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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그런 사소한 우리들의 사는 모습

Writer: 서민지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디지털 작업과 캔버스 작업을 병행하는 서민지 작가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답니다. 일상에서 포착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사소하지만 생각해봄 직한 모습들을 콕 잡아내요. 그림 그리는 것이 곧 낙원과 같다고 생각하는 그는 자기암시를 통해 자신의 힘으로만 가꿀 수 있는 작업 세계의 귀중함을 이미 깨달아버린 것 같아요. 솔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꾸준히 작업하는 서민지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티클에서 확인해볼까요?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 서민지입니다. 저는 사람을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주로 아이패드와 캔버스를 왔다 갔다 하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 만들고 그리는 일을 좋아했어요. 그런 성향 덕분에 미대에 진학하고 싶어졌고, 그 이후에는 내 그림을 그리고 싶게 되었죠.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저는 특별히 작업실이 없고,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서 작업을 해요. 아무래도 캔버스와 디지털 작업을 병행하다 보니 물감, 기름, 휴지, 붓으로 책상을 어지럽히는 경우가 있는데요. 아이패드로 작업할 때면 유화 냄새가 거슬리고 지저분한 책상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책상을 정리하고 깔끔한 상태로 작업에 들어간답니다. 물론 금방 또 지저분해지긴 하지만요…! 정적인 분위기보다 항상 뭔가 들리는 환경이 좋아서 영화, 드라마, 시트콤 류를 틀어놓고 작업에 들어가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일상에서 얻습니다. 돌아다니며 관찰한 것, 스스로 이해하기 힘든 제 모순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거기서 느끼는 유머가 있어요. 그런 지점이 뭔가를 자꾸 그리고 싶게 해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저는 그리고 싶은 게 떠오르면 바로 작업에 들어가는 편이에요. 스케치를 잘 하지 않죠. 특히 디지털 작업은 수정하기가 용이한데요. 그래서 중간중간 화면이 계속 변하는 걸 지켜보는 게 재미있어요. 작업을 진행하면서 처음에 생각하지 못하던 걸 추가하거나 없애거나 하는 그런 과정이 지루함을 없애주는 느낌이죠. 또 처음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부분도 신선하게 다가오고요. 그래서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하기보단 얼추 떠오르는 이미지로만 바로 작업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구체화하는 과정을 즐깁니다.

작가님의 최근 작업들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엘리베이터 1, 2, 3›은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과 그 안의 낯선 사람이 흥미로워서 그려본 작업이에요. 저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 구석부터 찾아서 자리를 잡는 스타일이라서 더 그런지 모르겠는데, 보통 사람들도 다들 모서리부터 자리하는 것 같더라고요. 괜히 숫자 버튼을 바라본다든가, 층이 바뀌는 보거나, 각자 벽에 비치는 본인 얼굴만 바라보는데 유일하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는 강아지와 그런 강아지에게만 유일하게 시선을 주는 사람들의 풍경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결론이 나진 않지만, 그냥 그런 사소한 우리들의 사는 모습이 제 그림에서 보였으면 좋겠어요.

‹왠지 오늘 마음에 들어›는 지하철에서 대놓고 셀카를 찍는 게 신경 쓰이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는 여자의 모습을 담았어요. 제 그림에는 핸드폰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예를 들어 단체 사진을 찍고 나서 다들 각자의 얼굴만 확대해서 보느라 남의 얼굴에는 큰 관심이 없다든지, 왠지 셀카에 관심 없을 것 같은 사람도 핸드폰 앨범에 예쁘게 표정 지은 셀카 한 장 정도는 있다든지, 하는 그런 ‘자기애’가 귀여워요. 사람에게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아무래도 제 그림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어요. 결국 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그림으로 이어지는 것 같고요. 더불어 그들은 저 스스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작가님이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사실 저는 뚜렷한 목적이나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특별히 있다기보단, 제 작업이 자연스럽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더불어 요즘은 묘사나 디테일에 몰두하고 있어요.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이건 질문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 디지털 작업은 수정과 편집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런 점이 만족스럽고,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죠. 화면을 구성하는 재미가 좀 더 크달까요? 그렇지만 이 작업을 누군가와 공유할 때 문제가 생겨요. 모니터마다 색감도 조금씩 다르고요. 요즘 사람들이 스마트폰 위주로 디지털 작업을 접하는 걸 염두에 두면 전체 이미지 크기가 굉장히 작아지죠. 디테일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관람자의 시선이 아니라 저의 시선에서 제가 직접 확대하고 크롭을 해서 보여줘야 해요. 인쇄할 때 화면상의 색상이 절대 똑같이 나오기 어렵죠. 결국 직접 물감을 사용해 만들어낸 절대적인 이미지가 아니라는 점이 아쉬워지는 부분이 있죠. 반면 캔버스 작업은 물감이 쌓이는 과정이 그대로 화면에 남고 어떤 절대적인 무언가를 직접 만든다는 점에서는 참 좋지만, 한편으로 디지털 작업처럼 즉각적으로 화면을 바꿀 수 있지 않아서 아무래도 화면 구성을 할 때 처음부터 정하고 들어가야 해요. 작업을 하다가 캔버스의 사이즈, 비율과 화면 속 구성이 썩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있어도 고칠 수가 없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디지털 작업보다 재미가 떨어지죠. 이런 장단점들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크게 다가오는 게 고민입니다. 둘 중 하나를 꼭 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매체를 시도할 수도 있지만 현재는 이런 생각이 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다 보니 괜히 혼자 스트레스를 받아요.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저 같은 경우, 전에 벌어놨던 돈으로 생활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시간이 굉장히 여유롭죠. 자연스럽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패턴을 갖게 됐어요. 최근에는 건강을 위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 중입니다. 알람이 울리면 일단 거실로 나와서 뭉친 어깨랑 목을 마사지하며 자연스럽게 잠이 깨기를 기다려요. 그리고선 방에 돌아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사실 뭔가 지원하거나 그림보다 먼저 해야 하는 일이 가끔 생기는데요.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걸 먼저 하게 되니까 해야 할 건 최대한 미루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먼저 그리게 되네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상황에서 가끔 산책이나 장으로 보러 밖에 나가거나 친구들을 만날 때 외출하며 사람들을 구경하곤 해요. 그 외에 주로 뭔가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하고요. 제 생각에 저는 이미지 중독인 것 같아요. 일단 눈으로 뭔가를 보고 있어야 안심이 된달까요. 끊임없이 뭔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고정된 이미지와 움직이는 이미지 모두요.

