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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문스와치, 최신형 시대정신

Writer: 박찬용
스피드마스터, 스와치, omega, swatch, moonswatch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오메가와 스와치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는 브랜드가 있죠. 박찬용의 브랜드 리포트 이달의 주제는문스와치입니다. 달에 착륙한 최초의 시계였던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의 디자인을 가져다가 바이오세라믹 재질로 만든 제품인데요. 보급형 고급 디자인 시계라는 매력 두 가지 장점을 한 번에 잡았어요! 문스와치 열풍에 대한 박찬용 작가의 리포트를 아래에서 읽어보세요!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딛었다. 그를 뒤따른 버즈 올드린의
손목에는 시계가 감겨 있었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이었다. 닐 암스트롱이 “한 인간에겐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겐 위대한 도약이다.”라고 말할 때 스위스 산골의 오메가 직원들도 불멸의
마케팅 이벤트를 손에 넣은 거나 다름없었다.

스피드마스터는 오메가의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다. 크로노그래프는 요즘 말로 스톱 워치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NASA가 비밀리에 진행한 우주용 시계 테스트에 유일하게 합격했다. NASA 테스트는
우주 수준으로 가혹했다. 고온, 저온, 습기, 진동, 압력 등 총 11항목 테스트가 진행됐다. 경쟁사였던
롤렉스의 무브먼트가 망가지고 론진의 유리가 떨어져 나가는 동안 오메가 시계는 작동했다. 오메가가
달 탐사 팀의 일원이 된 유일한 비결은 성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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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otry in HD, 닐 암스트롱이 찍은 버즈 올드린의 모습

‘문스와치MoonSwatch’는 이런 전설 위에서 태어난 시계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널, 즉
‘문워치Moonwatch’는 출시된 그때 이후 아직도 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어지고 세부 스펙도 거의
비슷하다. 문스와치는 이 시계의 디자인을 이식한 스와치 시계다. 건전지로 움직이는 ‘쿼츠
무브먼트quartz movement’를 바이오세라믹 케이스에 이식했다. 오메가 디자인에 스와치의 몸이니
아무래도 오메가보다는 저렴하다. 색도 다양해서 나오자마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어쩌면 뉴스에서
소식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문스와치를 뉴스에서 본 당신은 이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관심도 없을 것이다. 문스와치를 구경하고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러 과정 끝에 오메가 스피드마스터가 문 워치가
되었으나 맥락을 따라가기엔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간다. 최적화된 소비정보만 남는다. 스와치와
오메가 콜라보레이션으로 문스와치 발매. 태양계의 11행성에서 따온 11개의 컬러웨이. 가격은 33만원.
리셀 가격 수백만원까지 폭등. 그걸 사야 돼 말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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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atch

© Swatch

사는 건 개인 자유다. 다만 스펙을 살필 수는 있다. 시계의 엔진 역할을 하는 무브먼트로 시계의 스펙과
원가를 가늠한다. 문스와치의 무브먼트는 아직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시계 애호가 커뮤니티는
ETA의 G10.212일 거라 추정한다. 건전지로 움직이는 쿼츠 무브먼트, 가격은 50달러 내외, 현재 환율
기준 한화 6만원 정도다. 케이스 소재는 스와치가 개발한 신소재 바이오세라믹이다. 1/3 생분해성
플라스틱 + 2/3 산화지르코늄으로 구성됐다고 하니 신소재여도 원가가 비싸지는 않다. 스트랩은 시계
스트랩 중 가장 저렴한 패브릭 스트랩이다. 이 제품 가격이 33만원이면 마진이 꽤 훌륭할 것 같다.

문스와치와 문 워치의 근본적 차이는 이런 게 아니라 개념이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를 문워치로 만든
건 오메가의 압도적인 내구성과 정확성이다. 문스와치에는 그 내구성이 없다. 손목시계의 대표적인
내구성 지표는 방수 성능이다. 압력에서의 강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스와치 공식 홈페이지에 적힌
문스와치의 방수 성능은 3bar. 사전적으로는 30m 방수 가능이지만 실제로는 손 씻기 가능 정도의 방수
성능이다. 개념적으로 문스와치는 문워치 디자인을 얇게 떠서 스와치의 쿼츠 시계에 얹은 거라 볼 수
있다.

