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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어디에 주목할지 결정하셨나요?

Writer: 최혜진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비애티튜드에 ‘편집으로 창작하기’를 연재하는 최혜진 작가의 세 번째 에세이가 도착했습니다. 이번 글은 ‘편집으로 창작하기’ 프로세스의 가장 핵심일 수도 있어요. 바로 ‘주목하기’, ‘프레이밍’, ‘입장 드러내기’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인데요. 정보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입장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의식하는 과정을 통해 길러지는 에디터적 사고력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최혜진 작가의 에세이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전에는 훌륭한 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오만 가지 단어들이 다 실려 있지만, 그 안에는 단 한 편의 시도 들어있지 않다.” 

– 브루노 무나리, 『판타지아』, 두성북스, 42p 

편집은 재료를 확보한 이후에 발생하는 요구다. 동시대의 고민은 부족이 아니라 과잉에 기인한다. 난잡하게 흩어진 오만 가지 재료에서 하나를 고르는 일, 골라둔 재료를 엮어내는 일이 편집의 본질이라면 어쩌면 이번 글의 주제가 ‘편집으로 창작하기’ 프로세스의 가장 핵심일지 모르겠다. ‘주목하기’, ‘프레이밍’, ‘입장 드러내기’에 대한 이야기다.

다음의 회화 작품은 모두 구약성서 ‘다니엘서’에 나오는 수산나와 장로들 에피소드를 그렸다. 줄거리는 이렇다. 수산나는 부유한 유대인의 아내로 젊고 아름답고, 어질고, 너그러운 성품을 지닌 인물이다. 어느 날 자기 집 정원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나이 든 장로 두 명이 장면을 훔쳐보고 성관계를 요구한다. 수산나가 격하게 거부하자 장로들은 수산나가 외간 남자와 간통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거짓으로 고발한다. 사형당할 위기에 처한 수산나는 다행스럽게도 현명한 선지자 다니엘의 도움으로 누명을 벗게 된다. 이제 아래 그림을 감상해보자. 똑같은 스토리(정보)를 어떻게 다르게 편집했는지 살피면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1) 얀 마시스, Susanna and the elders, 1509~1575년 (2) 틴토레토, Susanna and the elders, 1555~56년 

(3) 주세페 체사리, Susanna and the elders, 1607년 (4)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Susanna and the elders, 1610년

서양 회화사에서 ‘수산나와 장로들’은 수백 년간 반복해 그린 테마다. 목욕하는 여성의 나체를 그릴 수 있는 좋은 명분인데다 훔쳐보는 관음증적 시선에 관객이 동참할 수 있어서 시대가 바뀌고 주류 화풍이 바뀌어도 남성 미술 후원자의 그림 주문이 이어졌다. 당시는 지금처럼 생활 곳곳 어디서나 이미지를 볼 수 없었고, HD 해상도 단말기 따위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다. 당대인에게 이런 회화 작품은 가장 생생하고 매혹적인 스펙터클이었을 것이다.

에디터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에 위 작품을 이용하려면 다음처럼 질문해야 한다. “해당 작가는 이야기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디에 주목하는가?” 곰곰이 생각해보자. (1)~(3)은 여성의 벗은 몸을 훔쳐보고 희롱하는 행동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입장을 취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존재하기 힘든 평온함이 작품에 흐른다. 이때 화가가 주목하는 건 ‘폭력’이 아니라 수산나의 매력적인 ‘나체’다. 수산나가 얼마나 성적으로 매혹적인지 보라고, 이렇게 유혹적인 여성이 눈앞에 있는데 어쩔 도리가 있겠냐고, 당신도 끌리지 않느냐고, 선을 넘는 짜릿한 상상에 동참하지 않겠냐고 말을 건다. 반면 (4)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입장이다. 화가는 수산나의 ‘고통’에 주목한다. 이처럼 같은 소재도 어디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된다. 창작은 자신이 발견한 의미를 당대의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던져넣는 행위다. 환영받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유일하게 여성 화가 입장에서 수산나와 장로들을 그린 젠틸레스키의 작품은 수백 년 동안 주류 미술사에서 지워졌다. 하지만 이제 현대의 문맥에서 부활해 비로소 제대로 이해받고 있다.

