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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배민기가 묻습니다: 당신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몇 개인가요?

Writer: 배민기
배민기, 비오리지널, 비애티튜드, graphicdesign

Be Original

아티스트에게 직접 의뢰한 아트 워크를 소개합니다

‘비오리지널’은 매거진 이슈의 테마에 맞춰 아티스트에게 작업을 의뢰하고 그 과정과 결과물을 살펴보는 섹션이에요. 두 번째 이슈의 테마는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그래픽 디자이너 배민기 작가는 스테레오타입을 표현하기 위해 가상의 교육 서비스를 생각했답니다. 캐릭터와 로고를 만들고, 교육 기관에 자주 나타나는 특정한 건물 형상을 작업에 집어넣었어요. 흥미롭고 논리적인 작업 과정을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이번 이슈의 테마인 ‘스테레오타입’을 처음 들었을 때, 웹매거진 저널리즘의 이야기 전달방식의 용이함을 유지하면서도 인터뷰이의 반응이 평면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설정된 주제라고 여겼다. 특히 단어의 의미를 ‘유용한 편향’(편견을 가지되 편리한 방식으로 세계를 항해하는 방식)으로 재정의한 점은 주제와 관련한 작업물을 재미있게 만들어볼 수 있는 진입로로 적절해 보였다. 그래서 작업 의뢰를 가벼운 마음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

평소 대부분의 작업물에 적용할 수 있는 범용적인 방법론은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작업하기 편하므로 나름의 절차를 정해 몇몇 경우에 적용할 때가 있다. 순서대로 말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의뢰받은 내용/주제에 관련하여 떠오르는 키워드/방법론을 메모장에 모두 적는다.
(2) 개별 키워드/방법론에 관련한 시각 구성 요소를 각각 제작해둔다.
(3) 구성 요소를 가지고 디자인을 한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관찰하며, 거의 바꾸지 않고 놔두는(마음에 들어 하는) 구성요소, 자꾸 바꾸는(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구성 요소를 대략 구분해둔다.
(4) 일차적으로 완성한 상태에서 디자인을 멈추고, 해당 작업과 무관한 다른 업무를 진행한다. 앞서 진행했던 작업 과정의 세부 단계와 그 단계별 판단의 선호도에 관한 기억이 약간 흐릿해질 만큼의 시간 동안 딴 일을 한다.
(5) 돌아와 다시 작업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마음에 든다고 생각해서 바꾸지 않았던 요소가 바뀌기도 한다. 필요하거나 가능한 경우 반복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이 가진 장점은 먼저 내가 발휘하고자 하는 시각적 창작 방향의 동적 에너지를 상쇄시키지 않으면서도 작업물이 주제의 큰 틀을 벗어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고, 더불어 작업자 개인에게 어느 정도 내면화/고정화되어 있을 작업 경향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지만, 판단에 기간을 주거나 그것을 반복하는 식으로 그 경향의 경계선을 유동화할 수 있다. 이런 유동화의 반복이 쌓이면 내 고유한 경향의 점진적 변화를 모색해볼 수 있다.

(1/4) 71EH: From Glaciers to Palm Trees © 배민기

배민기, 그래픽 디자인, graphic design

(1/4) 71EH: From Glaciers to Palm Trees © 배민기

(2/4) 71EH: From Glaciers to Palm Trees  © 배민기

배민기, 그래픽 디자인, graphic design

Full-scale physical exercise: Garments © 배민기

Full-scale physical exercise: Garments © 배민기

주로 부정적으로 취급하는 스테레오타입 혹은 고정관념은 특정한 종류의 유용함을 제공할 때가 있다. 보통 스트레오타입을 나쁘다고 인식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인종적 스테레오타입과 관련된 부분에 있을 테다. 여기엔 우리가 항상 맞닥뜨리지만 언제나 어정쩡하게 진행되는 대립이 존재한다. 차이를 언급하는 것과 그 언급의 효율성을 위한 전략적 과대평가와 그 과대평가에 뒤따르는 통속적인 반감 같은 것이다.

스테레오타입에 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가장 익숙한 문장을 말해볼까 한다. 예를 들어 ‘다양성을 존중하자’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우선 그 다양함의 구체적 형태를 잘 파악하고, 그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존중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이걸 이렇게 단순한 분류/편견으로 정의해버리는 건 폭력적이다’로 대변되는, 일종의 소셜 저스티스 학생 주임이 등장할 때 난처함과 흥미로움이 동시에 나타난다. 효과적인 유형화/설명의 정의 자체가 ‘각각의 개체가 지닌 상징의 구획을 최대한 넓게 벌려서 특정한 의미의 돌기들이 툭 튀어나오도록 행사하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저 유사 학생 주임의 비판은 실제 비판이라기보다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과 똑같은 말을 철자와 순서만 바꾼 애너그램인 셈이다. 곧 정치적 올바름이 ‘정치적’과 ‘올바름’ 두 캐릭터로 분리된 후 갑자기 서로 싸우는 상황이자, 만약 ‘리버럴과 시민 개론 총서’라는 교과서 세트가 있다면, 2권 정도에서 예제로 나올 법한 것이다.

사회적 담론이 엉키는 모든 곳에는 이런 예제가 필요하거나, 그 엉킴 자체가 예제가 될 수 있다. 그 엉킴을 잘 풀어내는 일에 우리가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 할지는 알 수 없다. 혹 그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일단 가상의 교과서 속 가상의 문제를 가장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풀어볼 수는 있겠다. 내가 고른 퀴즈의 내용처럼, 일단 자기 손가락 발가락 개수는 셀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도출된 이번 작업의 시각적 키워드는 ‘교육’이었고, 그와 연관된 키워드/방법론은 다음과 같았다.

– 교육과 관련된 디자인 시각물: 교육 서비스의 캐릭터/로고, 교육기관 로고
– 교육과 관련된 키워드: 문제/퀴즈
– 교육과 관련된 기술: 줌 서비스/ 인터페이스

배민기, 비오리지널, 비애티튜드, graphicdesign

Characters © 배민기

배민기, 비오리지널, 비애티튜드, graphicdesign

Design © 배민기 

어떤 가상의 교육 서비스가 있다고 생각하고 클라이언트 업무를 하듯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로고를 만들었다. 주로 연필이나 책 등이 의인화된 대중적 형식을 그대로 차용해 캐릭터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렸고, 주제어의 글자를 축약해 로고 ‘Stt’를 만들었으며, 교육 기관 로고에 주로 등장하는 특정한 건물의 형상을 표현했다. 문제/퀴즈라는 키워드를 시각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미국의 장수 퀴즈쇼 ‘제퍼디Jeopardy!’의 퀴즈 화면 디자인을 차용하면서, 역대 제퍼디에서 나온 가장 쉬운 문제 중 하나를 골라 적어 내려갔다. 더불어 교육과 관련한 기술을 시각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화상회의 서비스 ‘줌’의 시각적 인터페이스를 일부 활용했다.

이런 종류의 컨트리뷰션 작업은 한동안 시간이 나지 않아 (위촉해준 분들에게는 죄송했으나) 종종 의뢰를 받아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작업은 재미있을 것 같아 오랜만에 수락했고, 실제로 재미있었다. 이에 감사함을 표한다. 🙇🏻‍♂️

Artist

디자이너 배민기는 대학 강의 업무와 상업 영역 회사와의 협업 업무를 비교적 균등하게 배분하며 디자인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ACC CONTEXT: 연대의 홀씨»(2020, 광주), «Reeperbahn Festival: (IN)BETWEEN»(2021, 함부르크) 등에 참여했다.
@bae.mink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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