요즘 작가님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삶의 균형을 찾고 싶습니다. 인생에 정답이 없고 영원한 게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 스스로 뭔가를 정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주위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들을 보면 괜히 사회에서 바라보는 ‘나’에 대한 생각이 깊어져서요. 정신적으로도 제 중심을 더 단단히 찾아야 할 것 같고, 일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서도 균형을 찾고 싶죠. 올해 목표이자 현재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서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가 보는 것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하다 보니 제 일상과 무척 닿아있어요. 저는 사람한테도 관심이 많고, 삶아가는 삶 그 자체에도 관심뿐 아니라 궁금증이 엄청나요. 조금 멀리 나가면 ‘과연 내가 눈으로 보는 세상이 전부일까? 내가 이해하는 세상의 전부일까’ 생각하며 영혼의 존재 문제까지 나아가거든요. 이런 제 생각을 글로 푸는 것과 그림으로 전달하는 일도 어렵게 다가와요. 하나의 그림으로 무언가를 전달하기보단 제 그림이 쌓이고 모여서 바라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가끔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내가 지금 정말 즐기고 있는 걸까? 꾸역꾸역 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제가 그림이 좋아서 그림을 그리는 건지, 그냥 작가가 되고 싶은 건지 헷갈린답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땐 손이 멈추고 고민하면 점점 더 작업이 어렵게 다가와요. 그래서 고민이 끝나지 않아도 일단은 손을 계속 움직이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면 제가 만든 이미지에 혼자 놀락, 앞으로 뭐든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요. 결국 한없이 작아졌다가 다시 비대해지기를 반복하는 자아의 끝나지 않는 반복 운동 같아요. (웃음)

최근 들어 작가님에게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다시 경제적 수단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온 것. 이를 위해 생각도, 따지는 것도 많아지다 보니 가만히 보내는 시간 또한 많아지는 것입니다.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어쨌든 내 길을 걷고 있구나’ 하고 느끼는 거예요. 요즘은 특히나 여기저기서 다른 사람의 성과를 금방 파악할 수 있어서 자칫하면 작업을 하는 데 조급함을 느끼고 서두르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 마음에 깊이 빠지지 않고, 중심을 잡아,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길을 걷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느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시겠어요?

저는 자기암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인터넷에서 ‘사람을 낙원으로 삼으면 안 된다. 지속가능한 낙원을 가꾸어야 한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저한테는 그림이 그 낙원이에요. 이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고, 여기저기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러면 안 된다, 말들이 많지만 흔들리지 않고 유일하게 저 자신의 힘으로만 가꿀 수 있는 세상이 있다고 믿으면 제 삶이 풍족해집니다. 조급해지면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길게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갈 길을 가는 게 저한테는 현재 제 작업을 계속 지속하게 합니다.

작가님은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이런 질문이 가장 어렵게 다가와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 사람 매력적인 작업을 하네. 다른 작업 더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현재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현실적으로는 그림만 그려도 되는 상황이요. 지금은 경제적으로 불안하니까 계속 머리 한구석에서는 돈벌이 수단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면 짬을 내어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우선순위에 혼란이 올 것 같아요. 작업 면으로는 꾸준히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동시에 ‘나다움’을 잃지 않고요.

Artist

서민지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연민과 애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주로 일상에서 소재를 얻어 작업하며, 전시로는 개인전 «31.5세의 방학»(2020, 갤러리 아노브)와 그룹전 «magic hour»(2021, 유영공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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