정보는 언제나 다면적이다. 네트워크처럼 여러 갈래로 교차하는 문맥에서 사물, 사건, 인물은 전방위적으로 의미를 뿜어댄다. 내게 악인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다른 맥락에서는 선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고통의 이유처럼 느껴지는 사건이 다른 맥락에선 초월적 성장의 계기가 된다. 그렇다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으니 나는 아무 입장도 취하지 않겠다’라는 태도로는 그 무엇도 창작할 수 없다. 주목이 가진 힘과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해석 가능성이 수천수만 가지일지언정 ‘나는 이렇게 바라보겠다’는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에디터적 사고력은 정보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입장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위치와 시점을 의식하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이번엔 조금 실용적인 예를 들어보자. 성수동에 멋진 카페가 많이 생기는 현상을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에디터 A와 에디터 B가 기획안을 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내가 편집장이라면 다음과 같은 피드백을 줄 것이다. 

에디터 A의 기획 : 요즘 뜨는 성수동의 멋진 카페 10곳

피드백 : 에디터적 사고력을 초급 레벨로 발휘한 기획이다. 일단 10곳을 선별했다는 면에서 큐레이션이 들어갔지만, 어떤 기준으로 큐레이션했는지 보는 사람에게 전달하지 못한다. ‘요즘 뜬다’, ‘멋지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 기획자 자신도 정의하지 못했다. 현상에 대한 자신의 입장 혹은 관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기획은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억에서는 금방 잊힌다. 

에디터 B의 기획 : 싱글 오리진 vs. 블렌딩, 성수동 카페 지형도

피드백 : 에디터적 사고력을 일정 수준 이상 발휘한 기획이다. 성수동 카페를 조사해보니 가게마다 간판스타처럼 알려진 원두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싱글 오리진파와 블렌딩파로 나누어 소개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지형도’라는 시각적인 단어를 이용해 로컬 콘텐츠로서의 정체성을 부각하겠다는 의도 역시 읽힌다. 현상을 바라보는 기획자의 입장과 해석이 담겨있어서 독자의 기억에 콘텐츠가 각인된다. 

주목하는 방식, 다시 말해 프레임은 인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나와 타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외부 세계를 인식할 때만 그런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인식할 때도 프레임은 힘을 발휘한다. 일례로 이규현, 김경진의 논문 「한국 문화와 행동경제학 연구」(2014)는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사람들에게 “당신 애인이 좋은 이유 세 가지를 말해주세요”라고 질문하면 좋아하는 이유 세 가지 정도는 잘 떠오르기 때문에 답을 한 뒤 ‘나는 애인을 사랑한다’고 쉽게 확신한다. 그런데 “당신 애인이 좋은 이유 스무 가지를 말해주세요”라고 질문하면 ‘내가 애인을 많이 사랑하지는 않는구나’라는 즉흥적 판단을 내리는 비율이 높아진다. 스무 개를 채울 수 있는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경험이 부정적 판단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질문 프레임을 3개와 20개로 바꾸었을 뿐인데, 동일한 상대를 향한 사랑의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이번에는 카피를 살펴보자. ‘현금으로 결제하면 10% 이익’ vs.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10% 손해’. 둘은 동일한 현상을 서술한 카피다. 전자는 이익 프레임을 제시했고, 후자는 손해 프레임을 제시했다. 이때 소비자는 어느 문장에 더 흔들릴까? 사람들은 동일한 수준의 이익이 주는 충격보다 동일한 수준의 손실이 주는 충격을 심리적으로 훨씬 크게 받아들인다. 때문에 같은 현상도 손해 프레임으로 메시지를 구성하면 설득력이 높아진다.

프레임이 의미 형성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뭘까? 구체적으로 내 삶을 이롭게 하려면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이 글에서는 세 가지 원칙으로 정리하려 한다. 참고로 이 문장에도 프레임이 숨어있다. 숫자로 틀을 제시하면 독자의 머릿속에는 ‘1. ________   2. ________   3. ________ ’ 같은 도식이 만들어지면서 정보를 받아들일 공간을 구획한다.

첫째, 같은 정보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늘 머릿속에 새긴다. 그래야 정보가 가진 가능성을 최대한 발견하고, 서로 간의 연결고리를 풍성하게 만드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나에게 이에 대한 커다란 영감을 준 작가가 한국의 1세대 행위예술가인 이건용 작가다.