디자인을 얇게 떠서 쿼츠 시계에 올린다는 건 문워치가 아닌 스와치의 본질이다. 스와치 자체가 그렇게
시작한 회사다. 스와치는 저렴한 쿼츠 시계에 ‘스위스 메이드’의 이미지와 디자인과 최소한의 성능을
얇게 올린 브랜드다. 스와치의 첫 시계이자 여전한 디자인 아이콘인 ‘원스 어게인’부터 그랬다. 내
생각엔 오메가 문워치보다 스와치 원스 어게인이 디자인 역사와 스위스 시계 역사에서 훨씬 중요하다.
문워치가 스위스 시계의 지난 영광을 상징한다면 원스 어게인은 스위스 시계의 재도약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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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atch, 문스와치의 디자인 원형이 되는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프로페셔녈(위)와 스와치에서 출시한 문스와치(아래)의 모습

스와치가 위기의 스위스 시계를 살렸다. 스위스는 특유의 고부가가치 정밀기술로 전 세계 손목시계
시장을 석권했으나 1970년대에 모든 게 변했다. 일본의 세이코가 쿼츠 무브먼트를 대중화시켰다. 쿼츠
무브먼트는 건전지를 쓰는 지금의 손목시계 엔진이다. 기계식 시계보다 저렴하고 정확해서, 스위스의
기계식 시계는 마치 오늘날 전기차를 상대하는 디젤 엔진처럼 붕괴했다. 스위스 시계 시장규모가 70%
축소되어 이 나라를 대표하는 시계 공업 기술이 와해될 수준이었다. 스와치는 그런 상황에 만들어져
‘저렴한 스위스 시계’ 캐릭터로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었다.

스와치는 여러 모로 시대의 산물이었다. 숙련공의 시대에서 디자이너의 시대로,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의 시대로 넘어갔음을 뜻하는 물건이었다. 스와치를 만든 니콜라스 G. 하이에크는
컨설턴트 출신이라 컨설턴트 마인드로 시계 시장을 분석했다. 저가 시계군에서 스위스 시계 점유율이
낮으니 그걸 높이자는 전략으로 스와치를 출시했다. 스와치의 창업 자금은 스위스의 금융자본세력인
은행가들로부터 왔다. 스와치의 인기로 현금이 생기자 하이에크는 전통적 시계 브랜드를 인수했다.
티쏘와 오메가를 거쳐 브레게까지. 이 많은 시계 브랜드를 가진 그룹사의 이름이 ‘스와치 그룹’인
이유고, 오메가와 스와치의 협업이 가능한 근거다. 둘은 같은 그룹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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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G. 하이에크

문스와치도 시대의 산물이다. 오메가는 스와치에게 자사 대표 모델 디자인을 IP(지적재산권)처럼
제공한 셈이다. 현대의 각종 디자인 상징은 IP처럼 활용되고 변형되어 수많은 협업 상품에 들어간다.
이미 많은 고급 시계 브랜드가 자사 디자인을 IP처럼 활용한다. 롤렉스 서브마리너, 파텍 필립
칼라트라바, 카르티에 탱크. 많은 시계 브랜드가 자사 아이콘들을 계속 출시한다. 수십 년 전 그 시계와
현행 시계들은 사실상 모든 게 다르다. 무브먼트의 성능부터 다이얼의 정밀도와 인쇄 방식까지. 디자인
요소가 같으니 같아 보일 뿐이다.

상품군으로 보면 손목시계는 패션과 귀금속 사이에 걸쳐 있다. 손목시계의 트렌드 역시 패션에
후행하고 귀금속에 선행한다. 문스와치가 나오기 1년 전인 2021년 발렌시아가 구찌 해킹 등의 협업
상품이 나왔다. 발렌시아가와 구찌도 케링 그룹사 산하 브랜드다. 내년쯤 불가리 루이비통(역시 같은
그룹) 협업 귀금속 라인업이 나올 수도 있다. 불가리의 대표 시계인 불가리 불가리에 BVLGARI 대신
LOUIS VUITTON이 새겨져 나와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스위스 시계는 프랑스 문화권의 신교도 이민자 위그노로부터 시작됐다. 이들은 정밀한 품질과
폐쇄적인 기업구조로 스위스를 세계 최고의 손목시계 국가로 만들었다. 옛날 이야기다. 시계는 정밀
계측기에서 귀금속이 되었고, 달로 간 인간의 손목시계 전설은 색색깔의 쿼츠 시계 속에서 말 그대로
이름만 남았다. 귀엽고 눈에 띄고 맥락 없이 얄팍한 21세기. 문스와치는 시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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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박찬용은 «에스콰이어» 등의 잡지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첫 집 연대기』 등의 책을 썼다. «매거진 B»를 몇 권 만들었다. 한국 대기업의 브랜딩 작업에 참여했다. 신문과 잡지에 원고를 낸다. 뉴스레터 ‘요기레터’와 ‘앤초비 북 클럽’을 발행한다. 『요즘 브랜드 2』와 제목 미정의 역사책을 작업하고 있다.
@parcchan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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