텀 오디오 시스템을 제작하시거든요. 음악에 관심이 많은 지인들이 종종 주문하기도 해요. 저희 작업실에도 한 세트를 가져다 놓았는데, 일과가 워낙 바쁘다 보니 자주 듣지는 못해요.

이곳에서 가장 남다르게 생각하는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작업실 중앙에 놓은 ‘텍타TECTA’의 블랙 테이블은 가장 최근에 구입한 아이템이에요. 가격이 높아서 고민을 엄청나게 했어요. 정말 오랜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온갖 시뮬레이션을 거친 후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죠. 여기서 회의하고, 점심도 먹고, 간단한 촬영도 하면서 투자 비용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잘 사용하고 있답니다.

작업실에 추가하고 싶은 오브제를 알려주세요.

장식적인 기준이라면, 사실 지금으로서는 없는 것 같아요. 최적의 동선에 따라 딱 필요한 아이템만 적절한 위치에 놓았거든요. 만약 추가하고 싶은 오브제가 생긴다면 다시 마음속 위시 리스트를 확인하며 고민의 시간이 시작될 거예요. (웃음)

가장 이른 시일 안에 구입할 아이템을 꼽아본다면요?

아마도 컴퓨터가 매우 유력합니다. 독립 후 구입한 아이맥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요. 쉼 없이 계속 돌리다 보니 곧 수명을 다할 것 같아요. 함께 해온 세월을 생각하면 왠지 동료 같고 마음이 짠해요. 모스그래픽의 역사를 함께 만들며 많은 언덕과 터널을 넘어온 동반자인 셈이죠.

Artist

석윤이(@sukyoony)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다양한 책을 비롯한 아이템을 디자인했다. 1000권이 넘는 책을 통해 국내 북 디자인의 새로운 방향과 시선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 출간한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로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 그래픽 부문 위너와 ‘2016 올해의 출판인상’ 디자인 부문을 수상했다. 2018년 독립해 모스그래픽을 시작했고, 2021년 자체 브랜드인 모스를 선보이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Editor

정윤주(@chungyunjoo)는 대학에서 실내 디자인을 전공하고 «메종 코리아» 인테리어 에디터와 «보그 걸» 피처 디렉터로 일했다. 영화 속 인테리어와 데코레이션에 주목한 책 『영화 속의 방』의 저자이며, 온라인 매거진 «디퍼differ»의 디렉터 겸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프리랜스 에디터이자 EYES and EARS 디렉터로 다양한 매체에 인터뷰와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글을 기고한다. «엘르 데코 코리아», «로피시엘 옴므»의 객원 에디터이기도 하다.

Photographer

박도현(@dhyvnpark)은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사진 기술자다. 렌즈 기반의 ‘좋은 이미지’ 제작을 지향한다.

Creator’s Room: 서윤정 회사 서윤정의 작업실

Creator’s Room

Creator’s Room

창작자의 작업실을 방문해 공간, 일상과 창작을 위한 도구 그리고 소중한 오브제를 글과 이미지로 소개하는 독창적인 섹션입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작가 서윤정입니다. 개인 레이블인 ‘서윤정 회사’를 운영하며 저만의 드로잉을 캔버스와 일상 사물에 녹여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시카고와 런던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하셨어요.

순수 미술은 경험할 수 있는 범위가 굉장히 넓은 학문이에요. 게다가 제가 수학한 학교들은 모두 작업의 도구와 영역이 자유롭게 열린 곳이었어요. 전공은 정해져 있지만 페인팅, 그래픽, 조각 등 여러 분야를 자유롭게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죠.

그런 자유로움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저는 이것저것 다 해보려는 타입이 아니어서 크게 혼란스럽지는 않았어요. 꾸준히 페인팅과 드로잉을 하며 그 속에 푹 빠져 지냈죠. 좋아하는 게 명확했고, 작업하는 것도 재미있어서 딴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Painting on Painting›, 2015, Acrylic on panel

시카고에서 런던으로 가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간다는 건 고민의 여지가 없었어요. 다만 어느 도시에 갈지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우연한 기회에 런던을 선택하게 됐고, 거기서 생활하며 삶에 대한 시야가 좀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시카고에서는 집과 학교만 오갔는데, 런던에서는 이곳저곳 다니면서 도시와 사람들에 대해 많이 즐기고 경험했거든요.

순수 페인팅 작업을 하면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아이템에 드로잉을 접목하는 일도 병행하고 있어요. 캔버스라는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런던에서 여러 방식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을 많이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 같아요. ‘내가 반드시 어떤 영역을 정하고 시작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죠.

‹Two boxes of painting›, 2018, Acrylic on panel

‘서윤정 회사’라는 브랜드 이름이 무척 독특한데요.

제가 하는 모든 작업은 제 이름이 가장 잘 대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름 뒤에 회사를 붙인 이유는 사실 단순해요.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딛던 때라 회사라는 단어 자체가 멋지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번듯한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웃음)

지금까지의 작업 중 대표작을 꼽아보면 어떨까요?

2016년 작업한 ‹수영장에서 그린 그림(Painting from Large Bath)›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런던에서 사용하던 작업실이 과거에 수영장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매우 높은 유리 천장에서 강한 빛이 쏟아지곤 했는데, 누군가 수영을 즐기던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죠. 같은 해에 완성한 ‹A Package›는 석사 졸업 전시를 위해 준비했던 작업이에요. 제게 주어진 공간 전체를 하나의 페인팅으로 만들고 관람자가 능동적으로 그림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죠. 작년에 작업한 ‹홈메이드 별장(Homemade Villa)›은 초록색의 테니스 코트와 핑크빛 타일의 수영장이 있는 공간을 상상하며 그렸어요.

‹수영장에서 그린 그림 (Painting from Large Bath)›, 2016, Acrylic on panel, 35 x 35cm

‹A Package›, 2016

‹홈메이드 별장 (Homemade Villa)›, 2022, Acrylic on canvas, 23 x 16cm

작업할 때 영감을 받거나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집에 대한 기억들이요.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았던 집들은 물론이고 여행에서 머물렀던 공간이나 유학 시절 지내던 방과 근처 동네들까지 제게 오랫동안 깊은 영감을 주고 있어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을 떠나 나만의 집을 구축했을 때,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작업 요소로 집을 주목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외동인 데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어릴 적부터 혼자 집에서 지낸 시간이 많았어요. 그 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려고 나름대로 여러 가지 놀이를 개발했죠. 집도 꾸미고, 그림도 그리고, 나만의 작은 아지트도 설계하면서요. 그때부터 집은 제게 살아가는 곳, 그 이상의 창조적인 공간으로 다가왔어요.

지금까지 경험한 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궁금해요.

런던에서 살았던 작은 플랏이 가장 많이 생각나요. 이스트 런던의 런던 필즈라는 동네에 있는 원 베드룸 플랏이었어요. 2층이었는데 큰 창으로 빛이 아주 예쁘게 스며드는 곳이었죠.

인터뷰 질문

이번 전시를 위해 포터블 하우스처럼 작은 집들을 만들고 있어요. 수영장도 있고, 정원도 있죠. 딸이 플레이모빌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작은 플레이모빌 하우스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어요.

지금 지내는 작업실은 언제 들어오셨어요?

2016년에 귀국하고 2017년 한 해 동안 한남동에 있는 작은 작업실을 사용했어요. 그 후에 이곳을 알게 됐죠. 1년 정도 공사한 후 2018년부터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어요.

원래 삼청동을 염두에 두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