이건용, ‹장소의 논리›, 1975년 퍼포먼스, 2019년 프린트 © 최혜진

작가는 바닥에 원을 그리고 내부를 향해 “저기!”라고 외친다. 원 안으로 들어가면 “여기!”라고 말한다. 원 밖으로 나가 뒤에 있는 원을 향해 “거기!”라고 말한다. 원의 경계선을 밟고 돌면서는 “어디, 어디, 어디!”를 반복해 외친다. 이렇듯 ‹장소의 논리›는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똑같은 원을 다르게 지칭하는 상황을 전달하는 퍼포먼스다.

이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앞으로 새로운 기획을 할 때마다 ‹장소의 논리›를 떠올리겠다고 다짐했다. 창작하는 나의 위치가 ‘저기’인지, ‘여기’인지, ‘거기’인지 자각하겠노라 다짐했다. 이 자각이 편집의 중심이 되고, 결과적으로 내가 만드는 의미를 정확하고 뾰족하게 만들어주니까. 아르바이트생 청년의 눈으로 본 현상의 의미는 업주의 눈으로 본 그것과 다르고, 관리자의 눈으로 본 그것과도 다르며, 소비자의 눈으로 본 그것과도 다르다.

이건용 작가는 장소와 의미가 어떻게 긴밀하게 관계 맺는지 잘 보여준다. 단행본 한 권이 서점 매대에 있을 땐 ‘상품’, 유통 창고에 있을 땐 ‘재고’, 쓰레기장에 있을 땐 ‘종이류 쓰레기’, 공공도서관에 있을 땐 ‘장서’, 작가나 독자의 품에 있을 땐 ‘작품’으로 의미가 바뀌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정보의 의미를 유연하게 다룰 줄 아는 능력이 바로 에디터적 사고력이다.

두 번째 원칙은 자신의 아이디어나 타인의 창작물을 검토할 때 무의식적으로 전제하는 준거기준(frame of reference)을 살피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거의 언제나 어떤 믿음을 딛고 서 있다. 앞서 ‘요즘 뜨는 성수동의 멋진 카페 10곳’을 소개하겠다고 다짐한 에디터 A를 기억하는가? 입 밖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가 짠 기획의 근간에는 ‘카페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발 빠르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는 믿음이 존재한다. ‘싱글 오리진 vs. 블렌딩, 성수동 카페 지형도’를 만들려는 에디터 B가 딛고 있는 전제는 뭘까? ‘카페 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원두 맛’이라는 믿음 아닐까? 매달 ‘편집으로 창작하기’를 연재하는 에디터 최혜진의 전제는? 편집은 상당히 멋지고 창조적인 삶의 기술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이 글을 쓴다.

아이디어의 수면 아래에 은밀히 흐르는 믿음, 그것이 곧 관점이고 입장이다. 그런데 우리가 당연시하는 생각 중에 별다른 검증 없이 머릿속으로 들어온 것도 많다. 사회가 주입한 관점이나 타인이 흘린 말이 프레임이 되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데 영향을 미친다. 독창적인 관점을 갖고 싶다면 이런 프레임을 의심하고 바꿔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요령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당연시하는 전제를 찾고 그 뒤에 ‘정말 그럴까?’를 덧붙여 가급적 많은 문을 열어보는 것이다.

카페는 새로운 트렌드를 발빠르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야.

=> 정말 그럴까?

카페 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원두 맛이야.

=> 정말 그럴까?

편집은 상당히 멋지고 창조적인 삶의 기술이야.

=> 정말 그럴까?

이런 검증은 아이디어가 얼마나 자기 안에 튼튼히 뿌리내리고 있는지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주운 생각은 쭉정이처럼 허약해서 살이 붙기 힘든 반면, 진짜 자기 것은 검증을 거듭할수록 강해진다.

작가 니키 리Nikki S Lee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사진 연작 ‹Project›를 보자. 그는 1997년부터 펑크족, 레즈비언, 히스패닉, 여피족, 뉴욕 근교 노인, 스트립 댄서, 한국 여고생 등 다양한 집단을 골라 해당 커뮤니티로 녹아드는 실험을 했다.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밝힌 후, 이들의 복장과 화장법, 취향, 몸짓, 즐겨 찾는 장소 등을 배우며 시간을 함께 보냈다. 적게는 1개월, 길게는 6개월씩 같이 지내면서 고강도의 운동을 하거나 반대로 살을 찌우기도 했다. 그리고는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경험한 평범한 일상을 스냅 사진으로 남겼다. 니키 리의 작업을 놀라운 변장술 정도로 이해해선 안 된다. 나는 작가가 아래와 같은 사고 과정을 거쳤다고 믿는다.

정체성은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고 정해지는 것이야

=> 정말 그럴까?

나는 니키 리가 성별, 집단, 인종, 취향 등 개인을 설명하는 여러 사회적 잣대도 결국 보여지는 코드일 뿐 실제로는 개인의 다면적 성질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자신의 믿음을 검증하기 위해 ‹Project› 시리즈를 이어갔다고 생각한다.

니키 리, ‹The Hip Hop Project (1)›, 2001 © Nikki S. Lee, Courtesy of Sikkema Jenkins & Co., New York

니키 리, ‹The Hispanic Project (25)›, 1998 © Nikki S. Lee, Courtesy of Sikkema Jenkins & Co., New York

니키 리, ‹The Skateboarders Project (29)›, 2000 © Nikki S. Lee, Courtesy of Sikkema Jenkins & Co., New York

니키 리, ‹The Exotic Dancers Project (31)›, 2000 © Nikki S. Lee, Courtesy of Sikkema Jenkins & Co., New York

같은 정보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사실 기억하기, 해석의 주체로서 자신의 시점 의식하기, 장소와 의미의 관계 이해하기, 당연시하는 전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검증하기… 이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결국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질문의 끝판왕이 있다. 바로 이런 의문형 문장이다.

“내가 보는 OO란 무엇인가?”

여기에 마지막 세 번째 원칙이 숨어있다. ‘스스로 개념을 정의하는 시간을 갖자’는 거다. 카페란 무엇인가? 요즘 뜬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멋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편집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취향이란 무엇인가? 일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질문하며 인식의 심해로 내려가 보는 경험, 원형질의 알맹이를 손에 쥐려고 노력하는 시간…

대단하고 논리적이고 매끈한 정의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소하고 울퉁불퉁하고 구멍이 숭숭 나도 상관없다. 그건 누구의 것과도 같지 않은 당신만의 것이니까. 바로 그곳이 당신의 창작이 시작하는 시원(始原)이니까. 초라하게 느껴져도 자기 관점을 믿고 스스로 개념을 정의하려 애써보는 경험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올라퍼 엘리아슨, ‹Beauty›, 1993 © 최혜진

덴마크 ARoS 오르후스 미술관에 들렀다가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Beauty› 앞에서 한참 동안 서성인 적이 있다. 거대한 분무기에서 나온 작은 물방울 입자가 연기 혹은 환영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지개 색깔의 스펙트럼이 어렴풋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눈의 위치, 물방울, 조명이 이루는 각도가 딱 맞았을 때만 보이는 색, 나의 움직임에 호응하며 변화하는 의미. 올라퍼 엘리아슨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앱스트랙트: 디자인의 미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눈을 제거하면 각도가 사라지며 무지개도 사라집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여러분이 보는 무지개를 못 봐요. 눈이 다른 위치에 있거든요. 이 공간은 당신의 존재에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무지개의 존재보다 중요한 게 따로 있어요. ‘나의 두 눈을 믿고 세상과 호응하는 나의 능력을 신뢰하느냐’의 문제죠.”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이렇게 긴 글을 썼다. 세상을 보는 당신의 두 눈, 정보를 해석하고 세상과 호응하는 당신의 방식은 그 자체로 귀하고 소중하다. 뛰어나서가 아니다. 화려해서가 아니다. 유일해서다. 당신이 이 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사람이어서 그렇다. 그러니 부디 질문하기를, 입장을 갖기를, 드러내기를!

Writer

최혜진(@writer.choihyejin)은 19년차 잡지 에디터다. «디렉토리»«1.5°C»«볼드저널» 편집장으로 일했고, 에디터십을 기반으로 기업의 브랜드 미디어 전략을 제시하는 일을 한다.『우리 각자의 미술관』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등 일곱 권의 예술서를 썼다. 동료애 기반의 에디터 커뮤니티 Society of Editors(@society.editors)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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